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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노래만 들어도 누군지 금방 아시겠지요?
날이 바뀌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고 예전 익히 듣던 목소리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마는 그런 연예계에서 50년을 가수로 활동해 온 분입니다.
인생의 어느 한 분야에서 반백년을 활동했다면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애환도 있었을 겁니다.
클로즈업, 오늘은 데뷔 50년을 맞은 현미씨 모셨습니다.
[질문1]
정말 뜻깊은 콘서트 열게 된 것 축하합니다.
현역 가수가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을 하는 것이 우리 대중가요사에 처음인가요?
[질문2]
50년간 52개 앨범을 내셨으니까 거의 1년에 한개꼴로 앨범을 내셨습니다.
이번에는 생애 첫 베스트 음반(마이 웨이)까지 내셨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질문3]
히트곡만 해도 '밤안개', '별', '보고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등 손을 꼽기가 모자랄 정도인데, 이 가운데서 가장 애착이 가는 대표곡은 무엇인가요?
[질문4]
한국 가요계의 대모로 불리는데요, 현미씨에게 음악 특히 노래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질문5]
올해가 50년이 됐으니까 1957년에 가수로 데뷔하신 건데, 원래는 무용수 아니셨나요?
어떤 계기로 가수가 되셨나요?
[질문6]
1962년인가요?
'밤안개'로 일약 스타가 되셨는데 당시 기록을 보면 '한국의 마할리아 잭슨' '한국의 사라본'으로 불리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미성이어야 통했다고 들었는데, 현미씨는 흑인풍의 허스키한 탁음으로 인기를 모으셨거든요?
인기 비결은 뭐였다고 생각하나?
[질문7]
'미8군쇼'에서 활동하셨는데, 당시 현미씨 말고도 미8군 무대를 통해 활동한 유명 가수들이 많지 않았나요?
당시에는 미8군쇼가 가수들의 등용문 기능을 했나요?
[질문8]
현미씨가 1957년에 데뷔했고, 1960년대에 많은 인기를 끌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이 이승만정권 말기와 4.19혁명, 5.16, 박정희정권 출현 등 우리 근현대사의 격동기였습니다.
당시 가수들도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 같은데요?
[질문9]
현미씨를 모신 자리에서 연애사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고한 남편(작곡가 이봉조 선생)과는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되셨나요?
중간에 결혼생활에 어려운 시기를 겪지 않았나요?
그렇지만 다시 관계가 회복되셨다는데 어떻게 이겨냈나요?
[질문10]
남편을 사별하고 난 뒤 자녀들을 교육시키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파경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예인들의 삶이 일반인들의 삶과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연예계의 맏언니로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 데뷔 50주년 공연 때 장남 이영곤 씨도 가수로 데뷔합니다.
그동안은 아들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것으로 아는데 왜 바뀌었나요?
부부가 작곡가와 가수였고, 이제 큰 아들도 가수 데뷔를 하게 됐고, 며느리 원준희 씨도 가수, 조카 노사연 씨도 가수입니다.
또 탤런트로 활동하는 조카 한상진 씨도 있습니다.
가족들 중에 이렇게 연예인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좋은 점과 나쁜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질문11]
현미씨를 보면 나이도 그렇고, 과거 경력도 그렇고 전혀 숨기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만 이름만은 가명을 썼는데(본명 김명선), 그 이유는 무엇이십니까?
[질문12]
현재 나이 70세이십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숫자는 나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으신데, 현미 씨만의 비결이 있다면?
한 인터뷰에서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하셨는데, 언제까지 노래를 부를 계획인가요?
[질문13]
가수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쪼록 노래하는 인생이, 오늘 지금 이 모습처럼 항상 유쾌하고 또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출연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노래만 들어도 누군지 금방 아시겠지요?
날이 바뀌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고 예전 익히 듣던 목소리는 어느샌가 사라지고 마는 그런 연예계에서 50년을 가수로 활동해 온 분입니다.
인생의 어느 한 분야에서 반백년을 활동했다면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애환도 있었을 겁니다.
클로즈업, 오늘은 데뷔 50년을 맞은 현미씨 모셨습니다.
[질문1]
정말 뜻깊은 콘서트 열게 된 것 축하합니다.
현역 가수가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을 하는 것이 우리 대중가요사에 처음인가요?
[질문2]
50년간 52개 앨범을 내셨으니까 거의 1년에 한개꼴로 앨범을 내셨습니다.
이번에는 생애 첫 베스트 음반(마이 웨이)까지 내셨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질문3]
히트곡만 해도 '밤안개', '별', '보고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등 손을 꼽기가 모자랄 정도인데, 이 가운데서 가장 애착이 가는 대표곡은 무엇인가요?
[질문4]
한국 가요계의 대모로 불리는데요, 현미씨에게 음악 특히 노래는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질문5]
올해가 50년이 됐으니까 1957년에 가수로 데뷔하신 건데, 원래는 무용수 아니셨나요?
어떤 계기로 가수가 되셨나요?
[질문6]
1962년인가요?
'밤안개'로 일약 스타가 되셨는데 당시 기록을 보면 '한국의 마할리아 잭슨' '한국의 사라본'으로 불리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미성이어야 통했다고 들었는데, 현미씨는 흑인풍의 허스키한 탁음으로 인기를 모으셨거든요?
인기 비결은 뭐였다고 생각하나?
[질문7]
'미8군쇼'에서 활동하셨는데, 당시 현미씨 말고도 미8군 무대를 통해 활동한 유명 가수들이 많지 않았나요?
당시에는 미8군쇼가 가수들의 등용문 기능을 했나요?
[질문8]
현미씨가 1957년에 데뷔했고, 1960년대에 많은 인기를 끌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이 이승만정권 말기와 4.19혁명, 5.16, 박정희정권 출현 등 우리 근현대사의 격동기였습니다.
당시 가수들도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 같은데요?
[질문9]
현미씨를 모신 자리에서 연애사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고한 남편(작곡가 이봉조 선생)과는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되셨나요?
중간에 결혼생활에 어려운 시기를 겪지 않았나요?
그렇지만 다시 관계가 회복되셨다는데 어떻게 이겨냈나요?
[질문10]
남편을 사별하고 난 뒤 자녀들을 교육시키느라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파경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예인들의 삶이 일반인들의 삶과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연예계의 맏언니로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 데뷔 50주년 공연 때 장남 이영곤 씨도 가수로 데뷔합니다.
그동안은 아들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것으로 아는데 왜 바뀌었나요?
부부가 작곡가와 가수였고, 이제 큰 아들도 가수 데뷔를 하게 됐고, 며느리 원준희 씨도 가수, 조카 노사연 씨도 가수입니다.
또 탤런트로 활동하는 조카 한상진 씨도 있습니다.
가족들 중에 이렇게 연예인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좋은 점과 나쁜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질문11]
현미씨를 보면 나이도 그렇고, 과거 경력도 그렇고 전혀 숨기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만 이름만은 가명을 썼는데(본명 김명선), 그 이유는 무엇이십니까?
[질문12]
현재 나이 70세이십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숫자는 나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으신데, 현미 씨만의 비결이 있다면?
한 인터뷰에서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하셨는데, 언제까지 노래를 부를 계획인가요?
[질문13]
가수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쪼록 노래하는 인생이, 오늘 지금 이 모습처럼 항상 유쾌하고 또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출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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