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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유병언 씨의 사망추정 일자 그리고 최후 행적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조금 전 시작됐습니다.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인터뷰:백승호, 전남경찰청장]
변사체의 신원 확인 및 사망에 대한 범죄관련성 규명을 위해 순천경찰서에 수사 본부를 설치하여 2014년 7월 23일부터 8월 19일까지 28일간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하였고 그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수사 결과의 요지입니다.
변사체에서 체취한 DNA와 지문이 유병언 것과 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유병언 주치의의 사전 정보와 변사자의 사후 치아 정보가 일치하고 입었던 의복 등에 대한 수사 결과 변사자가 유병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2회에 걸친 부검, 법의학 법곤충학 생태환경 조사, 주요 장소에 대한 정밀 감식, 혈흔 및 DNA 검사, 의복류에 대한 타격흔 검사 등 가능한 모든 수사 결과를 진행하였고 검찰과 협조하여 신윤아, 김영숙, 구속 피의자 10여 명과 양회정, 김명숙 등 불구속 피의자 및 금수원 신도 등 40여 명을 조사하였습니다.
또한 송치재 인근 주민, 버스기사, 자영업자 등 1400여 명에 대한 1:1 탐문 수사와 연인원 3800여 명을 동원하여 송치재부터 구 순천 부근을 28회에 걸쳐 정밀수색을 실시하고 22개소 CCTV를 확보하여 분석하는 등 범죄 관련성 여부를 규명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으며, 현재까지 수사한 결과 유병언의 사망이 범죄에 기인한 것이라는 단서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경찰은 순천경찰서에 수사전담팀 체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보나 단서를 중심으로 사실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해 나갈 예정이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사 사건 업무체계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변사처리 표준절차 규정, 전문 검식안 인력 증진등 종합개선대책을 마련하여 변사사건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습니다.
지금 부터 구체적인 수색 진행 경과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신원 확인및 변사사건 수사 개시에 관한 내용입니다.
6월 12일 09시 4분 경, 박 모씨는 서면 학구리 자신의 매실묘목밭에 변사체가 있다는 112 신고를 하였고 곧이어 서명파출소장 강력팀, 과학수사팀 등 7명이 도착하여 현장 감식등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주요 수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6월 12일 10시 50분 경, 순천의료원에서 검안이 있었고 11시 20분부터 12시 40분까지 순천장례식장 안치 후 검시가 진행이 되었으며, 6월 13일 13시 50분14시 40분까지 성가를로병원에서 부검이 있었고, 15시 40분에는 DNA 검사를 위해 국과수에 대퇴부 뼈, 치아 등을 감정 의뢰하였습니다.
7월 21일 19시 30분경 국과수로부터 유병언의 DNA가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으며 7월 22일 01시 20분 경, 우측 CG 지문지 유영언과 일치한다는 것을 추가 확인하였습니다.
7월 22일 09시 경, 변사자가 유병언으로 확인되었다는 순천서의 브리핑이 있었으며, 7월 23일부터는 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집중 수사를 하였습니다. 다음은 유병언의 송치재 별장 은신 전후에 행적 수사 내용입니다.
유병언은 4월23일 아침 금수원을 나와 경기 안성 신모 씨 집, 4월 24일 안성 한상옥 집에서 은신하였다가 5월 3일 23시 경, 양회정 등 측건 6명과 함께 벤틀리 승용차등을 타고 출발하여 5월 4일 03시 30분경 송치재 별장에 도착한 이후 신윤아와 함께 별장에 계속 기거하였고 양회정과 김명숙 등은 금수원과 별장을 오가며 은신에 필요한 음식, 생수 등 생필품의 공급했습니다.
5월 25일 01시 20분경 별장을 제공한 변 부부가 당시 인근 야망연수원에서 도주한 양회정이 이로써 별장에는 신윤아와 유병언 단 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5월 22일 20시 인천지검은 유병언과 신윤아가 은신해 있던 별장을 압수수색을 하였고 23시 20분경 신윤아를 체포했습니다.
이후 신윤아는 최초 진술에서 유병언을 누군가 데려가 소재를 모른다고 하였다가 6월 26일경에 이르러 자신이 체포될 당시에 별장 2층에 어두운 색 자켓과 생수등을 밀어넣어주고 입구를 소파로 막아 유병언을 피신시켰다고 진술했습니다.
5월 25일 23시 20분경, 신윤아 체포 이후 송치재 별장에서는 5월 26일 00시 30분부터 02시 30분까지 인천지검에 2차 압수수색이 있었고 5월 26일 19시까지 사진 촬영과 지문 감식및 DNA 채취가 진행되었습니다.
5월 26일 21시 18분부터 21시 30분까지 112 신고에 따라 파출소 경찰관들이 별장을 수색하는 등 검찰과 경찰에 의한 수사와 현장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신윤아의 진술, 소변 감정 결과등으로 유병언은 5월 25일 23시 20분 이후 송치재 별장 2층 밀실에 혼자 남겨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6월 12일 유병언은 별장에서 약 2. 5km 떨어진 박 모씨의 매실 묘목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다음은 사망 시점과 원인에 대한 수사 내용입니다.
유병언의 시신은 두 차례의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과 사망 시기는 판명되지 않았으나 골절 등의 외상과 체내 독극물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를 국과수 등으로부터 회신받았습니다.
사망 시기와 원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정하기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국과수, 고려대, 전북지방 경찰청 등은 변사 현장에서 법 곤충학 기법을 통한 검사를 통해서 사망 시점이 적어도 6월 2일 이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고려대의 생태환경공학과 강병화 명예교수는 변사체에 눌려있는 풀과 주변 풀 이삭 상태 등을 비교하여 발견시점으로부터 10일 이상 1개월 이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서울대 법의학과 이 교수는 변사 사진 상 외상 및 변사체를 옮긴 증거는 없다고 자문했습니다.
가톨릭대 법의학과 강신몽 교수는 유병언 변사체의 탈의 현상은 저 체온에 빠져 사망에 이를 때 나타나는 이상탈의 현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며 체온 사인을 저체온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다음은 변사 현장 및 유류품 수사 내용입니다.
유병언의 시신은 발견되었고 이곳은 산기슭에 위치하여 바로 옆 고추밭보다 2, 3m 높아 고추밭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지점입니다.
또한 변사 현장 진입로로는 철망문으로 통제되어 있어 평소 주민들의 왕래가 거의 없었으며 다소 외진 곳으로 발견 당시 풀이 무성한 상태였습니다.
변사 현장은 지대가 높아 진입로에서는 잘보이지 않으나 국도와 교하하는 학구 삼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입니다.
변사체의 주변 풀과 관련하여 고려대 생태환경공학과 강병화 교수는 시신 바로 아래눌려있던 풀은 변사체의 부패된 체액과 광차단으로 녹았고 주변의 풀이 눕게 된 이유는 뿌리 부분이 부패된 체액과 산소 부족으로 죽어가며 누렇게 변하여 시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자문하였습니다.
변사 현장의 유류품을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육포와 스쿠알렌은 별장에서 압수한 것과 동일한 제품이고 유병언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비료포대는 2010년 1월에 생산된 제품으로 구매 내역 추정한 바 변사현장 인근 철쭉밭을 경작 중인 윤 모씨가 구입한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 밭에서 동일한 비료포대가 발견되었습니다.
막걸리 빈 병은 적어도 2011년 이전 생산 제품이며 유병언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나머지 소주병 두 개, 머스터드 소스 병 두개에서도 유병언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불상의 씨앗 열매 19개는 국과수 감정으로 매실 씨앗 3개, 청미래 덩쿨 16개로 확인이 되었고 여기에서도 유병언의 DNA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사기 그릇 조각은 별장 주변에서 유사한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의복류, 돋보기 등은 신윤아, 김명숙, 추경업, 양회정 등 측근들이 유병언의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변사 현장에서 발견된 꿈 같은 사랑 천가방은 별장에서 압수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안팎이 뒤집어져 있고 현장의 식재 또는 자생하고 있는 매실과 청미래 덩쿨, 막걸리 소주 빈 병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6월 16일 당시 변사현장에서 수거하지 못한 목뼈 3점, 머리카락 뭉치, 지팡이 등은 추후 수사 과정에서 회수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의복류와 휴대용 돋보기, 스쿠알렌 등 소지품 일부는 유병언의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나 그외의 막걸리 빈 병 등은 소지 경위와 용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은 변사 현장 인근 수색 결과 내용입니다.
7월 22일부터 송치재에서 유병언이 전도사 시절 방문한 적이 있는 구 순천교회까지 수색구간을 정하고 총 28회에 걸쳐 연인원 3800여 명과 수색 인원을 동원하여 정밀 수색을 실시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물품을 발견하였습니다.
7월 22일 송치재 염소 농장 옆 개울가에서 빈 병 하나, 보해골드 소주병, 비료포대, 7월 31일 학구리 우측 깨밭에서 워터 인 워터 생수병.
소로변에서 사기그릇 조각과 보해골드 소주병 등을 발견하였고 마지막으로 8월 12일 학구마을 2개소에서 사기그릇 조각을 발견하였습니다.
다음은 현장 유류품 등에 대한 증거분석 결과입니다.
변사자의 의복류 7점, 천 가방 등 소지품 34점, 현장주변 수색 중 발견한 워터인워터 생수병 등 69점, 별장의 압수품 18점 등을 국과수에 정밀감정을 의뢰하였습니다.
유병언의 의복류에 대한 손상흔과 충격흔 감정 결과, 예리한 도구 또는 둔기 등에 의한 손상은 없었으며, 신발에서 다수의 긁힌 흔적 및 마찰흔적이 식별되고 특히 우측 신방 우측 면에 긁힌 흔적은 평상시 도로 보행에서 나타나기 어려운 흔적으로 보이고 내복, 팬티 등에서는 타격 등 외부 충격으로 나타난 잠재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변사체 안의 녹색 소주병의 주입구, 점퍼에 있던 스쿠알렌 주입구, 별장에서 압수한 스쿠알렌 빈 병 등에서 유병언의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또한 DNA 정밀분석을 통해 7월 25일 국과수 발표 당시에는 검출되지 않았던 보해골드 소주병, 막걸리 병, 매실 씨앗과, 청미래 넝쿨, 육포, 머스터드 소스통에서도 유병언의 DNA가 추가 검출되었습니다.
송치재 별장과 변사 현장 중간에 위치한 순천 전철 변전소 주변 깨밭에서 발견된 워터인워터 생수병은 유병언의 DNA가 채취되지는 않았으나 유통기한이 2014년 10월 24일 15시 58분으로 기재가 돼 있어 이는 별장에서 압수한 생수병과 동일하였습니다.
다음은 변사 현장 인근 CCTV과 마을 주민 탐문에 관한 내용입니다.
학구삼거리를 중심으로 송치재에서 구 순천교회 주변에 설치된 CCTV와 차량 블랙박스등 녹화자료를 분석하였습니다.
분석 결과 송치재 인근을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들과 차량의 움직임이나 유병언의 행적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변사 현장 인근 식당과 회사에 설치된 CCTV에서 불상자가 학구삼거리에서 변사현장 쪽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확인하여 국과수와 경찰청등에 촬영된 인물의 키를 측정하고 인물 영상과 의복 및 소지품 등에 대한 판독을 의뢰한 결과 국과수에서는 영상의 인물은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게 관찰되고 밝은 색 계열의 모자와 어두운 색의 상하의를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왼쪽에 밝은 색 미상의 물체가 발견이 되나, 사건 방향 막대처럼 보이는 물체 및 심장계측은 원거리에서 촬영되고 해상도가 낮아 판독이 어려운 취지로 회신하였고 경찰청 과학수사 센터에서는 좌측에 밝은 톤의 물건을 들고 밝은 톤의 물건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나 원거리 촬영으로 정확하게 판독하기 어렵다고 회신하였으며 유병언의 유가족과 측근들에게 해당 영상을 보여주었으나 일부는 유병언과 비슷하다, 일부는 모르겠다고 하는 등 CCTV 영상의 인물이 유병언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수사 본부에서는 별도의 탐문수사팀을 편성하여 송치재에서 구 순천교회 구간은 마을 거주자와 노선버스 운전사, 자영업자 등 1400여 명을 상대로 광범위한 탐문을 진행을 하였습니다.
탐문 결과 유병언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람은 없었으나 다음과 같은 진술을 확보하였습니다.
첫째, 인근 주민들은 송치재 부근은 공중전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연락하기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최근 낯선이가 음식물이나 전화사용을 요청한 적이 있다거나 음식물을 도난당한 적이 있다는 주민들도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학구마을 태봉산 아래 거주하는 박 모씨는 5월 30일경, 개 2마리가 평소와 달리 크게 짖어 잠을 못 이뤘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촌마을, 학구마을 이모 씨는 송치재에서 별장 옆쪽으로 흐르는 개울가는 인근 주민들이 물놀이 가던 곳이었으나 2010년 경 염소농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점차 발길이 끊어졌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유병언은 평소 생활 습관과 환경에 관한 내용입니다.
유병언은 2005년 이후 대부분 금수원 2층 작업실에서 망원 렌즈를 이용해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고 평소 잘 걷지 않았으며 별장에 은신한 이후에도 대부분 별장 내에만 있었고 양회정 등이 햇볕이라도 보게 움직이라고 권유했지만 이 역시 거절하고 칩거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체온 관리를 해야 몸이 건강하다며 연중 내복을 입었고 잠을 잘 때 항상 모자를 썼다고 하였습니다.
유병언은 평소 적은 양의 식사를 했는데 별장 은신 이후에는 이마저도 줄어 종이컵 3분 2 분량씩 하루에 2끼만 먹었고, 평소에 스쿠알렌이나 육포를 즐겨 먹었다고 하고 평상시 안경을 쓰지 않는다고 측근들이 일치된 진술을 하고 있고 외부 강연 시에는 안경을 쓰고 책을 볼 때만 돋보기를 쓰고 항상 수행원이 있어 지갑이나 휴대폰, 신분증 등은 평소에 휴대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금수원에 도피 조력 관련 내용입니다.
유병언이 송치재로 은신한 사실은 일부 측근들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며 송치재 별장을 비워 졌던 관리인 부부는 물론 순천 보성지역 신도들조차 모르고 있던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신윤화가 체포된 이후 유병언이 송치재 별장에 홀로 남겨졌던 사실도 금수원의 일부 신도들에게 공지되지 않았습니다.
금수원 신도들은 유병언 검거 소식이 없고, 5월 27일경 송치재 주변에서 유병언이 도주했다는 보도에 이어 새벽에 누군가 유병언을 데리고 갔다는 신윤화의 발언이 보도되자 안전하게 이동한 것으로 알고 안심하였다고 진술했습니다.
결국 유병언이 송치재 별장에 홀로 남겨진 이후 금수원 신도들의 조직적인 도피 조력 활동은 없었으며 다만 5월 29일 금수원 직원 이 모 씨가 검찰이 유병언을 검거하기 위해 송치재 별장을 급습했다는 소식을 듣고 야망연수원 근처 모 농장을 방문하여 키 작은 노인이 먹을 것을 얻으러 오면 모 아이 아빠가 왔다고 전해 주고 은혜를 입은 분이니 잘 부탁드린다고 하는 등 약 3시간 가량 송치재 부근을 배회한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입니다.
유병언 변사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광범위한 수사 및 탐문수사, 각종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하여 분석한 결과 범죄의 흔적이나 사망 후 시신이 이동되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유병언 측근 금수원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 및 차량 이동 통신 내역 등을 추적하였으나 이들이 5월 25일 이후 유병언과 접촉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상과 같이 유병언 변사사건과 관련하여 다각도로수사한 결과 사망시기는 6월 2일 이전이 유력한 것으로 분석이 되었고 사망 원인은 독극물에 의한 사망 가능성은 배제되었으며, 이상 탈의 현상을 토대로 저체온사로 진단한 전문가도 있었으나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병언의 사망이 범죄에 기인한것이라는 단서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향후 경찰은 순천경찰서에 수사전담팀 체제를 유지하며 새로운 제보나 단서를 중심으로 사실규명을 위한 수사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상 수사 결과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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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씨의 사망추정 일자 그리고 최후 행적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조금 전 시작됐습니다.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인터뷰:백승호, 전남경찰청장]
변사체의 신원 확인 및 사망에 대한 범죄관련성 규명을 위해 순천경찰서에 수사 본부를 설치하여 2014년 7월 23일부터 8월 19일까지 28일간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하였고 그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수사 결과의 요지입니다.
변사체에서 체취한 DNA와 지문이 유병언 것과 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유병언 주치의의 사전 정보와 변사자의 사후 치아 정보가 일치하고 입었던 의복 등에 대한 수사 결과 변사자가 유병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2회에 걸친 부검, 법의학 법곤충학 생태환경 조사, 주요 장소에 대한 정밀 감식, 혈흔 및 DNA 검사, 의복류에 대한 타격흔 검사 등 가능한 모든 수사 결과를 진행하였고 검찰과 협조하여 신윤아, 김영숙, 구속 피의자 10여 명과 양회정, 김명숙 등 불구속 피의자 및 금수원 신도 등 40여 명을 조사하였습니다.
또한 송치재 인근 주민, 버스기사, 자영업자 등 1400여 명에 대한 1:1 탐문 수사와 연인원 3800여 명을 동원하여 송치재부터 구 순천 부근을 28회에 걸쳐 정밀수색을 실시하고 22개소 CCTV를 확보하여 분석하는 등 범죄 관련성 여부를 규명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으며, 현재까지 수사한 결과 유병언의 사망이 범죄에 기인한 것이라는 단서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경찰은 순천경찰서에 수사전담팀 체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보나 단서를 중심으로 사실 규명을 위한 수사를 해 나갈 예정이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사 사건 업무체계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진단하고 변사처리 표준절차 규정, 전문 검식안 인력 증진등 종합개선대책을 마련하여 변사사건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습니다.
지금 부터 구체적인 수색 진행 경과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신원 확인및 변사사건 수사 개시에 관한 내용입니다.
6월 12일 09시 4분 경, 박 모씨는 서면 학구리 자신의 매실묘목밭에 변사체가 있다는 112 신고를 하였고 곧이어 서명파출소장 강력팀, 과학수사팀 등 7명이 도착하여 현장 감식등 조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주요 수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6월 12일 10시 50분 경, 순천의료원에서 검안이 있었고 11시 20분부터 12시 40분까지 순천장례식장 안치 후 검시가 진행이 되었으며, 6월 13일 13시 50분14시 40분까지 성가를로병원에서 부검이 있었고, 15시 40분에는 DNA 검사를 위해 국과수에 대퇴부 뼈, 치아 등을 감정 의뢰하였습니다.
7월 21일 19시 30분경 국과수로부터 유병언의 DNA가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으며 7월 22일 01시 20분 경, 우측 CG 지문지 유영언과 일치한다는 것을 추가 확인하였습니다.
7월 22일 09시 경, 변사자가 유병언으로 확인되었다는 순천서의 브리핑이 있었으며, 7월 23일부터는 수사본부를 설치하여 집중 수사를 하였습니다. 다음은 유병언의 송치재 별장 은신 전후에 행적 수사 내용입니다.
유병언은 4월23일 아침 금수원을 나와 경기 안성 신모 씨 집, 4월 24일 안성 한상옥 집에서 은신하였다가 5월 3일 23시 경, 양회정 등 측건 6명과 함께 벤틀리 승용차등을 타고 출발하여 5월 4일 03시 30분경 송치재 별장에 도착한 이후 신윤아와 함께 별장에 계속 기거하였고 양회정과 김명숙 등은 금수원과 별장을 오가며 은신에 필요한 음식, 생수 등 생필품의 공급했습니다.
5월 25일 01시 20분경 별장을 제공한 변 부부가 당시 인근 야망연수원에서 도주한 양회정이 이로써 별장에는 신윤아와 유병언 단 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5월 22일 20시 인천지검은 유병언과 신윤아가 은신해 있던 별장을 압수수색을 하였고 23시 20분경 신윤아를 체포했습니다.
이후 신윤아는 최초 진술에서 유병언을 누군가 데려가 소재를 모른다고 하였다가 6월 26일경에 이르러 자신이 체포될 당시에 별장 2층에 어두운 색 자켓과 생수등을 밀어넣어주고 입구를 소파로 막아 유병언을 피신시켰다고 진술했습니다.
5월 25일 23시 20분경, 신윤아 체포 이후 송치재 별장에서는 5월 26일 00시 30분부터 02시 30분까지 인천지검에 2차 압수수색이 있었고 5월 26일 19시까지 사진 촬영과 지문 감식및 DNA 채취가 진행되었습니다.
5월 26일 21시 18분부터 21시 30분까지 112 신고에 따라 파출소 경찰관들이 별장을 수색하는 등 검찰과 경찰에 의한 수사와 현장활동이 진행되었습니다.
신윤아의 진술, 소변 감정 결과등으로 유병언은 5월 25일 23시 20분 이후 송치재 별장 2층 밀실에 혼자 남겨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6월 12일 유병언은 별장에서 약 2. 5km 떨어진 박 모씨의 매실 묘목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다음은 사망 시점과 원인에 대한 수사 내용입니다.
유병언의 시신은 두 차례의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과 사망 시기는 판명되지 않았으나 골절 등의 외상과 체내 독극물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를 국과수 등으로부터 회신받았습니다.
사망 시기와 원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정하기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구했습니다.
국과수, 고려대, 전북지방 경찰청 등은 변사 현장에서 법 곤충학 기법을 통한 검사를 통해서 사망 시점이 적어도 6월 2일 이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고려대의 생태환경공학과 강병화 명예교수는 변사체에 눌려있는 풀과 주변 풀 이삭 상태 등을 비교하여 발견시점으로부터 10일 이상 1개월 이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서울대 법의학과 이 교수는 변사 사진 상 외상 및 변사체를 옮긴 증거는 없다고 자문했습니다.
가톨릭대 법의학과 강신몽 교수는 유병언 변사체의 탈의 현상은 저 체온에 빠져 사망에 이를 때 나타나는 이상탈의 현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며 체온 사인을 저체온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다음은 변사 현장 및 유류품 수사 내용입니다.
유병언의 시신은 발견되었고 이곳은 산기슭에 위치하여 바로 옆 고추밭보다 2, 3m 높아 고추밭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지점입니다.
또한 변사 현장 진입로로는 철망문으로 통제되어 있어 평소 주민들의 왕래가 거의 없었으며 다소 외진 곳으로 발견 당시 풀이 무성한 상태였습니다.
변사 현장은 지대가 높아 진입로에서는 잘보이지 않으나 국도와 교하하는 학구 삼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입니다.
변사체의 주변 풀과 관련하여 고려대 생태환경공학과 강병화 교수는 시신 바로 아래눌려있던 풀은 변사체의 부패된 체액과 광차단으로 녹았고 주변의 풀이 눕게 된 이유는 뿌리 부분이 부패된 체액과 산소 부족으로 죽어가며 누렇게 변하여 시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자문하였습니다.
변사 현장의 유류품을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육포와 스쿠알렌은 별장에서 압수한 것과 동일한 제품이고 유병언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비료포대는 2010년 1월에 생산된 제품으로 구매 내역 추정한 바 변사현장 인근 철쭉밭을 경작 중인 윤 모씨가 구입한 사실을 확인하였고 이 밭에서 동일한 비료포대가 발견되었습니다.
막걸리 빈 병은 적어도 2011년 이전 생산 제품이며 유병언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나머지 소주병 두 개, 머스터드 소스 병 두개에서도 유병언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불상의 씨앗 열매 19개는 국과수 감정으로 매실 씨앗 3개, 청미래 덩쿨 16개로 확인이 되었고 여기에서도 유병언의 DNA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사기 그릇 조각은 별장 주변에서 유사한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의복류, 돋보기 등은 신윤아, 김명숙, 추경업, 양회정 등 측근들이 유병언의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변사 현장에서 발견된 꿈 같은 사랑 천가방은 별장에서 압수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안팎이 뒤집어져 있고 현장의 식재 또는 자생하고 있는 매실과 청미래 덩쿨, 막걸리 소주 빈 병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6월 16일 당시 변사현장에서 수거하지 못한 목뼈 3점, 머리카락 뭉치, 지팡이 등은 추후 수사 과정에서 회수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의복류와 휴대용 돋보기, 스쿠알렌 등 소지품 일부는 유병언의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나 그외의 막걸리 빈 병 등은 소지 경위와 용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음은 변사 현장 인근 수색 결과 내용입니다.
7월 22일부터 송치재에서 유병언이 전도사 시절 방문한 적이 있는 구 순천교회까지 수색구간을 정하고 총 28회에 걸쳐 연인원 3800여 명과 수색 인원을 동원하여 정밀 수색을 실시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물품을 발견하였습니다.
7월 22일 송치재 염소 농장 옆 개울가에서 빈 병 하나, 보해골드 소주병, 비료포대, 7월 31일 학구리 우측 깨밭에서 워터 인 워터 생수병.
소로변에서 사기그릇 조각과 보해골드 소주병 등을 발견하였고 마지막으로 8월 12일 학구마을 2개소에서 사기그릇 조각을 발견하였습니다.
다음은 현장 유류품 등에 대한 증거분석 결과입니다.
변사자의 의복류 7점, 천 가방 등 소지품 34점, 현장주변 수색 중 발견한 워터인워터 생수병 등 69점, 별장의 압수품 18점 등을 국과수에 정밀감정을 의뢰하였습니다.
유병언의 의복류에 대한 손상흔과 충격흔 감정 결과, 예리한 도구 또는 둔기 등에 의한 손상은 없었으며, 신발에서 다수의 긁힌 흔적 및 마찰흔적이 식별되고 특히 우측 신방 우측 면에 긁힌 흔적은 평상시 도로 보행에서 나타나기 어려운 흔적으로 보이고 내복, 팬티 등에서는 타격 등 외부 충격으로 나타난 잠재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변사체 안의 녹색 소주병의 주입구, 점퍼에 있던 스쿠알렌 주입구, 별장에서 압수한 스쿠알렌 빈 병 등에서 유병언의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또한 DNA 정밀분석을 통해 7월 25일 국과수 발표 당시에는 검출되지 않았던 보해골드 소주병, 막걸리 병, 매실 씨앗과, 청미래 넝쿨, 육포, 머스터드 소스통에서도 유병언의 DNA가 추가 검출되었습니다.
송치재 별장과 변사 현장 중간에 위치한 순천 전철 변전소 주변 깨밭에서 발견된 워터인워터 생수병은 유병언의 DNA가 채취되지는 않았으나 유통기한이 2014년 10월 24일 15시 58분으로 기재가 돼 있어 이는 별장에서 압수한 생수병과 동일하였습니다.
다음은 변사 현장 인근 CCTV과 마을 주민 탐문에 관한 내용입니다.
학구삼거리를 중심으로 송치재에서 구 순천교회 주변에 설치된 CCTV와 차량 블랙박스등 녹화자료를 분석하였습니다.
분석 결과 송치재 인근을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들과 차량의 움직임이나 유병언의 행적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변사 현장 인근 식당과 회사에 설치된 CCTV에서 불상자가 학구삼거리에서 변사현장 쪽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확인하여 국과수와 경찰청등에 촬영된 인물의 키를 측정하고 인물 영상과 의복 및 소지품 등에 대한 판독을 의뢰한 결과 국과수에서는 영상의 인물은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게 관찰되고 밝은 색 계열의 모자와 어두운 색의 상하의를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왼쪽에 밝은 색 미상의 물체가 발견이 되나, 사건 방향 막대처럼 보이는 물체 및 심장계측은 원거리에서 촬영되고 해상도가 낮아 판독이 어려운 취지로 회신하였고 경찰청 과학수사 센터에서는 좌측에 밝은 톤의 물건을 들고 밝은 톤의 물건을 머리에 쓰고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나 원거리 촬영으로 정확하게 판독하기 어렵다고 회신하였으며 유병언의 유가족과 측근들에게 해당 영상을 보여주었으나 일부는 유병언과 비슷하다, 일부는 모르겠다고 하는 등 CCTV 영상의 인물이 유병언이라고 특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수사 본부에서는 별도의 탐문수사팀을 편성하여 송치재에서 구 순천교회 구간은 마을 거주자와 노선버스 운전사, 자영업자 등 1400여 명을 상대로 광범위한 탐문을 진행을 하였습니다.
탐문 결과 유병언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람은 없었으나 다음과 같은 진술을 확보하였습니다.
첫째, 인근 주민들은 송치재 부근은 공중전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연락하기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최근 낯선이가 음식물이나 전화사용을 요청한 적이 있다거나 음식물을 도난당한 적이 있다는 주민들도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학구마을 태봉산 아래 거주하는 박 모씨는 5월 30일경, 개 2마리가 평소와 달리 크게 짖어 잠을 못 이뤘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촌마을, 학구마을 이모 씨는 송치재에서 별장 옆쪽으로 흐르는 개울가는 인근 주민들이 물놀이 가던 곳이었으나 2010년 경 염소농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점차 발길이 끊어졌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유병언은 평소 생활 습관과 환경에 관한 내용입니다.
유병언은 2005년 이후 대부분 금수원 2층 작업실에서 망원 렌즈를 이용해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고 평소 잘 걷지 않았으며 별장에 은신한 이후에도 대부분 별장 내에만 있었고 양회정 등이 햇볕이라도 보게 움직이라고 권유했지만 이 역시 거절하고 칩거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체온 관리를 해야 몸이 건강하다며 연중 내복을 입었고 잠을 잘 때 항상 모자를 썼다고 하였습니다.
유병언은 평소 적은 양의 식사를 했는데 별장 은신 이후에는 이마저도 줄어 종이컵 3분 2 분량씩 하루에 2끼만 먹었고, 평소에 스쿠알렌이나 육포를 즐겨 먹었다고 하고 평상시 안경을 쓰지 않는다고 측근들이 일치된 진술을 하고 있고 외부 강연 시에는 안경을 쓰고 책을 볼 때만 돋보기를 쓰고 항상 수행원이 있어 지갑이나 휴대폰, 신분증 등은 평소에 휴대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금수원에 도피 조력 관련 내용입니다.
유병언이 송치재로 은신한 사실은 일부 측근들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며 송치재 별장을 비워 졌던 관리인 부부는 물론 순천 보성지역 신도들조차 모르고 있던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신윤화가 체포된 이후 유병언이 송치재 별장에 홀로 남겨졌던 사실도 금수원의 일부 신도들에게 공지되지 않았습니다.
금수원 신도들은 유병언 검거 소식이 없고, 5월 27일경 송치재 주변에서 유병언이 도주했다는 보도에 이어 새벽에 누군가 유병언을 데리고 갔다는 신윤화의 발언이 보도되자 안전하게 이동한 것으로 알고 안심하였다고 진술했습니다.
결국 유병언이 송치재 별장에 홀로 남겨진 이후 금수원 신도들의 조직적인 도피 조력 활동은 없었으며 다만 5월 29일 금수원 직원 이 모 씨가 검찰이 유병언을 검거하기 위해 송치재 별장을 급습했다는 소식을 듣고 야망연수원 근처 모 농장을 방문하여 키 작은 노인이 먹을 것을 얻으러 오면 모 아이 아빠가 왔다고 전해 주고 은혜를 입은 분이니 잘 부탁드린다고 하는 등 약 3시간 가량 송치재 부근을 배회한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입니다.
유병언 변사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광범위한 수사 및 탐문수사, 각종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하여 분석한 결과 범죄의 흔적이나 사망 후 시신이 이동되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유병언 측근 금수원 관계자 등에 대한 조사 및 차량 이동 통신 내역 등을 추적하였으나 이들이 5월 25일 이후 유병언과 접촉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상과 같이 유병언 변사사건과 관련하여 다각도로수사한 결과 사망시기는 6월 2일 이전이 유력한 것으로 분석이 되었고 사망 원인은 독극물에 의한 사망 가능성은 배제되었으며, 이상 탈의 현상을 토대로 저체온사로 진단한 전문가도 있었으나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병언의 사망이 범죄에 기인한것이라는 단서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향후 경찰은 순천경찰서에 수사전담팀 체제를 유지하며 새로운 제보나 단서를 중심으로 사실규명을 위한 수사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상 수사 결과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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