[Y메이커①] "삽질이 체질"...에디터 안성현, 다섯 매체 창간하기까지

[Y메이커①] "삽질이 체질"...에디터 안성현, 다섯 매체 창간하기까지

2018.03.11.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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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①] "삽질이 체질"...에디터 안성현, 다섯 매체 창간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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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는 신뢰와 정통의 보도 전문 채널 YTN의 차별화 된 엔터뉴스 YTN STAR가 연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메이커스를 취재한 인터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이때 창의적인 콘텐츠의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요를 창출하는 메이커스의 활약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스물 두 번째 주자는 [트렌드] 메이커, 작가 겸 매거진 편집장 안성현입니다.

[Y메이커①] "삽질이 체질"...에디터 안성현, 다섯 매체 창간하기까지

'아레나'(ARENA) '그라치아'(GRAZIA). 패션에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두 남녀 패션지의 시작은 모두 같은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안성현 편집장이 그 주인공.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첫걸음을 내딛는 일은 설렘과 함께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패션계에서 안성현은 그 어려운 첫 삽을 무려 5번이나 떴다. 지금 매거진 '한복'(HANBOK)의 편집장이자 작가로 활동 중인 그는 기자로 '마담 피가로'와 '앙앙'을, 편집장으로 '세븐틴' '아레나' '그라치아'를 차례로 세상에 꺼내 보인 패션계의 거목이다.

"그거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매체가 있어 회사에 건의하고 직접 계약을 따온 건 제가 유일할 거에요. '아레나'가 그랬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남성만을 위한 패션 전문 매거진이 없었어요. 하지만 시장은 원하고 있었죠. 드러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게 제 눈엔 보였어요."

안성현은 기존의 방식을 깼다. 회사 계약팀이 라이선스를 체결한 후 편집장을 내정하는 관례를 뒤로하고, 홀로 전담팀을 꾸려 2005년 서른여섯의 나이로 영국의 '아레나'를 한국에 상륙시켰다. 이는 시작이었을 뿐. 이후엔 완전 다른 성격의 패션 매거진 '그라치아'의 초대 편집장을 맡아 도전을 이어나갔다. 지지치 않는 그 원동력이 궁금했다.

"일종의 '몰입' 사고 아닐까요? 실제로 앞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에요. 노래방 앞에서 마이크 한 번 잡지 못하고 바가지 씌우는게 뻔히 보여도 한마디 못하죠. 하지만 콘텐츠와 관련해선 다릅니다.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포기하기보다 어떻게든 배울 방법을 고민해요. 대학생 때는 무대 미술에 관심이 생겨 타 학교 교수님을 찾아가 청강 허가를 받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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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고 바랐던 일이었기 때문일까. 안성현은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간에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보다도 하고 싶은 걸 못했을 때 드는 답답함이 더 두렵다는 그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미래를 기대하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있잖아요. 물론 문을 열고 나가는 건 결코 쉽지 않아요. 하지만 기존의 시스템, 방식에서 제가 원하는 일을 하기 어렵다면 바꿔야죠. 그래야 새로운 변화가 생기고요. 창간 작업도 다 그래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아마 '패션지 편집장'이라는 타이틀이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은 계기가 있다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빠트릴 수 없을 터. 영화 속 킬힐에 명품을 휘감고 패션쇼의 맨 앞줄에 앉아 매서운 눈빛으로 런웨이를 노려보는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 분)의 모습을 누군가는 선망의 대상으로 꼽기도 했더랬다. 25년 에디터 생활 중 15년을 그 '캡틴'의 위치에 있었던 안성현 편집장이 이야기를 듣자 웃음을 터트린다.

"물 위에서는 우아하지만 물 아래에서 쉼 없이 발을 휘젓는 백조. 패션지가 딱 그래요. 명품과 스타로 가득한 책을 매달, 심지어 격주로 발행하기 위해 에디터들은 야근을 밥 먹 듯 하거든요. 특히 모든 페이지와 이를 만드는 사람을 지휘하는 편집장은 극악무도한 악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웃음)"

[Y메이커①] "삽질이 체질"...에디터 안성현, 다섯 매체 창간하기까지

높은 굽은 언감생심. 마감을 위해 후배 에디터를 독촉하는 건 물론 시간대별로 패션 행사, 광고 유치를 위한 담당자와의 미팅을 소화하기엔 평평한 흰 운동화가 제격이다. 책 하나를 서점 가판대에 올려놓기까지 흘린 땀은 곱고 화려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 편집장 역시 "그땐 발렛 파킹의 인생이었다. 5분 이내 거리를 운전하고 다녔을 정도"라며 치열했던 과거의 삶을 회상했다.

그래도 좋았다. 밤낮 마감과 싸우며 개개인의 사생활이 없어도, 회사 앞으로 찾아온 애인을 돌려보내야 해도, 애인이 참지 못하고 불같은 성질을 부리며 곁을 떠나도, 마감을 내려놓지 못하는 게 에디터란다. 무엇이 그토록 그를 새로운 콘텐츠로, 에디터의 삶으로 이끄는 것일까.

"그게 기뻐요. 밀알이 되게 새 콘텐츠를 물어내는 일, 속히 말하면 '삽질'하는 일이요.(웃음) 지금은 일상으로 자리 잡은 친환경, 북유럽 문화 같은 트렌드도 10여 년 전 저를 포함한 에디터 집단이 예민한 촉수를 꺼내 될성부를 떡잎을 소개한 결과죠. 그래서 꾸준히, 또 끊임없이 물꼬를 트는 이 일이 가치가 있습니다. 먼저 삽으로 땅을 파면 평평한 대지에 집하나 지어지는 건 시간이 지나면 가능하더라고요."

양복에 흰 양말 신던 과거 차림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셔츠 소매가 정장 재킷 소매보다 1.5cm는 길어야 한다는 에티켓을 소개해 문화로 정착시킨 데도 에디터들이 있었다. 단순 패션계만 국한된 건 아니다. 삶을 편집하는 만큼 이들이 미칠 수 있는 범위 역시 한계가 없다. 환경이나 에이즈 문제 역시 심각성을 키운 건 뉴스지만 잡지 '롤링 스톤즈'가 처음 기사화것 처럼. 말랑말랑한 콘텐츠로 스스럼없이 다가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 사례가, 주변에 꽤 많다.

[Y메이커①] "삽질이 체질"...에디터 안성현, 다섯 매체 창간하기까지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잡지는 종종 '과도한 소비 조장'에 더 방점이 찍히며 저평가되곤 한다. 안 편집장 역시 잡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알고 있었다. 이에 늘 잡지를 만들 때 '취향 기반형 콘텐츠'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매체로서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자본에서 떼려야 뗄 수없는 거대 패션지에서 이 목표를 100% 구현하는 데 한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에 안성현은 안온한 둥지를 나와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그가 '책보다 프로젝트'로 인생 제2막을 준비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에디터라면 적어도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트렌드를 소개해야죠. 예컨대, 얼굴에 주사를 맞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더라도 이를 소개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런 범위 안에서 독자 중 일부는 이 옷을 입었을 때 행복감을 느끼고, 이 영화를 봤을 때 위로받을 수 있는 가치를 제안하려고 해요. 조금 어렵더라도 말이죠."

([Y메이커②]로 이어짐)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 = YTN Star 김태욱 기자(twk55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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