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양극화 사회를 말하다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한국영화, 양극화 사회를 말하다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2013.08.01. 오전 09:0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영화는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죠.

많은 영화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영화 속에 녹여내고 있는데요.

특히 올 여름 개봉하는 적지 않은 한국영화들이 공통적으로 ‘양극화 사회'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어서 흥미로운데요.

어떤 영화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최광희 영화평론가와 함께 알아봅니다.

[앵커]

양극화 사회를 한국영화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궁금한데요, 듣고 보니 이번주 개봉한 '설국열차'라는 영화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설국열차'는 새로운 빙하기를 맞아 끊임 없이 지구 위를 도는 한 열차를 배경으로 하고 있죠.

이 열차는 꼬리칸의 사람들은 비참한 빈민굴처럼 살아가고, 열차 앞쪽의 사람들은 호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단백질 바로만 연명하며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꼬리칸에 탑승한 승객들이 자신들을 통제하는 세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열차 맨 앞의 엔진을 장악하기 위한 도전에 나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리스 에반스가 반란을 이끄는 리더 역으로 등장하고, 한국 배우 송강호와 '괴물'에 나왔던 고아성이 이번에도 부녀 지간으로 등장해 이들을 돕는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이밖에 에드 해리스나 틸다 스윈턴 등 세계적인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화제를 모은데다, 4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돼 흥행 성과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최근의 세상에 대한 봉준호 감독의 통찰을 열차라는 우화적인 공간 안에서 풍자하고 있는데요, 극빈층의 꼬리칸 사람들, 최상류층의 앞칸 사람들이 격리돼 살아간다는 설정이 바로 그런 것이죠.

문제는 우화적인 설정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영화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관객들이 편하게 보기에는 영화의 색깔이 지나치게 어둡고 메시지도 추상적이라는 게 흠으로 꼽힙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가 하면 함께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도 설정은 완전히 다르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더군요.

어떤 내용인가요?

[인터뷰]

불미스러운 일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밀려난 '윤영화'라는 방송 앵커가 주인공입니다.

하정우 씨가 이 역할을 맡았는데요.

시사 프로그램 생방송 진행 중, 신원미상의 청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리고 "지금...한강 다리를 폭파하겠습니다"라는 협박을 받습니다.

윤영화 앵커는 이걸 장난 전화로 치부를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순간, 실제로 마포대교가 폭발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눈 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재난이 '테러사건'이라는 단서를 쥐게 된 윤영화 앵커는 이걸 자신의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마감뉴스 복귀 조건으로 보도국장과 물밑 거래를 시도하고 테러범과의 전화통화를 독점 생중계하기에 이릅니다.

테러범은 21억이라는 거액의 보상금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데요.

한편 윤영화는 자신의 귀에 꽂힌 인이어에 폭탄이 설치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마포 대교 테러의 생중계라는 설정을 통해 한국의 방송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녹여내고 있는데요.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진 방송의 선정성, 그리고 국민을 위하는 척 실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정치 권력 등에 대한 풍자를 팽팽한 긴장감 속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이 영화는 양극화 사회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녹여내고 있나요?

[인터뷰]

이 영화에서 테러범으로 등장하는 이가 바로 양극화 사회에서 사회 최하층으로 밀려낸 이들의 울분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년이 넘게 막노동을 했지만 생활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한 인물이 자신의 처지를 방송에 알리기 위해 이 범죄극을 계획하고 실현에 옮기는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비정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죠.

[앵커]

같은 날 개봉한 두 영화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네요.

이밖에 어떤 영화가 양극화 사회를 꼬집고 있을까요?

[인터뷰]

오는 14일 개봉을 앞둔 스릴러 영화입니다.

'숨바꼭질'이라는 작품입니다.

영상원 출신의 신예 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손현주, 문정희, 전미선 등의 연기파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습니다.

영화 '숨바꼭질'의 기둥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고급 아파트에서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성공한 사업가 '성수'는 하나 뿐인 형에 대한 비밀과 지독한 결벽증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수십 년 만에 찾아간 형의 아파트에서 집집마다 새겨진 이상한 암호와 형을 알고 있는 이웃집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이웃집 여자는 성수에게 "제발 형에게 제 딸 좀 그만 훔쳐 보라고 하세요"라는 말을 하는데요.

낡은 아파트의 암호를 찬찬히 살펴보던 '성수'는 그것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성별과 수를 뜻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형의 아파트를 뒤로한 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날, '성수'는 형의 아파트에서 봤던 암호가 자신의 집 초인종 옆에서 새겨진 것을 발견합니다.

영화 '숨바꼭질'은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와 살고 있다"는 설정을 매개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요.

영화는 주인공 성수의 안락한 공간과 형이 살고 있는 허름한 아파트와 동네를 대비하면서 소위 잘 사는 동네와 못하는 동네로 나뉘어 있는 빈부의 양극화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죠.

여기에서 안락한 공간에 사는 성수의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는, 바로 그 양극화 사회가 낳은 원한이기도 합니다.

영화 '숨바꼭질'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녹여내면서도 장르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거의 흠잡을 데 없는 수작으로 탄생이 됐는데요.

신예 허정 감독의 꼼꼼한 각본과 연출 뿐만 아니라 손현주, 문정희 등의 열연도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