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영화의 진화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조폭 영화의 진화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2012.02.02.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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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한국영화에는 유난히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범죄 영화가 많습니다.

한때는 조폭 코미디라는 장르가 유행하기도 했는데요, 한동안 주춤했지만, 최근 다시 조폭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나와 화제입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 기자와 함께 영화 속 조폭의 변천사,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조직폭력배가 우리나라 영화 속에서 즐겨 소재로 활용이 되고 있는데, 이유가 뭘까요.

[답변]

조직폭력배라는 말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조직이고요, 하나는 폭력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상징한다고, 영화인들은 보는 것이지요.

항간에는 조직폭력배를 미화한다, 이런 지적도 있는데, 한국영화가 조폭을 자주 영화의 소재로 삼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상징성 때문입니다.

[질문]

한때는 조폭 코미디라는 장르가 유행했는데, 요즘은 좀 시들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답변]

조폭 코미디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가문의 영광' 시리즈죠. 1편이 벌써 10년 전인 지난 2002년에 나왔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조폭 마누라'라든가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이런 조폭 코미디들이 잇따라 나오고 또 인기도 얻었었죠.

아무튼 '가문의 영광'은 그 이후로 꾸준하게 속편이 나오면서 지난해 추석 때 '가문의 수난'이라는 부제를 달고 4편이 나와서 흥행에도 성공을 거뒀습니다.

조폭 코미디는 사실 조폭을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고 조롱하는 코미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요, 한마디로 그들의 무지몽매함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폭을 일종의 졸부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죠.

[질문]

반대로 코미디 요소를 배제하고 조폭 세계를 파헤친 영화도 많지 않습니까?

[답변]

아시다시피, 한국영화 최초로 8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지난 2001년의 '친구'라는 작품은, 조폭 세계의 비정함이 친구들간의 우정을 배신하게 만드는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었죠.

어쩌면 조폭 누아르의 효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인데요.

이후로 또 유하 감독이 지난 2006년에 선보였던 '비열한 거리'라는 작품도 조폭 누아르의 틀 안에서 제목 그대로 배신이 판치는 조폭 세계의 비정함을 담아냈습니다. 이들 작품들의 특징은, 의리와 우정의 상징처럼 보이는 조폭이 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배신을 서슴지 않는 집단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이런 묘사는, 감독들이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질문]

이번 주에 또 조폭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개봉하죠.

이번엔 기존 조폭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답변]

79년생 신예 감독 윤종빈이 연출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라는 영화입니다.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작품입니다.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는 젊고 재능있는 감독이구요, 세편의 작품 모두 중앙대 연극영화가 선배인 하정우씨를 주연으로 캐스팅했습니다.

여기에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 최민식 씨가 가세해서 그야말로 연기의 전성시대를 선보이는 작품으로 탄생이 됐습니다.

[질문]

범죄와의 전쟁 하면, 지난 90년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선포했던 범죄와의 전쟁이 생각하는데요.

[답변]

이 작품의 배경이 바로 그 때 당시입니다.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최익현이라는 한 조직 보스가 검찰에 붙잡히면서 영화가 시작이 되는데요. 최익현이라는 사람은 사실 세관 공무원이었는데, 어쩌다가 조직 세계에 발을 붙이게 됐는지 그 사연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이 됩니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세관에서 일하던 비리 공무원인 최익현이 우연히 발견한 마약을 팔 곳을 궁리하다가 조직 폭력배 보스인 최형배를 만나게 됩니다.

알고 봤더니 두 사람은 같은 경주 최씨 종친이었는데요.

이걸 계기로 두 사람은 유착 관계를 맺게 되죠.

머리가 좋은 최익현은 관리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고, 힘과 주먹이 필요할 때는 최형배가 나서는 식으로, 두 사람은 공생 관계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에 힘의 알력이 생겨나고, 조직 내에선 갈등과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질문]

줄거리만 들으면 기존의 조폭 영화와 비슷한 것 같은데요, 차별화된 포인트는 뭘까요.

[답변]

이 영화는, 조폭 세계를 통해 한국 현대사,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버지들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최민식 씨가 연기한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생존을 위해 폭력을 활용하기도 한, 기득권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영화를 보면서 미국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연출한 '대부'라는 영화가 연상이 되는데요.

영화 '대부'가 묘사한 미국의 대부는,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묘사가 되죠.

하지만 이 영화 속의 대부, 즉 최익현이라는 인물은 관과 조폭 세계를 약삭빠르게 넘나들면서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으로 묘사가 됩니다.

어쩌면 윤종빈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 세대를 그렇게 기회주의적 행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질문]

최민식 씨와 하정우 씨의 연기 호흡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답변]

최민식 씨는 이 영화를 통해 연기파 배우로서의 부활을 선언한 것 같고요, 하정우 씨도 넘치지 않는 연기로 아주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사람과 윤종빈 감독이 합작해서 21세기 한국판 대부를 만들었다, 이렇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조폭 영화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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