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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3) 이시영 초대 부통령 사망
초대부통령이었던 이시영선생이 1953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이시영선생은 1885년 사마시에 급제해 관직에 나섰으며 1908년 한성재판소장을 역임했고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안창호, 이동녕선생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활동했습니다.
이시영선생은 이후 만주로 망명한뒤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으며 후일 청산리대첩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양성에 힘썼습니다.
이시영선생은 1945년 광복 후 귀국했으며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1951년 이승만대통령의 비민주적통치를 비판하면서 부통령을 사임한 뒤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후보로 입후보했지만 낙선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습니다.
2. (1975) 장개석 총통 장례식
91살을 일기로 4월5일에 사망한 대만의 장개석총통에 대한 장례식이 1975년 오늘 국상기간을 거쳐 치러졌습니다.
장개석은 일본유학을 한 뒤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했으며 1918년 손문의 휘하에 들어가 활약했습니다.
1926년에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취임해 북벌을 시작했으며 1927년 상해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탄압했습니다.
1928년에 북경을 점령했으며 1930년부터 대규모공산당포위전을 개시했지만 만주사변 후 일본이 침략하자 전략을 바꿨습니다.
서안에서 장학량 군대에게 감금됐다가 풀려난 뒤 장개석은 내전을 중지하고 국공합작 하에 항일전선에 나섰습니다.
장개석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에 다시 중국공산당과 결별하고 내전을 시작했지만 1949년 모택동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배해 대만으로 탈출합니다.
장개석은 반공을 내걸고 대미외교를 강화하며 이후 국민당총재로서 대만을 통치했지만 본토수복의 꿈은 춘몽으로 끝났습니다.
3. (1975) 크메르 루주 ‘프놈펜’ 점령
캄보디아의 인민민족해방전선인 크메르 루주군이 정부군을 몰아내고 수도 프놈펜에 1975년 오늘 입성했습니다.
70년 론놀의 우익군부 쿠데타로 실각하게 된 시아누크는 북경에 망명정부를 수립합니다.
캄보디아 정치군사세력을 일컫는 크메르 루주는 반프랑스 용공파와 공산당 등 좌익세력으로 그 일부세력이 시아누크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아누크와의 노선차이로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70년 론놀의 우익쿠데타로 친서방정권이 들어서고 시아누크가 망명정부를 수립하자 시아누크 지지로 선회했습니다.
5년에 걸친 내전은 크메르루주군의 프놈펜입성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후 폴 포트는 200만 명에 이르는 피의 대학살을 시작해 전 세계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4. (1970) 도미니카 대통령선거
중앙아메리카 도미니카 공화국은 후안 보시 전대통령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국은 혼미상태에 빠졌습니다.
정국혼란을 책임지고 후아켕 발라호 현대통령이 물러나고 한달임기의 과도정권 대통령으로 마누엘 라몬 루이즈 테하다가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총선거결과 스스로 물러났던 발라호씨가 당선됐습니다.
5. (2001) 죽어가는 황하
5,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중국문명의 젖줄 대황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부지역은 강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메말랐습니다.
지난 몇 년간 황하의 강물은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하의 유량이 줄고 물길이 중간중간 끊기면서 북경과 항주를 잇는 1,150킬로미터의 대운하도 복구가 시급한 실정입니다.
급속한 공업화와 지나친 관개이용, 인간의 환경파괴에 따른 재앙이 황하를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에는 황하북부지역 3억여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심각한 물부족 현상을 겪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양쯔강 남쪽의 물을 황하의 북쪽으로 끌어들이는 <남수북조>로 불리는 수로의 대역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또 다른 환경파괴라는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6. (1999) 시속 552 Km 자기부상열차
시속 552킬로미터의 세계신기록을 세운 자기부상열차가 선보였습니다.
보잉 747여객기의 순항속도를 절반이나 따라잡았습니다.
일본철도와 철도종합기술연구소는 야마나시현에서 20킬로 구간을 승객 13명을 태운 채 자기부상열차에 대한 주행실험을 했습니다.
자기부상열차는 자석의 반발력으로 공중에 떠서 달리는 원리입니다.
공해가 없으면서도 안전하고 진동이나 소음을 별로 느낄 수 없는 꿈의 열차이지만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이 해결돼야만 합니다.
일본은 신칸센열차를 앞으로 자기부상열차로 교체할 계획인데 시속 500킬로미터의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7. B . G
(1895) 청.일,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1937) 소설가 이상 사망
(1956) 코민포름 해산
(1962) 미터제 택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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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부통령이었던 이시영선생이 1953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이시영선생은 1885년 사마시에 급제해 관직에 나섰으며 1908년 한성재판소장을 역임했고 1910년 국권을 빼앗기자 안창호, 이동녕선생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해 활동했습니다.
이시영선생은 이후 만주로 망명한뒤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으며 후일 청산리대첩 등에서 활약한 독립군양성에 힘썼습니다.
이시영선생은 1945년 광복 후 귀국했으며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1951년 이승만대통령의 비민주적통치를 비판하면서 부통령을 사임한 뒤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에 민주국민당후보로 입후보했지만 낙선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습니다.
2. (1975) 장개석 총통 장례식
91살을 일기로 4월5일에 사망한 대만의 장개석총통에 대한 장례식이 1975년 오늘 국상기간을 거쳐 치러졌습니다.
장개석은 일본유학을 한 뒤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했으며 1918년 손문의 휘하에 들어가 활약했습니다.
1926년에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취임해 북벌을 시작했으며 1927년 상해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탄압했습니다.
1928년에 북경을 점령했으며 1930년부터 대규모공산당포위전을 개시했지만 만주사변 후 일본이 침략하자 전략을 바꿨습니다.
서안에서 장학량 군대에게 감금됐다가 풀려난 뒤 장개석은 내전을 중지하고 국공합작 하에 항일전선에 나섰습니다.
장개석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6년에 다시 중국공산당과 결별하고 내전을 시작했지만 1949년 모택동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배해 대만으로 탈출합니다.
장개석은 반공을 내걸고 대미외교를 강화하며 이후 국민당총재로서 대만을 통치했지만 본토수복의 꿈은 춘몽으로 끝났습니다.
3. (1975) 크메르 루주 ‘프놈펜’ 점령
캄보디아의 인민민족해방전선인 크메르 루주군이 정부군을 몰아내고 수도 프놈펜에 1975년 오늘 입성했습니다.
70년 론놀의 우익군부 쿠데타로 실각하게 된 시아누크는 북경에 망명정부를 수립합니다.
캄보디아 정치군사세력을 일컫는 크메르 루주는 반프랑스 용공파와 공산당 등 좌익세력으로 그 일부세력이 시아누크와 연계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아누크와의 노선차이로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70년 론놀의 우익쿠데타로 친서방정권이 들어서고 시아누크가 망명정부를 수립하자 시아누크 지지로 선회했습니다.
5년에 걸친 내전은 크메르루주군의 프놈펜입성으로 막을 내렸지만 이후 폴 포트는 200만 명에 이르는 피의 대학살을 시작해 전 세계의 공분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4. (1970) 도미니카 대통령선거
중앙아메리카 도미니카 공화국은 후안 보시 전대통령이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국은 혼미상태에 빠졌습니다.
정국혼란을 책임지고 후아켕 발라호 현대통령이 물러나고 한달임기의 과도정권 대통령으로 마누엘 라몬 루이즈 테하다가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총선거결과 스스로 물러났던 발라호씨가 당선됐습니다.
5. (2001) 죽어가는 황하
5,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중국문명의 젖줄 대황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부지역은 강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메말랐습니다.
지난 몇 년간 황하의 강물은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황하의 유량이 줄고 물길이 중간중간 끊기면서 북경과 항주를 잇는 1,150킬로미터의 대운하도 복구가 시급한 실정입니다.
급속한 공업화와 지나친 관개이용, 인간의 환경파괴에 따른 재앙이 황하를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2001년에는 황하북부지역 3억여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심각한 물부족 현상을 겪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양쯔강 남쪽의 물을 황하의 북쪽으로 끌어들이는 <남수북조>로 불리는 수로의 대역사를 계획하고 있지만 또 다른 환경파괴라는 우려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6. (1999) 시속 552 Km 자기부상열차
시속 552킬로미터의 세계신기록을 세운 자기부상열차가 선보였습니다.
보잉 747여객기의 순항속도를 절반이나 따라잡았습니다.
일본철도와 철도종합기술연구소는 야마나시현에서 20킬로 구간을 승객 13명을 태운 채 자기부상열차에 대한 주행실험을 했습니다.
자기부상열차는 자석의 반발력으로 공중에 떠서 달리는 원리입니다.
공해가 없으면서도 안전하고 진동이나 소음을 별로 느낄 수 없는 꿈의 열차이지만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이 해결돼야만 합니다.
일본은 신칸센열차를 앞으로 자기부상열차로 교체할 계획인데 시속 500킬로미터의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7. B . G
(1895) 청.일,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1937) 소설가 이상 사망
(1956) 코민포름 해산
(1962) 미터제 택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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