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만나다 [뉴욕, 시드니, 상하이, 샌프란시스코 소녀상 이야기]

소녀를 만나다 [뉴욕, 시드니, 상하이, 샌프란시스코 소녀상 이야기]

2019.08.11. 오전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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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 뉴욕 소녀상
소녀가 앉아 있습니다.

거칠게 잘린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단절된 것을 상징합니다.

굳게 쥔 두 손은, 진정한 사과 없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의미합니다.

소녀상 옆 빈 의자는, 세상에 아픔조차 드러내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한 자립니다.

이렇게 어루만지면, 깊은 상처가 좀 아물까요?

2년 전, 미국의 심장 뉴욕 맨해튼에 생긴 평화의 소녀상.

이 소녀상은 조금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김민선 / 前 뉴욕 한인회장 : 모든 인권 이슈가 있는 곳에 찾아가서 우리 이슈를 알리기 위한, 그래서 이렇게 움직이는 걸로 만들고 무게도 다른 기존 위안부 소녀상보다 6배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뉴욕 동포들은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불경기에 과연 돈이 얼마나 모일까,

고민과 달리 금세 1억 원이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이정화 / 한인 이민사 박물관 이사장 : 부끄럽고 어두웠던 것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면서 오늘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잊지 않고 살아가야만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 것이니까….]

[김민선 / 前 뉴욕 한인회장 : 전 세계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이끌어가는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미국 의회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겁니까. 일본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외면하거나, 이러한 진실을 망각하는 것. 잊어버리는 것. 그게 당신들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겁니다.]

3.1 운동 100주년인 올해,

소녀는 북한 나들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 호주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지난 2016년 호주 시드니에도 소녀상이 들어섰습니다.

외국에서는 북미 밖에 생긴 최초의 소녀상인데요.

소녀에게 쉴 곳을 내어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 교회의 빌 크루스 목사.

지난 2015년, 시드니에서 우리 동포들이 소녀상을 세우려다 일본의 훼방으로 무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빌 크루스 / 인권운동가·목사 :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 여성들을 기억하기 위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은 전쟁 피해를 겪은 모든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에 이 일은 제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일본인 만 6천여 명이 설치 반대 서명을 하는가 하면,

소녀상은 일본계 호주인을 향한 인종차별과 집단 따돌림이라며 인권위에 제소까지 하기도 했죠.

[전은숙 /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실천 추진위원회' 사무장 : 호주 사회가 이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하기 위한 상징물이 아니라 전쟁을 막고 전쟁 기간 동안 여성들이 고통받았던 것을 기리는 평화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절대 (해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빌 목사는 평화의 소녀상은 한일 간 정치적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선을 긋습니다.

[빌 크루스 / 인권운동가·목사 : 저 역시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아들이자 오빠입니다. 당신이 겪은 일은 제 어머니, 동생, 딸이 겪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고통은 나의 고통입니다.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게 하기 위해서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3. 중국 상하이 / 한-중 평화의 소녀상

일제가 평범한 여성들을 전쟁터에 끌고 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성 노예로 만든 건 우리나라 소녀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적어도 20만 명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다고 알려졌습니다.

한국과 중국, 같은 또래의 소녀가 나란히 앉아있습니다.

친구와 함께여서 조금은 덜 외로울까요?

[쑤 즈량 / 상하이 사범대학교 교수 : 중국과 한국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특히 한국 여성 대부분이 일본군에 속아 중국에서 피해를 입었죠. 중국에 한-중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된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설치하게 됐습니다.]

상하이 위안부 역사박물관에는 일본군 악행의 증거가 고스란히 전시돼있습니다.

일본군이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소녀들에게 보급한 독한 연고와 콘돔까지.

모두 중국 곳곳의 위안소에서 발견된 것들입니다.

[쑤 즈량 / 상하이 위안부 역사 박물관장 : 여기는 2차대전 시기에 일본군 위안소에서 사용했던 물품입니다. 특히 콘돔은 중요한 전쟁물자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 해군이 보급한 콘돔입니다.]

지옥 같은 세월은 흐르고, 소녀들은 여전히 피 묻은 치마를 감춘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쑤 즈량 교수는 여전히 깊은 소녀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한국과 중국, 그리고 또 다른 피해국이 연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쑤 즈량 / 상하이 사범대학교 교수 : 한국, 중국, 그리고 다른 피해국과 연합해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전쟁의 폭력성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우리는 반드시 비판과 반성을 통해 세계 평화를 지켜야 합니다.]

4. 샌프란시스코 한국-중국-필리핀 소녀상

나이도 국적도 다른 세 명의 소녀.

그리고 소녀들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고 김학순 할머니.

지난 2017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피해국 시민 단체들이 연대해 세운 기림비입니다.

[김한일 / 김진덕·정경식 재단 대표 : 故 김복동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뭉치면 못할 일이 없다고. 우리 13개 단체가 같이 뭉쳤습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어려운 압박을 당했어도 우리가 기림비를 세웠습니다.]

모금보다 어려운 것은 역시나 일본의 정치적 공세였습니다.

방해 공작에 맞서 이번에는 중국계 미국인 판사들이 나섰습니다.

직업 윤리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에 망설임도 있었습니다.

[릴리안 싱 / 前 샌프란시스코시 판사 : 당시 현직 판사로서 정부에 로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념비를 설치하기 위해서 저는 판사를 사임하고 은퇴해야만 했습니다.]

이들이 '위안부' 기림비를 통해 바랐던 건,

그저 진심 어린 사과와 평화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줄리 탱 / 前 샌프란시스코시 판사 :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세계 공동체 누구나 기념비와 비문을 보고 일본 군대의 손에 끔찍한 고통을 당한 여성과 소녀 수십만 명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일본이회개하고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는 평화는 없을 겁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녀상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한일 간의 정치적 공방이나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과거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인간적인 시대에 벌어진 참혹한 우리의 역사이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슬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길 바라는 미래 세대를 위한 평화의 메시지입니다.

이제 생존자는 스무 명.

꽃다운 청춘이 갈기갈기 찢겨버린 위안부 할머니의 상처를 치유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것도 잘 압니다.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는 그때 그 소녀를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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