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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지난 1937년 일제의 핍박을 피해 옛 소련 땅에 이주해 살던 우리 동포 18만명이 하루 아침에 화물열차에 강제로 태워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옮겨졌습니다.
꼭 70년이 되는 올해, 현지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집니다.
글로벌 코리안에서는 중앙아시아 한인 강제이주 70년을 맞아 강제 이주의 현장을 돌아보고, 고난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강제 이주 첫 기착지였던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현장을 찾았습니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땅굴을 파고 살아야 했던 고난의 현장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줍니다.
전상중 리포터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우슈토베 위치 실크지도 有]
카자흐스탄의 최대도시 알마티에서 약 330 킬로미터 떨어진 우슈토베 마을.
1937년 연해주에 살던 우리 동포 18만 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돼 처음으로 도착한 곳입니다.
당시 스탈린 정권은 일본의 간첩 행위를 차단한다는 미명하에 극동지역에 살던 한인들을 강제로 시베리아 횡단 화물열차에 태웠습니다.
40여일의 긴 이주과정에서 노인과 어린이 등 만 5천여명은 희생됐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허허벌판인 이곳 우슈토베에 던져졌습니다.
[기자]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바로 이 곳이 70년 전 강제 이주 당해 우리 동포들이 살았던 토굴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거의 맨몸으로 화물차에 태워진 동포들은 극심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맨손으로 땅굴을 파고 갈대로 지붕을 올려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인터뷰:인 발렌치아나,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사무국장]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정말 고생 많이 했지요. 겨울에 그 추운데 벌판에, 산 밑에 살지 않았습니까? 물도 없고 눈을 녹여서..."
강제이주 당시 13살이었던 한 할아버지는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듯 치를 떱니다.
[인터뷰:천 미하일(83), 강제이주 1세대]
"원동에서 9월달에 출발해서 10월달에 우슈토베에 당도했습니다.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땅굴을 파고 37년 겨울에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
지금은 황량한 들판에 놓여있는 지표석만이 이곳이 한인들의 초기 정착지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터뷰:천 미하일(83) / 강제이주 1세대]
"이 곳에 와서 동굴을 보니까 몹시 슬픕니다."
우리 동포들의 눈물겨운 강제이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슈토베.
70년전 힘없는 약소민족으로서 꼼짝없이 당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곳 우슈토베 역사의 현장에 대한 보존 작업과 함께 학술적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YTN 인터내셔널 전상중 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지난 1937년 일제의 핍박을 피해 옛 소련 땅에 이주해 살던 우리 동포 18만명이 하루 아침에 화물열차에 강제로 태워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옮겨졌습니다.
꼭 70년이 되는 올해, 현지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집니다.
글로벌 코리안에서는 중앙아시아 한인 강제이주 70년을 맞아 강제 이주의 현장을 돌아보고, 고난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강제 이주 첫 기착지였던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현장을 찾았습니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땅굴을 파고 살아야 했던 고난의 현장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줍니다.
전상중 리포터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우슈토베 위치 실크지도 有]
카자흐스탄의 최대도시 알마티에서 약 330 킬로미터 떨어진 우슈토베 마을.
1937년 연해주에 살던 우리 동포 18만 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돼 처음으로 도착한 곳입니다.
당시 스탈린 정권은 일본의 간첩 행위를 차단한다는 미명하에 극동지역에 살던 한인들을 강제로 시베리아 횡단 화물열차에 태웠습니다.
40여일의 긴 이주과정에서 노인과 어린이 등 만 5천여명은 희생됐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허허벌판인 이곳 우슈토베에 던져졌습니다.
[기자]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만 바로 이 곳이 70년 전 강제 이주 당해 우리 동포들이 살았던 토굴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거의 맨몸으로 화물차에 태워진 동포들은 극심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맨손으로 땅굴을 파고 갈대로 지붕을 올려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인터뷰:인 발렌치아나,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사무국장]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정말 고생 많이 했지요. 겨울에 그 추운데 벌판에, 산 밑에 살지 않았습니까? 물도 없고 눈을 녹여서..."
강제이주 당시 13살이었던 한 할아버지는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듯 치를 떱니다.
[인터뷰:천 미하일(83), 강제이주 1세대]
"원동에서 9월달에 출발해서 10월달에 우슈토베에 당도했습니다.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땅굴을 파고 37년 겨울에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
지금은 황량한 들판에 놓여있는 지표석만이 이곳이 한인들의 초기 정착지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터뷰:천 미하일(83) / 강제이주 1세대]
"이 곳에 와서 동굴을 보니까 몹시 슬픕니다."
우리 동포들의 눈물겨운 강제이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우슈토베.
70년전 힘없는 약소민족으로서 꼼짝없이 당해야 했던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곳 우슈토베 역사의 현장에 대한 보존 작업과 함께 학술적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YTN 인터내셔널 전상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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