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감독들의 수난 시대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중견 감독들의 수난 시대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2012.04.19.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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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이명세 감독의 '미스터 K'가 제작 도중에 촬영이 중단돼 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감독이 교체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세 감독 뿐만 아니라 요즘 충무로에는 중견 감독들이 잇따라 수난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 기자와 함께 알아 보겠습니다.

[질문]

'미스터 K', 제작비가 100억 원이 들어가는 첩보 영화라고 들었는데요.

먼저 감독 교체설이 나오고 있다구요?

[답변]

이명세 감독 하면 90년대 후반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잘 알려진 감독이죠, 2000년대 이후에 할리우드에서 감독 데뷔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형사 듀얼리스트'라는 영화와 '엠' 두 편을 찍었습니다.

두 편 모두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는데요, 아무튼 이번에 '해운대''7광구'등을 제작한 JK필름과 의기투합해 '미스터 K'라는 100억 대 첩보 영화 연출을 맡았습니다.

초반 태국과 한국에서 촬영된 9회차 촬영분에 대해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당초 합의된 바와 다르다는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현재 제작사가 이명세 감독에게 촬영 중단을 통보한 상태이구요, 경우에 따라선 감독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질문]

이명세 감독 하면 90년대 한국 영화계의 스타 감독이었는데, 본인 입장에선 참 황당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답변]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이명세 감독이 가진 작가주의적 관성과 최근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한국영화 제작 환경의 변화 사이에 일종의 충돌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 영화를 제작하기로 한 JK필름은 전형적인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제작사인데다, 투자사 역시 100억의 제작비가 돈이 들어간만큼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전적으로 존중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궁합이 안맞은 결과라는 얘기죠.

[질문]

최근에 정지영 감독이 '부러진 화살'로 중견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다른 중견 감독들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답변]

정지영 감독의 경우는 아주 드문 예에 해당한다고 봐야죠. 사실 정지영 감독도 90년대 중반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거의 15년만에 신작을 내놓아서 대박을 터뜨린 경우죠, 공백이 아주 길었습니다.

이렇게 90년대와 2000년 대 초중반까지 한국영화를 이끌어 왔던 중견 감독들이 최근 신작을 내놓지 못하거나 연출을 해도 흥행에서 맥을 못추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는데요.

90년대에 '301 302'나 '학생부군신위' 등을 연출했던 박철수 감독의 경우에는 지난해 말 후배 감독인 김태식 감독과 공동 연출한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이라는 신작을 모처럼 내놓았지만, 개봉한 지도 모르는 관객이 대다수일 정도로 흥행에선 참패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역시 90년대 맹활약을 펼친 여균동 감독도 지난 2008년에 '1724 기방 난동 사건'이라는 퓨전 시대극을 선보였지만, 흥행 실패했습니다.

'거짓말'이나 '경마장 가는 길', '성공시대' 등 90년대에 굵직한 화제작을 내놓았던 장선우 감독도 지난 2002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흥행 실패한 뒤 10년 동안 신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질문]

연출 기회 잡기도 하늘의 별따기인데, 연출한 작품이 흥행까지 안'되면 참 안타깝겠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연출을 하는 중견 감독들도 있지 않습니까?

[답변]

강우석 감독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그 역시 요즘은 예전만 못합니다.

'실미도'와 '공공의 적' 등을 흥행시키긴 했지만 최근 몇 년 새 내놓은 작품들, 이를테면 '이끼'라든가, 지난해 설에 개봉했던 '글러브' 같은 작품들이 모두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강우석 감독이 연출하기로 돼 있던 '나는 조선의 왕이다' 같은 작품도 최근 투자사와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제작사와 연출이 바뀌는 상황이 연출됐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강우석 감독이 이끄는 영화사 시네마 서비스는 최근작 '가비'의 흥행 실패로 작지 않은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

'왕의 남자'로 역시나 천만 신화를 이룩했던 이준익 감독도 마찬가지죠, 아시다피시, 지난해 '평양성'의 부진으로 상업영화 은퇴 선언을 했죠.

'신라의 달밤', '귀신이 산다' 등의 코미디 히트작을 내놓았던 김상진 감독도 최근 연출한 '주유소 습격 사건 2'와 '투혼'이 모두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도 지난해 말 300억 짜리 대작 전쟁 영화 '마이웨이'를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국내 관객들의 냉담한 반응을 얻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던 중견 상업영화 감독들이 거의 하나 같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질문]

중견 감독들이 좀 탄탄하게 버텨주는 게 한국영화의 건강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일텐데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답변]

일단, 한국영화 제작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겠는데요, 앞서 이명세 감독의 '미스터 K'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최근에는 투자사와 제작사의 기획에 감독이 연출자 기용되는 환경으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90년대나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상업영화든, 아니면 작가주의 예술영화든 감독이 영화의 주인처럼 대접 받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기획과 연출을 사실상 겸했던 중견 감독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급변하는 관객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중견 감독들의 부진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중견 감독들은 환경 변화에 좀더 민감하게 적응하고, 제작사나 투자사들은 감독들의 역량과 자율성을 조금 더 폭넓게 인정하는 문화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중견 감독들의 철학이 담긴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들도 많을 텐데요, 영화 제작 환경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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