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에서 직립까지...세월호 4년의 기록

물밑에서 직립까지...세월호 4년의 기록

2018.05.10. 오후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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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운 /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기 상임위원

[앵커]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우는 작업, 조금 전에 마무리가 됐습니다. 지난 4년간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현장 곳곳을 누비면서 진상규명을 위해서 애쓰신 분을 한 분 모셨습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죠. 1기에서 활동하신 박종운 변호사님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박종운 변호사입니다.

[앵커]
조금 전에 김범환 기자가 현장에서 전해 드렸는데요. 아침에 저희가 생방송으로 전해 드렸거든요. 세우는 장면을, 혹시 보셨습니까?

[인터뷰]
정말 보면서 감개무량한데요.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이고요. 직립에 거의 성공을 했으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왜 여기까지 오는 데 4년 1개월이 걸렸을까, 너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앵커]
오늘 세웠습니다. 직립이 가진 의미, 어떤 거라고 보십니까?

[인터뷰]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야 된다고 저희가 주장했던 이유는 세 가지인데요. 하나는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고 하는 거죠. 두 번째는 미수습자 수습을 비롯한 여러 유류품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 중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고요.

[앵커]
그게 가장 눈 앞에 있는 현실적인 거죠.

[인터뷰]
그렇죠. 세 번째가 이 세월호 선체를 기념 또는 추모사업에 활용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선체가 올라와야 되는 거죠. 지금 직립이 됐다고 하는 거는 그 가운데 직접적으로 수습에 관한 것과 침몰 원인에 관한 것을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바로 전 단계에 와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앵커]
제가 사실 이 질문을 먼저 드렸어야 되는데 변호사분이시거든요. 그런데 세월호하고 어떤 이유가 돼서 이렇게 인연이 돼서 지금 이렇게 1기 특조위원도 하셨나요?

[인터뷰]
저는 사실 약간의 공익 활동을 하던 이주 노동자나 난민, 여러 가지 공익 활동을 하던 변호사였는데 세월호 참사가 난 이후에 제가 크게 충격을 받았던 건 예컨대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공익 활동도 그분들이 살아 있어야 된다고 하는 거죠. 세월호 참사가 저한테 줬던 충격은 우리가 생명과 안전이 보장이 안 되면 그다음 단계로 갈 수가 없는 거다. 그런데 당연히 저는 생명과 안전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됐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세월호 특조위를 만들었을 때, 그때는 세월호 특별위원회였습니다.

[앵커]
처음에는 특별위원회였나요?

[인터뷰]
위원회였습니다. 특별위원회를 만들었을 때 현장 대응 지원도 하고 마지막으로는 특별법 제정 팀장도 했었고요. 그 인연이 돼서 세월호 특조위까지 가게 됐습니다.

[앵커]
지금 혹시 말이에요. 저희 카메라에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왼쪽 가슴 위에 뭐가 있는데 저게 혹시 세월호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인터뷰]
제가 특별조사위원회에 있을 때는 노란 리본, 금속으로 된 걸 달고 다녔는데요.

[앵커]
저희는 그걸 많이 알고 있죠.

[인터뷰]
이건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유가족분 중에 한 분이 직접 만들어서 저한테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때 제가 아마 광화문에서 농성을 할 때였던 것 같은데요. 그때 주신 걸 제가 잊지 않고 가지고 다니고 있으므로..

[앵커]
유가족분이 주신. 유가족 얘기가 나왔으니까 유가족분들도 오늘 아마 저 장면을 상당히 금방 감개무량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감개무량하면서도 착잡한 심정으로 보셨을 것 같은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혹시 그분들하고 요즘 연락을 하십니까?

[인터뷰]
요즘에는 제가 사실은 1기 특조위가 사실상 그 당시 정부에서 강제해산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대단히 죄송한 마음을,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 연락을 못 드리고 있고요. 다만 다른 활동을 통해서 그분들의 활동을 돕고 있는데 그분들도 아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왜 이렇게 멀리 왔을까. 그 당시에 예컨대 저 같은 경우에 2016년도에 인양됐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도 안 되고 그로부터 벌써 2년이 지났지 않습니까? 또 한편으로는 배는 올라왔지만 해저에 있을 때 사실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침몰 원인관련된 게 이제 좀 절단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예컨대 닻도 절단됐고요. 스퀼라이저라고 옆에 비닐 역할을 하는 이 방향타 역할을 하는 그러나 것도 잘려버렸고요.

상당히 많은 부분의 훼손이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침몰 원인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올라왔는데도 혹시 과거에 선미 램프가 잘렸다거나 여러 가지가 잘려나간 것 때문에 혹시 침몰 원인규명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 또는 그동안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그 안에 미수습자 수색에도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두려움도 있는 거죠.

[앵커]
지금 뭐랄까. 원인에 대한 부분 말씀하셨는데 혹시 지금까지 옆으로 누워 있어서 원인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이 특별히 있었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일단은 해저에 가라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절반 정도 왼쪽으로 누워 있었어요. 그렇다면 세월호 선체가 왜 갑자기 급속하게 침몰했느냐, 그러니까 세월호 침몰 원인은 두 가지를 구명을 해야 되는데 하나는 왜 침몰했을까. 또 하나는 그 정도의 크기의 배가 왜 그렇게 빨리 침몰했을까. 이 두 가지인데요. 이 두 가지인데 그 당시에는 해저에 있었기 때문에 조사하기가 어려웠고요.

그다음에는 또 누워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목포항에 올라왔을 때도 원인규명을 다했다고 볼 수가 없는 게 누워 있는 그대로였거든요. 지금은 그런데 세웠기 때문에 과거에는 이제 과적이니 급선회를 했느니 여러 가지 과정에서 최근에 나온 게 혹시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실제로 겉에 그런 흔적들이 조금씩 있기 때문에 아직 원인이 완전히 규명된 건 아니지만 모든 가능성이 다 열려 있는 상황에서 과연 왜 침몰했을까에 대한 원인 규명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취합될 수 있는 단계라고 봅니다.

[앵커]
어쨌든 세워졌으니까 그 말씀하신 원인 규명이라든가 이런 미수습자... 저는 일단 미수습자가 지금 당장 몇 주 후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나요?

[인터뷰]
그렇죠. 이제 예전에도 아마 보셨을 겁니다. 선체가 누워서 올라왔을 때도 계속 안에 있는 누적물들을 다 빼내고 유류품도 발견될 수 있고 그걸 씻어내는 과정에서 또 미수습자도 수색이 될 수 있을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세월호 특조위 하면 제가 기억에 많이 나는 게 참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그렇게 봤지만. 그런데 실제로 특조위원이셨으니까 어떤 부분에서 가장 어려우셨습니까?

[인터뷰]
그러니까 제 위치라는 게 저는 어떤 정당의 추천을 받아서 거기 갔던 게 아니고 객관적인 기구라고 할 수 있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지명을 받아서 했던 거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중간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제가 한계를 느꼈던 거는 그 당시 정부는 여하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것, 설립 준비를 해서 출범하는 것, 출범했다 하더라도 조사하는 것 각각의 단계 때마다 방해를 했었기 때문에 저로서도 가장 힘들었던 게 아니, 정부가 직접 방해를 하고 조사 대상자가 정부 기관의 공무원들인데 그분들이 제대로 조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인을 규명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던 거죠.

[앵커]
정부가... 어쨌든 그래도 세월호 참사 또 세월호에 대해서 애정도 가지시고 여러 가지 활동도 많이 하셨는데요. 그러면 2기에도 참여하셔서 계속해서 진상 규명이라든가 이런 노력을 하셨을 것 같은데 일부러 안 들어가셨습니까, 2기는?

[인터뷰]
2기 설립 준비 단계에서는 도움이 있었고요.

[앵커]
준비단계에서는?

[인터뷰]
다만 위원이라고 하는 거는 9명의 위원이 국회에서 정당별로 이렇게 추천을 받은 거였기 때문에 아시다시피 저는 특별한 정치 집단과 관계가 없고요. 다만 그 당시에 1기 특조위원회에서 안전사회소위원회 위원장을 하면서 상임위원을 겸했었는데 아마도 이 9명의 추천과정에서 아마 새로운 분들이 들어갔을 거고요. 그 과정에 저런 복합적인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마는 그렇게 자세하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앵커]
저희가 지난달에 실시된 세월호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준비해 봤는데요. 일단 그래픽 잠깐 보시고 설명드리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됐나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충실하게 규명이 되지 않았다라는 게 지금 72% 정도 나왔습니다. 상당히 높은 수치인데요. 일각에서는 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조사가 아니고 전면 재수사 이런 목소리까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진상 규명에 대한 것이 보통 3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왜 침몰했나, 빨리 침몰했냐. 침몰 원인에 관한 것이고요. 두 번째가 이게 참사로 발전하게 된 것은 구조를 안 했기 때문에 또는 못 했기 때문이거든요. 안 했다는 입장인데 왜냐하면 못 했다고 할 때는 뭐가 방해물이 있어서 구할 여러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방해물 때문에 못 했다, 하지 못했을 뿐이지 하려고 했다, 이런 건데. 구조하려고 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안 했다고 보는 건데. 그래서 왜 구조를 안 했을까, 이 문제고 세 번째가 그 당시에 이런 참사가 발생했을 때 그 이후의 대책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 당시 정부나 언론이 제대로 대응을 했느냐, 이 3가지인데. 지금 이 3가지 중에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규명이 안 됐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께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전 국민적인 관심사였는데도 아직 진실규명이 안 됐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면 2기 특조위가 이와 관련한 역할도 해야 될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럼요, 그럼요.

[앵커]
원인, 조금 전에 말씀하신 구조를 못 한 건지 안 한 건지에 대한. 만약에 정말 안 했다고 하면 상당히 심각한 얘기죠. 그다음에 말씀하신 정부나 언론의 대응 과정, 이런 것까지 2기 특조위가 이런 걸 다 봐야 된다는 거죠? [인터뷰] 그렇죠. 저는 이제는 더 이상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제3특조위, 제4특조위가 나타나는 거를 원치 않아요, 개인적으로. 그러니까 2기 특조위 때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겠고요.

2기 특조위의 장점을 들라면 과거에 해 놓은 성과가 조금씩은 있다는 거예요. 완성은 되지 않았지만. 예를 들어서 제일 초기에 검찰이나 경찰이나 감사원이나 해양심판을 했던 걸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자료를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제1기 특조위가 밖으로 표명은 못 했지만 상당 부분 또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해 놓은 작업들이 있고 그다음에 선체조사위원회에서 지금 열심히 진상규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성과를 비판적으로 잘 받아들이면 속도를 좀 낼 수 있을 거다, 이런 기대가 좀 있고요.

그렇지만 또 한 가지는 잘못되면 그 당시에도 고민이었지만 정치집단에서 국회에서 아홉 분이 올라왔기 때문에 그분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혹시라도 내부에서 잘못된 분쟁이 일어나게 되면 그거는 국민들이 기대하는 바와 전혀 다르다. 그래서 그 안에 일단 들어가 있는 이상 과거의 어떤 정치집단과 관계가 있었든 간에 세월호 진상규명, 안전사회 건설이라고 하는 이 큰 대의에 이분들이 연대해서 연합해서 일을 잘 처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조금 전에 여론조사 결과도 드리기는 했는데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아시다시피 좀 다양합니다. 잊지 않겠다, 약속을 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저렇게 진상규명을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좀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 이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도 사실은 있습니다.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오늘도 계기로 이분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없으신가요?

[인터뷰]
과거에 우리나라에 많은 재난 재해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인명사고로만 따지면 500명 이상이 사망했던 삼풍백화점 사고가 있었죠.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그런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다시는 이런 재난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각성, 반성, 제도 개선이 확실하게 있었어야 되는데 그랬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 연장선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거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달라질 수 있는 건 세월호 참사가 계기가 돼서 물론 지금 4년씩이나 오랜 시간이 지났고 많은 정치적인 이해관계 집단들이 논란이 있었지만 이 세월호 참사야말로 이번에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게 되고 그에 따른 안전사회 종합대책건설을 만들면 앞으로는 재난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소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책임 규명이나, 이게 하나의 모델이 되는 거죠.

안전사회대책이 나올 거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이 조금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봐주시면 이번에야말로 대한민국이 안전한 사회로,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는 사회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전제가 되지 않으면 우리의 나중에 통일이고 행복이고 다 그다음 단계의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생명과 안전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준수하는 나라로 탈바꿈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좀 기다려보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앵커]
조금 더 인내해 달라, 그런 당부의 말씀이셨는데. 혹시 아까 어찌됐든 이게 정부의 책임 그다음에 정부의 책임 회피도 상당히 크지 않습니까? 정부 쪽에다 얘기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간단히 해 주시죠.

[인터뷰]
지금 사실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에 드릴 수 있는 말이 조금 다른데 예컨대 예전 정부 같으면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 정부에서 이런 참사가 발생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앞장서서 진상규명을 해내고 안전사회 종합대책을 만들어내면 이게 오히려 이 정부의 치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렇게 왔으니까요. 새로운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해서 정말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고 존중이 되는 그런 안전한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그렇게 기대하겠습니다.

[앵커]
안전한 사회, 이 단어를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박종운 변호사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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