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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리앤킴, 사회자]
"그는 내가 아는 가장 잘생긴 84살이에요. 정창화 감독을 소개합니다"
팔순의 한국 신사가 무대에 섰다.
주인공은 정창화 감독.
샌디에이고 아시아 영화제가 주는 평생공로상을 받는 자리다.
[녹취:정창화, 영화 감독]
"영화는 제 삶의 전부입니다. 내가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은 보너스가 되겠지만 나는 영화 감독을 다시 할 겁니다."
1972년에 만든 정 감독의 작품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무술 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회고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지금도 그의 영화를 추억하고 있다.
[인터뷰:필립 로렌조, 샌디에이고 영화제 프로그래머]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이 영화는 정말 놀라운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정말 놀랐어요. 이런 액션을 전에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음악학교 출신의 낭만 청년 정창화는 1953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신파 영화가 주류였던 시절, 국내에 막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 영화에 정 감독은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셰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템포가 빠른 편집과 스피디한 액션, 그리고 총격 장면...제가 거기에서 '아! 우리 한국 시장과 제작 여건에 소규모로도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적인 액션과 빠른 전개를 앞세운 정 감독의 작품은 국내에서 잇따라 성공을 거둔다.
[인터뷰:임권택, 영화 감독·정창화 감독 연출부 출신]
"(정 감독님은) 다른 액션 영화보다 훨씬 사실감 있고, 박력 있고 이런 표현들을 했었던 것 같아요. 철저하게 알아내고, 알아낸 바탕 위에서 자기 생각을 더 보태서 찍었던 감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1968년 정 감독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홍콩의 쇼브라더스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된다.
한국 영화계의 해외 진출 1호가 된 것이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당시 쇼 브라더스는 감독이 무협감독이 80%였다. 하지만) 란란쇼 사장은 뭘 생각했냐면 '무협영화가 언젠가 사양길에 접어들 것이다' 생각하고 내가 만든 '천면마녀'를 소속 감독들에게 전부 보게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액션 영화는 이렇게 만든다는 것을 연구하라'고 말했습니다."
쇼브라더스 시절 만든 대표작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정 감독은 기예에 가까웠던 중국 무협영화의 무술을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기법으로 연출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아시아 영화로는 처음으로 북미 흥행수입 1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물론 스토리가 탄탄했지만, 액션이 새로웠다는 얘기죠. (영화 장면 over) / 예를 들어 카메라를 와이드 렌즈를 써서 주먹이 카메라를 향해 날아 들어오게 했습니다. / 독수리가 자신이 노리는 먹잇감을 공중에서부터 덮쳐 들어오는 느낌, 그런 것을 응용해서 카메라의 효과를 냈던거죠."
10년 가까이 홍콩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 감독은 영화 제작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제작한 29편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군사 정권 시절, 문화계를 옥죄던 검열 때문이었다.
[인터뷰:임권택, 영화 감독·정창화 감독 연출부 출신]
"정부가 만든 검열기준을 벗어난 것은 무엇이든 다 잘라버렸던 시대였고... (홍콩에서) 자유를 누렸던 감독이기 때문에 (정 감독님이) 더 못견디셨을 거예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정 감독은 80년대 중반 미국으로 떠난다.
20년 가까이 잊혀진 존재였던 그는 지난 2천 3년 부산영화제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한류' 바람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한국 영화인들의 모습은 격세지감 그 자체였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나 역시 홍콩에서 활동할 때 뭔가 새롭게, 그들과 차별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절대로 모방은 성공할 수 없으니까 (후배 영화인들이) 내 것을 만들어서 좋은 영화를 만들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 감독은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고 연구한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뛰어넘을 또 하나의 걸작을 남기는 것이 올해 84살 정창화 감독의 꿈이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제 액션 영화라는 것은 어른들이 꿈과 상상을 실현시켜주는 판타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척박한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뭔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거든요.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정창화가 마지막으로 멋있게 남기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겁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그는 내가 아는 가장 잘생긴 84살이에요. 정창화 감독을 소개합니다"
팔순의 한국 신사가 무대에 섰다.
주인공은 정창화 감독.
샌디에이고 아시아 영화제가 주는 평생공로상을 받는 자리다.
[녹취:정창화, 영화 감독]
"영화는 제 삶의 전부입니다. 내가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은 보너스가 되겠지만 나는 영화 감독을 다시 할 겁니다."
1972년에 만든 정 감독의 작품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무술 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회고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지금도 그의 영화를 추억하고 있다.
[인터뷰:필립 로렌조, 샌디에이고 영화제 프로그래머]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이 영화는 정말 놀라운 작품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정말 놀랐어요. 이런 액션을 전에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음악학교 출신의 낭만 청년 정창화는 1953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신파 영화가 주류였던 시절, 국내에 막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 영화에 정 감독은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셰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템포가 빠른 편집과 스피디한 액션, 그리고 총격 장면...제가 거기에서 '아! 우리 한국 시장과 제작 여건에 소규모로도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적인 액션과 빠른 전개를 앞세운 정 감독의 작품은 국내에서 잇따라 성공을 거둔다.
[인터뷰:임권택, 영화 감독·정창화 감독 연출부 출신]
"(정 감독님은) 다른 액션 영화보다 훨씬 사실감 있고, 박력 있고 이런 표현들을 했었던 것 같아요. 철저하게 알아내고, 알아낸 바탕 위에서 자기 생각을 더 보태서 찍었던 감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1968년 정 감독은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홍콩의 쇼브라더스와 전속 계약을 맺게 된다.
한국 영화계의 해외 진출 1호가 된 것이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당시 쇼 브라더스는 감독이 무협감독이 80%였다. 하지만) 란란쇼 사장은 뭘 생각했냐면 '무협영화가 언젠가 사양길에 접어들 것이다' 생각하고 내가 만든 '천면마녀'를 소속 감독들에게 전부 보게 만들었어요. 그리고는 '액션 영화는 이렇게 만든다는 것을 연구하라'고 말했습니다."
쇼브라더스 시절 만든 대표작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정 감독은 기예에 가까웠던 중국 무협영화의 무술을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기법으로 연출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아시아 영화로는 처음으로 북미 흥행수입 1위를 차지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물론 스토리가 탄탄했지만, 액션이 새로웠다는 얘기죠. (영화 장면 over) / 예를 들어 카메라를 와이드 렌즈를 써서 주먹이 카메라를 향해 날아 들어오게 했습니다. / 독수리가 자신이 노리는 먹잇감을 공중에서부터 덮쳐 들어오는 느낌, 그런 것을 응용해서 카메라의 효과를 냈던거죠."
10년 가까이 홍콩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 감독은 영화 제작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제작한 29편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군사 정권 시절, 문화계를 옥죄던 검열 때문이었다.
[인터뷰:임권택, 영화 감독·정창화 감독 연출부 출신]
"정부가 만든 검열기준을 벗어난 것은 무엇이든 다 잘라버렸던 시대였고... (홍콩에서) 자유를 누렸던 감독이기 때문에 (정 감독님이) 더 못견디셨을 거예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정 감독은 80년대 중반 미국으로 떠난다.
20년 가까이 잊혀진 존재였던 그는 지난 2천 3년 부산영화제에서 열린 회고전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한류' 바람과 함께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한국 영화인들의 모습은 격세지감 그 자체였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나 역시 홍콩에서 활동할 때 뭔가 새롭게, 그들과 차별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절대로 모방은 성공할 수 없으니까 (후배 영화인들이) 내 것을 만들어서 좋은 영화를 만들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정 감독은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고 연구한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뛰어넘을 또 하나의 걸작을 남기는 것이 올해 84살 정창화 감독의 꿈이다.
[인터뷰:정창화, 영화 감독]
"제 액션 영화라는 것은 어른들이 꿈과 상상을 실현시켜주는 판타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척박한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뭔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거든요.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정창화가 마지막으로 멋있게 남기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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