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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한국전 개입 (1950)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해 북진을 계속하던 1950년 오늘!
설악지구 전투에서 중국군 한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중국이 결코 한국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맥아더 장군의 예측을 뒤엎는 사건이었다.
이후 중국군 2만명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전쟁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유역까지 진군하자 중국군의 개입은 더욱 노골화 됐다.
20만명에 이르는 중국군은 북한군과 함께 역공을 해왔고 38선 근처까지 남진해 격전이
계속됐다.
맥아더 장군은 전쟁을 압록강 넘어 중국까지 확대할 것을 주장했지만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생각을 달랐다.
맥아더 장군은 결국 이듬해 4월 해임됐다.
2) 중국 유엔 가입, 타이완 축출 (1971)
제 26차 유엔총회가 열린 1971년 오늘.
알바니아 대표가 중국의 유엔가입과 대만의 유엔 축출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제기했다.
표결에 부친 결과 찬성 76, 반대 35로 이 결의안은 가결됐다.
10억 인구를 가진 중국!
미국과 소련에 대항하는 제 3세계 블럭을 주도해 왔다.
중국 대표는 큰 국가의 정치 권력이 작은 나라를 위협해서는 안되는 모든 국가는 독립을 원하고 모든 민족은 해방을 원한다고 말했다.
3) 미국, 그레나다 침공 (1983)
1983년 오늘!
미 해병대 병력 2천여명이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기습 공격했다.
1974년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한 그레나다!
1983년 10월 중순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보리셔프츠 총리와 세명의 각료를 처형했다.
미국은 그레나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기습공격을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침공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영국을 포함한 동매국들까지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비난했다.
대처 영국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 놀라운 행위라고 말했다.
그레나다 침공은 언론보도까지도 극히 제한돼 세계 언론사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미국은 군사목표를 달성한 뒤 그레나다에 1985년 6월까지 미군을 주둔시켰다.
4) 이집트 부통령 반란죄 재판 (1971)
1971년 오늘!
이집트 카이로의 한 법정!
마모드 파우즈 이집트 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다.
사다트 대통령 제거 음모에 연루된 혐의였다.
파우즈는 일전전인 1970년 10우러 사다트 대통령 취임 이후 수상을 거쳐 부통령에 올랐다.
사다트는 나세르가 사망한 뒤 여러 정파간에 타협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후 사다트는 사브리 전부통령 등 그의 정적을 쿠데타 음모 혐의로 투옥시켰다.
파우즈는 오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지만 복역중 15년형으로 감형됐다.
5) 베트남 이주정책 실시 (1975)
1975년 오늘!
베트남의 사이공시!
주민들이 분주하게 짐을 꾸리고 있다.
가구와 자전거 등 살림에 필요한 물건을 차에 싣고 시골로 떠났다.
사이공을 점령한 북베트남 정부가 개혁경제의 일환으로 사이공 주민들을 시골로 이주시켜 집단농장에서 생활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북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강제이주와 집단생활을 못이긴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 정처 없이 유랑하는
보트피플이 됐다.
[1944] 가미카제 특공대 첫 전투
[1950] 춘원 이광수 사망
[1973] 마라토너 아베베 사망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해 북진을 계속하던 1950년 오늘!
설악지구 전투에서 중국군 한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중국이 결코 한국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던 맥아더 장군의 예측을 뒤엎는 사건이었다.
이후 중국군 2만명이 전쟁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전쟁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였다.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유역까지 진군하자 중국군의 개입은 더욱 노골화 됐다.
20만명에 이르는 중국군은 북한군과 함께 역공을 해왔고 38선 근처까지 남진해 격전이
계속됐다.
맥아더 장군은 전쟁을 압록강 넘어 중국까지 확대할 것을 주장했지만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생각을 달랐다.
맥아더 장군은 결국 이듬해 4월 해임됐다.
2) 중국 유엔 가입, 타이완 축출 (1971)
제 26차 유엔총회가 열린 1971년 오늘.
알바니아 대표가 중국의 유엔가입과 대만의 유엔 축출을 골자로 하는 결의안을 제기했다.
표결에 부친 결과 찬성 76, 반대 35로 이 결의안은 가결됐다.
10억 인구를 가진 중국!
미국과 소련에 대항하는 제 3세계 블럭을 주도해 왔다.
중국 대표는 큰 국가의 정치 권력이 작은 나라를 위협해서는 안되는 모든 국가는 독립을 원하고 모든 민족은 해방을 원한다고 말했다.
3) 미국, 그레나다 침공 (1983)
1983년 오늘!
미 해병대 병력 2천여명이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기습 공격했다.
1974년 영국연방의 일원으로 독립한 그레나다!
1983년 10월 중순 소련과 쿠바의 지원을 받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보리셔프츠 총리와 세명의 각료를 처형했다.
미국은 그레나다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기습공격을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침공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영국을 포함한 동매국들까지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을 비난했다.
대처 영국 총리는 국제법에 비춰 놀라운 행위라고 말했다.
그레나다 침공은 언론보도까지도 극히 제한돼 세계 언론사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미국은 군사목표를 달성한 뒤 그레나다에 1985년 6월까지 미군을 주둔시켰다.
4) 이집트 부통령 반란죄 재판 (1971)
1971년 오늘!
이집트 카이로의 한 법정!
마모드 파우즈 이집트 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다.
사다트 대통령 제거 음모에 연루된 혐의였다.
파우즈는 일전전인 1970년 10우러 사다트 대통령 취임 이후 수상을 거쳐 부통령에 올랐다.
사다트는 나세르가 사망한 뒤 여러 정파간에 타협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후 사다트는 사브리 전부통령 등 그의 정적을 쿠데타 음모 혐의로 투옥시켰다.
파우즈는 오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지만 복역중 15년형으로 감형됐다.
5) 베트남 이주정책 실시 (1975)
1975년 오늘!
베트남의 사이공시!
주민들이 분주하게 짐을 꾸리고 있다.
가구와 자전거 등 살림에 필요한 물건을 차에 싣고 시골로 떠났다.
사이공을 점령한 북베트남 정부가 개혁경제의 일환으로 사이공 주민들을 시골로 이주시켜 집단농장에서 생활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북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강제이주와 집단생활을 못이긴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 정처 없이 유랑하는
보트피플이 됐다.
[1944] 가미카제 특공대 첫 전투
[1950] 춘원 이광수 사망
[1973] 마라토너 아베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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