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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선덕여왕 이후에 화랑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는데요.
신라시대 두 화랑의 맹세를 담은 비석 '임신서기석 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가 개막됐습니다.
진흥황 순수비를 비롯한 신라시대 중요한 비석들도 함께 볼 수 있어 6세기 신라의 사회상을 조명해 볼 수 있습니다.
김정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하늘 앞에 맹세하여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지키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일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크게 어려워지면 가히 행할 것을 맹세한다 .시경, 상서, 예기, 춘추를 차례로 익히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 한다.'
신라의 두 화랑이 나라에 대한 충성과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함께 세운 보물 1141호 '임신서기석'.
1934년 경주에서 발견된 뒤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신라가 한강까지 영토를 넓힌 것을 기념해 세워진 국보 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지방관을 파견해 주민들을 성 쌓기 작업에 동원하던 풍습을 기록한 '남산신성비'도 모두 6세기 신라문화를 대변하는 비석들입니다.
명실공히 6세기 신라문화는 '비석의 문화'로 대변됩니다.
[인터뷰:최성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일부 학자들은 그래서 6세기를 금석문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전에 신라문화가 황금유물로 대표가 됐다면 6세기 들어서는 비석이 갑자기 많이 나타나는데..."
중앙통치체제를 갖춰 율령을 반포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던 신라 사람들은 그 왕성한 기운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영토 곳곳에 문자를 새긴 비석을 세우며 통일신라로 나가는 기틀을 마련합니다.
신라의 가장 오래된 비석들인 포항'중성리비'와 영일 '냉수리비'에는 지방의 주민을 율령으로 통치한다는 내용의 글이 담겨있고, 물자나 세금을 중앙으로 올리면서 꼬리표로 붙인 목간들에는 신라가 통치하던 지방의 이름부터 관등 신분 인명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습니다.
[인터뷰: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우리가 신라 그러잖아요. 신라가 원래는 '덕업일신 망라사방' 입니다. 거기서 '신'자하고 '라'자를 따오는 데 6세기 들어서 국호가 됩니다.문자와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신라가 발전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신라'라는 국명과 '왕'이라는 왕호를 사용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6세기 신라.
당시 선조들이 직접 써 놓은 비문을 통해 신라가 남겨놓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YTN 김정아[ja-kim@ytn.co.kc]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선덕여왕 이후에 화랑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는데요.
신라시대 두 화랑의 맹세를 담은 비석 '임신서기석 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회가 개막됐습니다.
진흥황 순수비를 비롯한 신라시대 중요한 비석들도 함께 볼 수 있어 6세기 신라의 사회상을 조명해 볼 수 있습니다.
김정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하늘 앞에 맹세하여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지키고 과실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일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크게 어려워지면 가히 행할 것을 맹세한다 .시경, 상서, 예기, 춘추를 차례로 익히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 한다.'
신라의 두 화랑이 나라에 대한 충성과 공부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함께 세운 보물 1141호 '임신서기석'.
1934년 경주에서 발견된 뒤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신라가 한강까지 영토를 넓힌 것을 기념해 세워진 국보 3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지방관을 파견해 주민들을 성 쌓기 작업에 동원하던 풍습을 기록한 '남산신성비'도 모두 6세기 신라문화를 대변하는 비석들입니다.
명실공히 6세기 신라문화는 '비석의 문화'로 대변됩니다.
[인터뷰:최성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일부 학자들은 그래서 6세기를 금석문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전에 신라문화가 황금유물로 대표가 됐다면 6세기 들어서는 비석이 갑자기 많이 나타나는데..."
중앙통치체제를 갖춰 율령을 반포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던 신라 사람들은 그 왕성한 기운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영토 곳곳에 문자를 새긴 비석을 세우며 통일신라로 나가는 기틀을 마련합니다.
신라의 가장 오래된 비석들인 포항'중성리비'와 영일 '냉수리비'에는 지방의 주민을 율령으로 통치한다는 내용의 글이 담겨있고, 물자나 세금을 중앙으로 올리면서 꼬리표로 붙인 목간들에는 신라가 통치하던 지방의 이름부터 관등 신분 인명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습니다.
[인터뷰: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우리가 신라 그러잖아요. 신라가 원래는 '덕업일신 망라사방' 입니다. 거기서 '신'자하고 '라'자를 따오는 데 6세기 들어서 국호가 됩니다.문자와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신라가 발전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신라'라는 국명과 '왕'이라는 왕호를 사용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6세기 신라.
당시 선조들이 직접 써 놓은 비문을 통해 신라가 남겨놓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YTN 김정아[ja-kim@ytn.co.k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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