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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과거 우리나라에 기생이 있었다면, 일본엔 게이샤가 있었죠?
화려한 기모노에 하얀분과 빨간 입술, 그리고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게이샤.
한 마디로 만능 전통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게이샤의 추억'이란 영화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게이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리포트]
일본 나라 시내의 간린 지구.
기쿠노 씨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게이코, 즉 게이샤 수련을 받았습니다.
게이코는 게이샤와 같은 의미로, 도쿄를 비롯한 관동 지방에서는 게이샤로 오사카와 교토 지방에서는 게이코라고 부릅니다.
벌써 서른 넷이지만 근방에서는 최연소 게이샤입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간린은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게이코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게이샤는 평생에 걸쳐 다도와 서예, 악기, 춤 등 다양한 전통 예술을 익히게 됩니다.
벌써 2백년 이상이 지났지만 게이샤 전통은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복잡한 매듭으로 머리를 묶고, 화려한 기모노를 입습니다.
게이샤의 역사는 18세기 중반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간린 지구는 메이지 시대 말부터 쇼와 시대 초까지 번영을 누렸어요. 즉 1900년대 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죠. 당시에 약 200명의 게이코가 이곳에서 활동했어요."
게이샤가 되려면 오랫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 합니다.
과거에는 주로 가난한 집 여자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게이샤 수업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이샤의 수도 크게 줄었습니다.
간린 지구에는 한때 많은 게이샤가 모여 살았습니다.
1900년대 초에서 193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약 200명의 게이샤가 활동했는데요.
[인터뷰:기쿠노, 게이코]
"당시 간린에 계셨던 분들께 들었어요. 그때는 게이코의 수도 많았고 연회와 손님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매우 화려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기쿠노, 게이코]
"지금은 연회를 할 수 있는 찻집이나 식당이 크게 줄었어요. 덩달아 게이코의 수도 크게 감소했죠."
게이샤를 후원하는 부유한 남성을 단나라고 부릅니다.
단나는 게이샤의 수업료와 의복비 같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합니다.
단나가 된다는 것은 곧 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나라에서는 주로 목재 거래나 잉크 제조로 돈을 번 사람들이 단나가 됐습니다.
하지만 나라시의 경제가 쇠퇴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후원자도 덩달아 줄었습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첫번째 이유는 산업 침체 때문이고 또다른 이유는 일본 사회의 변화 때문이죠. 근대 기업 구조에선 한 개인이 회사 전체를 소유할 수 없으니까요. 즉 한 명이 돈을 전부 가졌던 때는 지났어요. 그 결과 게이코의 후원자도 급속히 감소하게 됐죠."
나라시의 게이코 지구를 부활시키기 위해 후원자인 단나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단나가 되는 거죠. 후원자들을 여러 명 모아 그룹으로 만들어 게이코나 마이코를 후원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입니다."
게이샤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게이코는 일본 문화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죠. 바쁜 현대 생활에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걸 그들에게 배울 수 있어요.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지만 현대 일본인이 배울 만한 것들이 많아요. 계절에 대한 감사함이나 유려한 화술, 그리고 우아함이요."
요즘의 게이샤들은 전통 식당이나 찻집에서 열리는 연회에 고용됩니다.
게이샤 한 명을 고용하는 데 한 시간에 400~500달러, 우리 돈으로 3~40만원대의 비용이 들고 보통 4~5시간씩 고용합니다.
지키고 싶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일본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과거 우리나라에 기생이 있었다면, 일본엔 게이샤가 있었죠?
화려한 기모노에 하얀분과 빨간 입술, 그리고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게이샤.
한 마디로 만능 전통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게이샤의 추억'이란 영화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게이샤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리포트]
일본 나라 시내의 간린 지구.
기쿠노 씨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게이코, 즉 게이샤 수련을 받았습니다.
게이코는 게이샤와 같은 의미로, 도쿄를 비롯한 관동 지방에서는 게이샤로 오사카와 교토 지방에서는 게이코라고 부릅니다.
벌써 서른 넷이지만 근방에서는 최연소 게이샤입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간린은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 게이코의 본거지가 되었습니다."
게이샤는 평생에 걸쳐 다도와 서예, 악기, 춤 등 다양한 전통 예술을 익히게 됩니다.
벌써 2백년 이상이 지났지만 게이샤 전통은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얼굴에 하얀 분칠을 하고, 복잡한 매듭으로 머리를 묶고, 화려한 기모노를 입습니다.
게이샤의 역사는 18세기 중반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간린 지구는 메이지 시대 말부터 쇼와 시대 초까지 번영을 누렸어요. 즉 1900년대 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죠. 당시에 약 200명의 게이코가 이곳에서 활동했어요."
게이샤가 되려면 오랫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 합니다.
과거에는 주로 가난한 집 여자 아이들이 어린 나이부터 게이샤 수업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이샤의 수도 크게 줄었습니다.
간린 지구에는 한때 많은 게이샤가 모여 살았습니다.
1900년대 초에서 193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약 200명의 게이샤가 활동했는데요.
[인터뷰:기쿠노, 게이코]
"당시 간린에 계셨던 분들께 들었어요. 그때는 게이코의 수도 많았고 연회와 손님도 많았다고 하더군요. 매우 화려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기쿠노, 게이코]
"지금은 연회를 할 수 있는 찻집이나 식당이 크게 줄었어요. 덩달아 게이코의 수도 크게 감소했죠."
게이샤를 후원하는 부유한 남성을 단나라고 부릅니다.
단나는 게이샤의 수업료와 의복비 같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합니다.
단나가 된다는 것은 곧 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나라에서는 주로 목재 거래나 잉크 제조로 돈을 번 사람들이 단나가 됐습니다.
하지만 나라시의 경제가 쇠퇴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후원자도 덩달아 줄었습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첫번째 이유는 산업 침체 때문이고 또다른 이유는 일본 사회의 변화 때문이죠. 근대 기업 구조에선 한 개인이 회사 전체를 소유할 수 없으니까요. 즉 한 명이 돈을 전부 가졌던 때는 지났어요. 그 결과 게이코의 후원자도 급속히 감소하게 됐죠."
나라시의 게이코 지구를 부활시키기 위해 후원자인 단나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단나가 되는 거죠. 후원자들을 여러 명 모아 그룹으로 만들어 게이코나 마이코를 후원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입니다."
게이샤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전통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가츠베 츠키코, 인류학자]
"게이코는 일본 문화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죠. 바쁜 현대 생활에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걸 그들에게 배울 수 있어요. 무조건 좋다는 건 아니지만 현대 일본인이 배울 만한 것들이 많아요. 계절에 대한 감사함이나 유려한 화술, 그리고 우아함이요."
요즘의 게이샤들은 전통 식당이나 찻집에서 열리는 연회에 고용됩니다.
게이샤 한 명을 고용하는 데 한 시간에 400~500달러, 우리 돈으로 3~40만원대의 비용이 들고 보통 4~5시간씩 고용합니다.
지키고 싶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일본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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