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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1959년 오늘, 6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중앙청 앞 광장에서 사회장으로 엄숙하게 거행됐다.
그는 숨지기 이틀 전 병상에서 농학에 큰 업적을 쌓은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았다.
을미사변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사람의 아들로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극빈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도쿄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들어가 육종학 연구에 몰두했다.
32살에 겹꽃 피튜니아꽃의 육종합성에 성공해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고 종의 합성설로 1936년 모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장춘 박사는 1950년 우리 나라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해 한국농업연구소장에 취임한 이후 씨 없는 수박 개발 등 육종학 연구에 전력을 기울였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그의 장례식은 중앙청 앞 광장에서 사회장으로 엄숙하게 거행됐다.
그는 숨지기 이틀 전 병상에서 농학에 큰 업적을 쌓은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았다.
을미사변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사람의 아들로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극빈한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도쿄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들어가 육종학 연구에 몰두했다.
32살에 겹꽃 피튜니아꽃의 육종합성에 성공해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고 종의 합성설로 1936년 모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장춘 박사는 1950년 우리 나라 정부의 초청으로 귀국해 한국농업연구소장에 취임한 이후 씨 없는 수박 개발 등 육종학 연구에 전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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