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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두 배의 크기로 스페인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는 마요르카 섬.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집은 애국가의 작곡가로 알려진 안익태 선생의 고택입니다.
애국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미국을 거쳐 스페인에서 생을 마감한 안익태 선생의 삶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요.
이곳 마요르카에서 안익태 선생은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재작년에 아버지를 '마요르카를 명예롭게 빛낸 인물'로 표창했어요. 매년 한 사람을 지정해서 표창하는데, 모두가 동의해야 합니다. 각각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 약 20명 모두가 동의했어요.]
비행기를 타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기에 매년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지휘자였던 안익태 선생.
유럽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던 중 아내 롤리타 씨를 만나 스페인에 정착하게 되었는데요.
마요르카에 교향악단이 창단된 후 초대 지휘자로 취임해 지역의 문화 예술계 진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이 집에서는 매주 콘서트를 했어요. 사적인 오케스트라였고 회원들이 있었죠. 늘 자리는 만원이었어요.]
지역 사람들에게 음악적 지식을 아낌없이 베풀었던 덕에 집에는 늘 많은 사람이 모여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고요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이 음악가의 집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아버지는 이 집을 만날 때까지 마요르카에서 집을 6개월간 찾으셨어요. 이 집의 음향효과는 매우 특별해요. 이곳에서 연주하면 집 전체에서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집의 뒤편까지도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음악적 교감을 나누며 안익태 선생과 아내 롤리타 씨, 그리고 세 딸이 함께 살던 집.
지금은 막내딸 레오노르 씨가 혼자 이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어머니는 아버지를 많이 사랑하셨어요. 아버지를 소개하는 다큐 영상을 보고 아버지에게 반하셨었어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주 슬프게 사셨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인들 덕분에 90세가 되셔서도 한국에 콘서트를 다니시며 늘 좋아하셨어요.]
평생 남편과 한국을 사랑하다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롤리타 씨는 국립묘지의 남편 옆자리에 안장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2016년, 안익태 선생 탄생 110주년을 맞아 고택을 대대적으로 보수해 1층을 기념전시관으로 재단장했습니다.
이곳에 안익태 선생의 유품과 사진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함께 생활하던 공간에서 계속 아버지를 마주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레오노르 씨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선명합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아버지가 미국에서 애국가를 쓰신 이후로 45년까지 만나는 모든 한국인에게 애국가를 나누어주셨어요.]
마요르카에 문화 예술을 전파한 위대한 음악가이자 자랑스러운 이웃.
이제는 그의 아름다운 집만이 유품이자 기념관으로 남아있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마요르카에) 한국 문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한 사람들을 많이 알아요. 한국은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해지고 있어요.]
한국에 돌아가 음악 학교를 만들려던 아버지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마요르카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안익태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이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 되기를 딸은 바라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집은 애국가의 작곡가로 알려진 안익태 선생의 고택입니다.
애국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 미국을 거쳐 스페인에서 생을 마감한 안익태 선생의 삶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요.
이곳 마요르카에서 안익태 선생은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재작년에 아버지를 '마요르카를 명예롭게 빛낸 인물'로 표창했어요. 매년 한 사람을 지정해서 표창하는데, 모두가 동의해야 합니다. 각각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 약 20명 모두가 동의했어요.]
비행기를 타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기에 매년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지휘자였던 안익태 선생.
유럽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던 중 아내 롤리타 씨를 만나 스페인에 정착하게 되었는데요.
마요르카에 교향악단이 창단된 후 초대 지휘자로 취임해 지역의 문화 예술계 진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이 집에서는 매주 콘서트를 했어요. 사적인 오케스트라였고 회원들이 있었죠. 늘 자리는 만원이었어요.]
지역 사람들에게 음악적 지식을 아낌없이 베풀었던 덕에 집에는 늘 많은 사람이 모여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고요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이 음악가의 집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아버지는 이 집을 만날 때까지 마요르카에서 집을 6개월간 찾으셨어요. 이 집의 음향효과는 매우 특별해요. 이곳에서 연주하면 집 전체에서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집의 뒤편까지도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음악적 교감을 나누며 안익태 선생과 아내 롤리타 씨, 그리고 세 딸이 함께 살던 집.
지금은 막내딸 레오노르 씨가 혼자 이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어머니는 아버지를 많이 사랑하셨어요. 아버지를 소개하는 다큐 영상을 보고 아버지에게 반하셨었어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주 슬프게 사셨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인들 덕분에 90세가 되셔서도 한국에 콘서트를 다니시며 늘 좋아하셨어요.]
평생 남편과 한국을 사랑하다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롤리타 씨는 국립묘지의 남편 옆자리에 안장돼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2016년, 안익태 선생 탄생 110주년을 맞아 고택을 대대적으로 보수해 1층을 기념전시관으로 재단장했습니다.
이곳에 안익태 선생의 유품과 사진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함께 생활하던 공간에서 계속 아버지를 마주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레오노르 씨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선명합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아버지가 미국에서 애국가를 쓰신 이후로 45년까지 만나는 모든 한국인에게 애국가를 나누어주셨어요.]
마요르카에 문화 예술을 전파한 위대한 음악가이자 자랑스러운 이웃.
이제는 그의 아름다운 집만이 유품이자 기념관으로 남아있습니다.
[레오노르 안 / 막내딸 : (마요르카에) 한국 문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한 사람들을 많이 알아요. 한국은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해지고 있어요.]
한국에 돌아가 음악 학교를 만들려던 아버지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지만, 마요르카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안익태 선생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이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 되기를 딸은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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