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텔에 '인생'이 있다...사진작가 심규동

고시텔에 '인생'이 있다...사진작가 심규동

2017.12.08. 오후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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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규동 / 사진작가

[앵커]
고시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고시원, 원래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장기 수험생들이 생활 공간으로 선호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몸을 누일 수 있는 마지막 공간으로 꼽히고 있는데요.

보증금이 거의 없고 저렴한 월세 덕분에 직장인 그리고 학생을 비롯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고시텔 또 원룸텔, 미니 원룸 등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가 됐습니다.

몇 가지 짐을 두고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공간이죠. 5.0제곱미터, 1. 5평 고시텔 안의 인생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스튜디오에 심규동 사진작가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심규동 작가가 누구인지 소개하기에 앞서서 잠시 사진을 통해서 봤습니다마는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 그것부터 보면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심규동 작가가 찍은 사진 작품들을 보면서 설명을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저 사진은 제가 고시원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앵커]
복도네요.

[인터뷰]
복도거든요. 굉장히 좁은 복도예요.

[앵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인터뷰]
어깨가 거의 걸리는 정도. 거기서 다양한 사람들이 저 방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거죠.

[앵커]
지금 고시원의 복도를 찍은 사진을 보고 계신데. 한 사람 지나가기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다른 사진인데요.

[인터뷰]
이 사진은 고시원에는 어떻게 보면 다 빈곤하다는 생각만 갖고 있는데 사실은 또 다른 분도 있거든요. 그리고 저분도 댄스스포츠 대회도 준비하시고 해서 그 안에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꿈을 꾸는 사람도 있다는 그런 것을 좀 보여주고 싶었어요.

[앵커]
계속해서 다른 작품입니다. 여기 고시원 안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사람의 모습인데요.

[인터뷰]
저건 제 자신이에요.

[앵커]
본인의 모습을 찍으신 거예요?

[인터뷰]
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약간 제 사진이니까 연출하듯이 찍은 거거든요. 저렇게 위에서 찍은 건 최대한 공간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 찍었고요.

[앵커]
그러면 저건 본인이 직접 찍지 않았으니까 천장에다 사진기를 매달아놓고 찍은 겁니까?

[인터뷰]
네. 매달고 셀프 타이머를 누르고 10초 기다렸다가 딱 찍힐 때 찍힌 사진이죠.

[앵커]
고시원을 주로 작품의 대상으로 하셨는데 실제로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신 거죠?

[인터뷰]
네.

[앵커]
언제부터 고시원에서 살게 되셨습니까?

[인터뷰]
제가 꿈을 찾고 싶어서 전공 말고 다른 것들을 많이 했어요. 그 기간 동안 서울에 오면서 새로운 일도 하고 그때 갈 곳이 고시원이 가장 적당하더라고요.

갑자기 큰 목돈에 보증금도 필요 없고 그래서 서울에 올 때마다 고시원에 한 달, 세 달, 길게는 6개월 이렇게 살았고요. 그 기간을 다 합치면 4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고시원에 살게 된 것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이었겠네요?

[인터뷰]
아무래도 그렇죠.

[앵커]
그런데 고시원을 이렇게 사진 작품으로 만들어보겠다. 그러니까 사진 작품의 주제로 고시원을 택한 이유가 혹시 있을까요?

[인터뷰]
제가 고시원에 살면서 인지를 못하고 있었던 게 있어요. 사람들은 다 고시원 하면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이라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저는 살아 보니까 여기가 나이 든 사람도 있고 10년씩 사시는 분도 계시고 다양한 분들이 계셔서 저도 모르게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모르는 분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그걸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요. 또 하나는 제 개인적인 질문이 있었는데 고시원이 깨끗하고 괜찮은 고시원은 그냥 제가 살아도 괜찮은 것 같아요.

미니멀한 삶도 살 수 있고. 그래서 굳이 결혼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요즘 N포세대라는 단어도 나오잖아요. 그러면 오래 살아도 되겠다. 하지만 또 불안한 거예요. 그래서 직접 가서 그런 분들도 만나고 싶고. 어떻게 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앵커]
고시텔이라는 이 공간이 그냥 시험공부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생활의 모습도 작품으로 담고 싶었다 그런 얘기가 되겠네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지금 작품을 준비를 많이 하셨는데 이건 얼마나 걸렸습니까?

[인터뷰]
여기 고시원에 있던 기간이 10개월이에요. 그래서 사진을 찍는 순간은 한 순간이잖아요. 그래서 사람들, 그분들을 담기까지는 보통 한 6개월 정도 살다가 찍게 된 것 같아요.

[앵커]
계속 옮겨다니셨나요?

[인터뷰]
아니요. 같은 고시원에서 처음부터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죠. 그래서 그런 기간도 저는 사진 작업의 기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처음부터 나올 때까지 10개월 있었던 기간에.

[앵커]
그러니까 먼저 사진을 찍기 전에 고시원에 생활하시는 분들하고 친해지고 난 다음에 사진을 찍게 되신 거네요, 그러니까.

[인터뷰]
네, 그렇죠.

[앵커]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건 좋지만 이걸 싫어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얼굴이 익숙해져야 되고 친해져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겠네요.

[인터뷰]
그럼요. 저도 계속 거기 살아 왔던 입장이고 그래서 카메라를 드는 것 자체가 그 사람들한테 상처일 거라는 게 느껴졌어요.

[앵커]
처음에 반응은 어땠어요? 그런 사진 작품을 찍겠다고 했을 때.

[인터뷰]
처음에는 그냥 밖에 나가서 꽃을 예쁘게 찍어라, 그런 얘기도 들었거든요. 그렇지만 얘기를 하면서 사실 많은 분을 못 찍었어요. 그리고 이분들은 그나마 제 뜻을 좀 들어주신 분들이거든요.

[앵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는 걸 꺼리는 부분이 좀 있었다는 얘기네요.

[인터뷰]
네.

[앵커]
특별히 작품을 만들면서, 작품을 촬영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좁은 공간이고 또 그리고 협조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까 아무래도 작품을 찍고 구상을 하고 할 때 어려움이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인터뷰]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어요. 우선 공간이 좁은 의미로는 거리가 안 나오니까 뭐 하나를 찍으면 가깝게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제 주관이 들어가더라고요.

만약에 소주병을 찍으면 그 소주병만 거리가 나오니까 그 주변의 것들이 없어지니까 편견이 있는 거예요. 고단해서 소주를 먹는구나. 사실은 아니고 주변에서 같은 사람들도 넣을 수 있는데.

그래서 광각으로 찍으려고 최대한 제가 선입견이 빠지게 광각으로 하려고 노력을 했고 그래서 부감 촬영도 그런 식으로 하려고 노력했던 거고요.

그리고 또 하나 걸렸던 가장 큰 건 찍다 보니까 친해지잖아요, 같은 사람들인데. 꼭 이걸 굳이 찍어서 알려야 되나? 그 사람들한테 상처가 아닐까. 어떤 이용한다는 생각도 들고 거기에서 오는 자괴감이 되게 컸어요.

[앵커]
그러니까 고시텔의 너무 초라한 모습이 부각될까 봐 그것도 좀 염려가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렇다면 고시촌을 주제로 한 사진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인터뷰]
사회에 이런 현상이 있다는 걸 알려드린다고 항상 이렇게 많이 얘기를 했어요.

[앵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인터뷰]
그런데 그 안에 저는 다양한 메시지가 있거든요. 제가 만약에 기사 인터뷰를 하면 어떤 기사는 빈곤에 대한 얘기만 나오고 또 어떤 부분은 어떤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이 여기 온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다양한 쪽으로 제가 했던 얘기 중에 하나씩 나오더라고요.

어떤 댓글에 보니까 이 작가가 자기도 뭘 말하는지 모르고 찍었다. 이랬다 저랬다 말을 하는데.

[앵커]
그걸 다 담고 싶었다?

[인터뷰]
많은 것들을 다양하게 담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서 고시원에서 누워서 오이마사지를 하는 사진이 있는데 빈곤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면 내가 더 빈곤한 게 아니고 여기에서도 더 힘든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용기를 얻을 수도 있고 아니면 되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사람들은 보면서 이 공간에서도 자기를 관리하고 만족할 수 있구나. 내가 너무 일만 한 건 아닐까.

만약에 정치인들은 이런 것을 사회시스템 적으로 보고 어떤 개선 방안이 있을까. 한 사진을 통해서도 다양한 메시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앵커]
지금 작품들이 하나씩 지금 보여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작업한 작품들로 지난 5월에 국회에서 전시회를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반응이 어땠습니까?

[인터뷰]
사실 국회에서 한 전시회는 대선 기간하고 맞물려서.

[앵커]
지금 화면으로 나가고 있는데 보시면서 말씀하시죠.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보이는데요?

[인터뷰]
이거 제가 직접 찍은 영상이고요. 저 주변으로 다 제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어요.

[앵커]
지금 옆으로 돌면서 보니까 사진 작품들이 전시가 돼 있는 게 보이네요.

[인터뷰]
이건 하나의 어떻게 보면 사진전이기도 하지만 저는 퍼포먼스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 기간에 이곳에서 이런 사진을 보여준다는 것.

[앵커]
퍼포먼스로 생각을 하셨다. 그런데 정작 문재인 대통령이 저 전시회의 사진 작품 하나하나를 보고 가셨으면 좋겠는데 그냥 지나가셨는데요?

[인터뷰]
그건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으니까요.

[앵커]
의원회관에서 저렇게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때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나가셨군요. 저때는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죠?

[인터뷰]
저 날이 선거날이었어요. 그래서 개표하는...

[앵커]
개표하는 날이었어요?

[인터뷰]
네.

[앵커]
그랬군요.

[인터뷰]
사실 저 전시를 국회에서 하면서 느낀 게 있는데 뭔가 국회의원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뭔가 고민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때가 때라서 그런지 약간 오히려 외면하는 느낌이 강했고 그 안에 있던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더 관심을 갖는다거나 기자분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실망한 마음이 있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제가 전공자가 아닌데 이렇게 했으니까 전공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들이나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도 희망을 갖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건데 제가 놓치고 있는 게 있더라고요.

뭐였냐면 그냥 음지였다가 양지로 들춰내면서 고시원에 살았던 경험이 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치유가 되고 있는 것을 느꼈어요.

[앵커]
말씀하시는 가운데 전공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사진을 제대로 어디서 배우신 건 아니다. 아마추어 식으로 혼자 배워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신 건가요?

[인터뷰]
네. 항상 이렇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디서 사진을 배웠냐고. 거기에 대해서 답을 어떻게 하기가 되게 어려운 부분인데. 사진을 꼭 배워야 하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기술적인 면은 제가 인터넷 검색이든 책이든 많이 할 수 있어서 그렇게 공부를 했고 제가 좋아하는 사진작가분들이 계세요. 그분들한테 조언을 구하는 방식으로 배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한테 사진을 배웠다기보다 그 사진작가님을 배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앵커]
그렇군요. 전시회 장소로 국회의원회관을 택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까?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혹시 전하고 싶어서 거기를 택했나 싶어서요.

[인터뷰]
정치적인 메시지를 제가 정확하게 말하려고 하는 건 아니었고요. 말 그대로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예전에 보니까 특히 모르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예. 아예 관심조차 없거나. 그래서 그냥 들이미는 느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준비했던 것 같아요.

[앵커]
저 전시회를 하게 되면 보통 수익은 작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얻지 않습니까? 5월달에 있었던 전시회에서 작품들이 좀 팔렸나요?

[인터뷰]
하나, 액자 팔렸습니다.

[앵커]
하나 팔렸어요?

[인터뷰]
네. 사실 제가 작품을 저걸 팔려고 찍은 것도 아니고 제 스스로 셀프 사진이나 풍경은 팔 수 있겠지만 다른 분들이 나오는 사진은 상업적으로 쓸 생각이 없거든요.

[앵커]
작가님의 작품을 걸어놓은 국회의원이 있다고요?

[인터뷰]
네, 김현아 의원이요.

[앵커]
김현아 의원. 어떤 작품인가요?

[인터뷰]
지금 나오는 제 셀프 포토레이트.

[앵커]
이게 김현아 의원실에 걸려 있는 작품이에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앵커]
혹시 국회에서 팔았다고 하는 유일한 작품 한 점이 바로 저건가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앵커]
작품 판매 가격이 얼마였는지는 여쭤보지는 않겠습니다. 사진작가가 자신의 사진 작품을 파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죠?

[인터뷰]
네, 그렇죠.

[앵커]
어려운 작업을 하신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주제도 서민들의 삶의 공간입니다.

고시텔을 주로 사진 주제로 해서 작품을 하고 있는데 고시텔에서 지금 살고 계시는 분들, 또 그 작은 공간이지만, 1. 5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큰 꿈을 꾸고 계신 분들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인터뷰]
사실 제가 어떤 말을 하기가 되게 어렵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꿈을 꿔도 되고 꿈을 안 꿔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하지만 꼭 한 가지 말씀 드린다면 너무 현실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얘기하고 싶고 꼭 그렇게 비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우리나라 통계를 보니까 고시텔이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1만 1800여 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공간이지만 큰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도 계시고 또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도 계신데요. 아무래도 겨울이 지내기는 좀 힘든 계절이죠?

[인터뷰]
네, 그럼요.

[앵커]
여름도 힘들다고는 하지만 겨울도 역시 못지않게 계절이라서 이번 겨울, 예년보다는 춥지 않은 그런 겨울이 됐으면 하는 그런 바람을 갖게 됩니다. 고시텔을 중심으로 해서 사진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심규동 사진작가와 함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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