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복장, 달라진 운명...나토 정상회의에서 드러난 우크라이나의 현실 [한방이슈]

달라진 복장, 달라진 운명...나토 정상회의에서 드러난 우크라이나의 현실 [한방이슈]

2025.07.01. 오후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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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연례 정상회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검은 정장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전쟁 시작 이후 3년 동안 상징과도 같던 군복 대신, 트럼프와의 만남을 위해 정장을 선택했습니다.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젤렌스키의 군복을 대놓고 지적했던 트럼프는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 미국 대통령 : 잘 차려 입었네요.]

복장 변화는 우크라이나가 처한 새로운 현실을 상징하는 신호였습니다.

국제정치의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운명을 보여줬습니다.

올해 나토 정상회의는 마치 트럼프를 위한 무대처럼 보였습니다.

정상 회의의 중심 의제였던 러시아의 침공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젤렌스키의 복장 변화는 달라진 권력 관계 구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우크라이나

나토 정상회의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우크라이나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지만, 논란이 될 만한 의제는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정상회의 공동 성명에서 오랫동안 논의해온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지난해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합의가 있었지만, 올해는 그런 보장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트럼프 중심 외교 무대…50분 만나도 약속은 없어

모든 참석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국제정치의 현실적 역학 관계를 보여줍니다.

젤렌스키조차 이례적으로 군복 대신 검은 정장을 선택한 것은, 트럼프와 측근들이 군 스타일 복장을 불쾌하게 여겼다는 것을 의식한 결과였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정체성조차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젤렌스키와 트럼프는 50분 간 정상 회담을 가졌습니다.

회담 이후 젤렌스키가 "긴 시간 의미 있는 대화였다"며 감사를 표한 것과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정말 친절했다"고 평가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평화 협상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은 없었습니다.

트럼프가 언급한 것은 단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을 추가로 보낼 가능성뿐이었습니다.
 
 


악화되는 전황과 줄어드는 미국 지원

현실에서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민간인 공격을 강화하여 2025년 첫 다섯 달 동안의 민간인 사상자 수가 2024년 같은 기간보다 거의 50% 증가했습니다.

나토 회담 직전 드니프로시에서 발생한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당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참혹한 사례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의 지원 감소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최대 지원국이었던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거의 5개월째 새로운 군사 지원 패키지를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 승인된 군사 지원은 올 여름이면 바닥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드론을 중심으로 러시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지만, 전력 격차를 메우기엔 역부족입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드론 전쟁만으로 전세를 뒤집긴 어렵다"고 단언합니다.

우크라이나에겐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파괴할 때 보여준 단호함이 절실하지만, 트럼프식 외교에서 이란과 러시아는 분명 다릅니다.

같은 위협, 다른 기준, 한 마디로 이중 잣대입니다.
 
 


같은 위협, 다른 기준…이중 잣대와 일관성의 부재

트럼프 행정부의 이중 잣대에 대해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올렉산드르 메레즈코는 이렇게 비판합니다.

"트럼프는 이란에는 강경하면서, 푸틴에겐 유화적입니다. 같은 독재 정권이지만 대응은 다릅니다."

메레즈코 의원은 지난해 말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던 인물입니다.

지금은 자신의 발언을 철회한 상태입니다.

이중 잣대는 나토의 대응에서도 나타납니다.

지난해 러시아의 민간인 공격에 대해 강하게 규탄했던 나토는 올해 정상회의 첫날 3백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묵묵부답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서도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던 지난해와 달리 원론적인 수준의 공동 성명만을 발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에 가로막힌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정상회의 공동 성명은 단 5개 단락으로 구성됐고, 지난해 합의된 새로운 러시아 전략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간략하게 언급됐을 뿐이고, 중국에 대한 언급은 아예 빠졌습니다.

대신 나토 회원국 대부분이 향후 10년 동안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확대하겠다는 약속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트럼프를 위한 나토 정상회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계속…우크라이나의 '외교 전쟁'

젤렌스키가 군복을 벗었다고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로운 전쟁, 즉 '외교적 생존 전쟁'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점점 더 복잡한 외교 게임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분명해 보이는 건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점입니다.

나토 정상회의를 포함해 6월 열렸던 G7 정상회의, 유럽 이사회 등의 주요 의제는 사실상 '트럼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였습니다.

그리고 나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지휘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를 동맹으로 대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대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경고합니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 표적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도바 같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시각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지 무대와 조명, 다시 말해 싸우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3년을 지켜온 군복을 벗어던진 젤렌스키의 선택이 전략인지 굴복인지는 역사가 판단할 몫입니다.

분명해 보이는 한 가지 사실은 전략과 굴복의 경계선 위에서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결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획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형근(yihan3054@ytn.co.kr)
참고 기사: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이형근 (yihan305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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