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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오늘 오전 7시 30분, 연합군 보병이 솜므(Somme)강 북쪽 34km 전방의 독일군 고지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 동원된 연합군의 80%는 영국군으로 구성됐다.
연합군은 이 전투에 앞서 8일 동안 대규모 공습과 포격을 퍼부었다.
연합군 보병들은 이 때문에 진출로가 확보됐을 것으로 보고 안심하고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난공불락의 참호 속에서 기관총으로 응사했다.
공격 첫 날 영국군이 2만 명 가까이 전사하고 6만여 명이 부상했다.
단일 전투에서 하루에 이만큼 많은 전사자가 생기기는 처음이었다.
솜므 전투는 이후 11월 중순까지 계속됐다.
7월 중순의 영국 기병대의 공격도 역시 독일군의 기관총에 의해 무산됐다.
10월에는 폭우가 내리면서 전선이 온통 진흙바다로 변해 연합군은 이 전투가 막을 내린 11월 중순까지 8km 정도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4개월이 넘게 계속된 솜므 전투에서 영국군 42만, 프랑스군 19만5천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독일군 사상자는 65만여 명에 달했다.
[1798] 나폴레옹,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점령
[1863] 미 남북전쟁 최대 격전 '게티즈버그 전투'
[1933] 서울-도쿄 직통전화 개설
[1967] 유럽공동체(EC) 창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이 전투에 동원된 연합군의 80%는 영국군으로 구성됐다.
연합군은 이 전투에 앞서 8일 동안 대규모 공습과 포격을 퍼부었다.
연합군 보병들은 이 때문에 진출로가 확보됐을 것으로 보고 안심하고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독일군은 난공불락의 참호 속에서 기관총으로 응사했다.
공격 첫 날 영국군이 2만 명 가까이 전사하고 6만여 명이 부상했다.
단일 전투에서 하루에 이만큼 많은 전사자가 생기기는 처음이었다.
솜므 전투는 이후 11월 중순까지 계속됐다.
7월 중순의 영국 기병대의 공격도 역시 독일군의 기관총에 의해 무산됐다.
10월에는 폭우가 내리면서 전선이 온통 진흙바다로 변해 연합군은 이 전투가 막을 내린 11월 중순까지 8km 정도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4개월이 넘게 계속된 솜므 전투에서 영국군 42만, 프랑스군 19만5천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독일군 사상자는 65만여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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