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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3) 3.1대표 오세창선생 별세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이었던 위창 오세창선생이 1953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위창은 조선말기 개화사상의 선각자이며 서화가인 오경석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한성순보 기자로 재직하다 1902년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해 그곳에서 손병희의 권유로 천도교신자가 됐습니다.
위창은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3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위창은 근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며 서화사 연구에 정통하였고 탁월한 감식안을 지닌 것으로 평판이 높았습니다.
위창은 전서와 예서에서 특히 일가를 이뤘으며 조선시대 금석학의 전통을 서예작품을 통해 심화시켰습니다.
위창은 광복후 매일신보사와 서울신문사의 명예사장을 역임하였고 서화사연구에 귀중한 <근역서화징>이라는 저서를 남겼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습니다.
2. (1991)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 사망
영상과 음향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거장 데이비드 린 영화감독이 1991년 오늘 숨졌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1942년 <우리가 봉사하는 것>으로 데뷔했으며 장엄한 영상미를 음악적 해석을 통해 주제를 이끌어가는 탁월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서사적인것과 인간관계의 미묘하고 섬세한 면을 유려한 영상물속에 녹여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린 감독은 <닥터지바고>와 <아라비아의 로렌스>,<콰이강의 다리>와 같은 대작을 만들면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린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2번째 오스카상을 받았지만 이후 제작한 <라이언의 처녀>가 혹평을 받자 존재에 회의가 온다며 14년간 영화제작을 하지 않은 일화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작품인 <인도로 가는길>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 특유의 실력을 다시 보여줬습니다.
3.(1934) 일본 나가사키 화재
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키에서 1934년 오늘 대화재로 2천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목재로 된 주택 때문에 피해는 더욱 컸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개화도시로서 포르투갈인 들은 일본인들에게 조총과 기독교를 전해줬습니다.
융성했던 나가사키 항은 이후 세계 제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돼 6만5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미증유의 악몽을 견뎌야 했습니다.
4. (1976) 레바논 내전
격화됐던 레바논내전이 잠시 휴전되었던 1976년의 베이루트입니다.
종파간의 정치와 경제적 이익에 따른 갈등이 심각한 내전을 가져왔습니다.
휴전 3주째였지만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기독교민병대와 팔레스타인저격수의 모습이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레바논내전은 기독교세력이 레바논주의를 주창하고 있었고 레바논을 아랍세계의 일부로 편입돼야 한다는 이슬람교도간에 정치적인 입장차이로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평화유지군을 맡을 수 있다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이후 레바논내전은 외세까지 개입해 더욱 확대됐습니다.
5. (1964) 로디지아 독립운동
지금의 짐바브웨인 로디지아의 지도자 조슈아 엔커멘은 아프리카 자주독립의 상징입니다.
로디지아는 1965년 11월 영국으로부터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해 경제제재를 받았지만 결국 1980년 유엔의 승인을 얻어냈습니다.
6. (1968) 북베트남 훈련 공개
베트남전은 미국으로서는 현대무기의 실험장이었지만 이에 맞선 북베트남의 게릴라전술에 따라 극심한 소모전을 겪었습니다.
베트남정부가 공개한 이 화면에는 북베트남군에 자원한 병사들의 기초훈련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공산화 도미노를 막고 정의를 전파한다는 미국의 힘의 논리는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을 해방시킨다는 북베트남의 정글게릴라전에 무너졌습니다.
7. B . G
(958) 과거제 실시
(1828) 화가 ‘고야’ 사망
(1970) 미 . 소 SALT 회담 시작
(1973) 한국미술 2000년 전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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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이었던 위창 오세창선생이 1953년 오늘 별세했습니다.
위창은 조선말기 개화사상의 선각자이며 서화가인 오경석씨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한성순보 기자로 재직하다 1902년 갑신정변으로 일본에 망명해 그곳에서 손병희의 권유로 천도교신자가 됐습니다.
위창은 1919년 3.1운동 때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3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위창은 근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며 서화사 연구에 정통하였고 탁월한 감식안을 지닌 것으로 평판이 높았습니다.
위창은 전서와 예서에서 특히 일가를 이뤘으며 조선시대 금석학의 전통을 서예작품을 통해 심화시켰습니다.
위창은 광복후 매일신보사와 서울신문사의 명예사장을 역임하였고 서화사연구에 귀중한 <근역서화징>이라는 저서를 남겼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습니다.
2. (1991)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 사망
영상과 음향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영국의 거장 데이비드 린 영화감독이 1991년 오늘 숨졌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1942년 <우리가 봉사하는 것>으로 데뷔했으며 장엄한 영상미를 음악적 해석을 통해 주제를 이끌어가는 탁월한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서사적인것과 인간관계의 미묘하고 섬세한 면을 유려한 영상물속에 녹여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린 감독은 <닥터지바고>와 <아라비아의 로렌스>,<콰이강의 다리>와 같은 대작을 만들면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린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2번째 오스카상을 받았지만 이후 제작한 <라이언의 처녀>가 혹평을 받자 존재에 회의가 온다며 14년간 영화제작을 하지 않은 일화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작품인 <인도로 가는길>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 특유의 실력을 다시 보여줬습니다.
3.(1934) 일본 나가사키 화재
일본의 항구도시 나가사키에서 1934년 오늘 대화재로 2천여 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목재로 된 주택 때문에 피해는 더욱 컸습니다.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최초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개화도시로서 포르투갈인 들은 일본인들에게 조총과 기독교를 전해줬습니다.
융성했던 나가사키 항은 이후 세계 제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돼 6만5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미증유의 악몽을 견뎌야 했습니다.
4. (1976) 레바논 내전
격화됐던 레바논내전이 잠시 휴전되었던 1976년의 베이루트입니다.
종파간의 정치와 경제적 이익에 따른 갈등이 심각한 내전을 가져왔습니다.
휴전 3주째였지만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기독교민병대와 팔레스타인저격수의 모습이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레바논내전은 기독교세력이 레바논주의를 주창하고 있었고 레바논을 아랍세계의 일부로 편입돼야 한다는 이슬람교도간에 정치적인 입장차이로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평화유지군을 맡을 수 있다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이후 레바논내전은 외세까지 개입해 더욱 확대됐습니다.
5. (1964) 로디지아 독립운동
지금의 짐바브웨인 로디지아의 지도자 조슈아 엔커멘은 아프리카 자주독립의 상징입니다.
로디지아는 1965년 11월 영국으로부터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해 경제제재를 받았지만 결국 1980년 유엔의 승인을 얻어냈습니다.
6. (1968) 북베트남 훈련 공개
베트남전은 미국으로서는 현대무기의 실험장이었지만 이에 맞선 북베트남의 게릴라전술에 따라 극심한 소모전을 겪었습니다.
베트남정부가 공개한 이 화면에는 북베트남군에 자원한 병사들의 기초훈련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공산화 도미노를 막고 정의를 전파한다는 미국의 힘의 논리는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을 해방시킨다는 북베트남의 정글게릴라전에 무너졌습니다.
7. B . G
(958) 과거제 실시
(1828) 화가 ‘고야’ 사망
(1970) 미 . 소 SALT 회담 시작
(1973) 한국미술 2000년 전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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