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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에 논개가 있었다면 전남 해남에는 명량대첩 승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여인 '어란'이 있습니다.
HBC 호남방송 박소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전남 해남의 땅끝인 송지면 어란리.
이 마을에는 바위를 깎아 세운 것 처럼 높이 솟은 여낭치로 불리는 절벽이 있습니다
이 절벽에서 어란 여인이 명량대첩 다음날,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왜군 장수의 애첩인 어란 여인은 이순신에게 명량해 출전 기일을 알려 나라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연인인 왜군 장수가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4백여 동안 전설로 만 전해진 어란 여인.
80대 한 노인이 몇년의 연구 끝에 어란 여인이 실존 인물로 추측되는 연관성을 여러 문헌에서 발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박승룡, 어란 보존현창회]
"일본 사람이 쓴 책하고 내가 그것을 보고 난중일기를 조사하고 왕조실록을 조사하고 김훈의 칼의노래 등을 전부 조사를 해서 결합해 볼 때 (어란 이야기)그 고증이 딱 들어맞아요."
80대 노인의 열정은 최근 마을 동산에 '어란'비가 세워진 계기가 됐고 일본 향토사학자들도 어란 연구에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인터뷰:에이메께 이마바라시, 일본 향토사학자]
"명량해전 출전한 간마사가게(왜군 장수)는 간달장의 네번째 아들이고 그것은 일본 고문서에 분명히 기재가 돼 있고 저도 그 문서를 봤습니다."
하지만 어란 여인은 여전히 설화 속 인물이라는 역사적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도 우리 기록에 없지만 일본 기록을 참고해 유적지가 복원됐던 것 처럼 어란 여인의 얼을 자치단체와 학계가 나서 깊이있는 학술적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HBC 박소영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임진왜란 때 경남 진주에 논개가 있었다면 전남 해남에는 명량대첩 승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여인 '어란'이 있습니다.
HBC 호남방송 박소영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전남 해남의 땅끝인 송지면 어란리.
이 마을에는 바위를 깎아 세운 것 처럼 높이 솟은 여낭치로 불리는 절벽이 있습니다
이 절벽에서 어란 여인이 명량대첩 다음날,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왜군 장수의 애첩인 어란 여인은 이순신에게 명량해 출전 기일을 알려 나라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연인인 왜군 장수가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4백여 동안 전설로 만 전해진 어란 여인.
80대 한 노인이 몇년의 연구 끝에 어란 여인이 실존 인물로 추측되는 연관성을 여러 문헌에서 발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박승룡, 어란 보존현창회]
"일본 사람이 쓴 책하고 내가 그것을 보고 난중일기를 조사하고 왕조실록을 조사하고 김훈의 칼의노래 등을 전부 조사를 해서 결합해 볼 때 (어란 이야기)그 고증이 딱 들어맞아요."
80대 노인의 열정은 최근 마을 동산에 '어란'비가 세워진 계기가 됐고 일본 향토사학자들도 어란 연구에 뜻을 함께 했습니다.
[인터뷰:에이메께 이마바라시, 일본 향토사학자]
"명량해전 출전한 간마사가게(왜군 장수)는 간달장의 네번째 아들이고 그것은 일본 고문서에 분명히 기재가 돼 있고 저도 그 문서를 봤습니다."
하지만 어란 여인은 여전히 설화 속 인물이라는 역사적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암 왕인박사 유적지도 우리 기록에 없지만 일본 기록을 참고해 유적지가 복원됐던 것 처럼 어란 여인의 얼을 자치단체와 학계가 나서 깊이있는 학술적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HBC 박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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