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이슈] 한반도식 분단의 길?..우크라판 38선 생기나

[한방이슈] 한반도식 분단의 길?..우크라판 38선 생기나

2023.01.10. 오후 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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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 휴전' 약속 무색..우크라에 계속된 포성
우크라 고위 관리 "러, '한국 시나리오' 따른 휴전 제안"
휴전협상에서 중요한 '영토-명분'..한국전쟁 고지전의 사례
"친러 vs 반러"..정치로 본 우크라이나 내 동-서 갈등
"98% vs 10%"..우크라어 모국어 사용 비율
'반러-친서방' 중심지 서부, 젤렌스키 주 지지층
또 다른 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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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 기준 성탄절이었던
1월 7일을 하루 앞두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자비, 정의와 같은
도덕적 지침을 재확인하는 날"
이라고 의미를 되새겼지만,
정작 그 순간에도
전장에서는 피의 포격이 이어졌습니다.

'36시간 휴전'이라는 약속,
산산조각이 나 버린 겁니다.

"상대 공격에 어쩔 수 없었다"는
러시아 측 해명,
반면 "휴전 선포시각 직후부터
러시아 포격이 있었다"며
애초 의지에 의문을 던지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언론.

결국, 일시 휴전은
상상으로만 끝나고 말았습니다.

평행선을 달리는
푸틴과 젤렌스키 입장 차,
휴전협상 문제를 두고도
마찬가지인데요.

"러시아로부터 '한국식 (분단) 시나리오'
제안받고 있다, 이른바 38선 같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점령지 유지한 채
휴전에 들어가는 방안,
푸틴 측근이 유럽 정치인들 만나면서
열심히 설득 작업 중이라는 건데,
물론 크렘린은 즉각 부인했습니다.

종전보다는 약한 개념인 휴전,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요.
그런 만큼 협상에도 진통을 겪기 마련입니다.
한국전쟁이 대표적이었는데요.

2년을 끈 휴전회담, 그사이 최전방에서
쉴새 없이 펼쳐졌던 죽음의 '고지전'
계속된 폭격으로 깎여버린 고지처럼,
수많은 목숨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휴전협상에서 중요한 두 가지,
'영토'와 '명분'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였죠.

그리고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난 2010년 우크라이나
대선 후보별 득표율을 보면
동쪽은 푸른색, 반면 서쪽은
노랑, 주황, 붉은색 계열로 도배돼 있습니다.

파랑이 진할수록 친러 후보.
빨강이 진할수록 반러-친서방 후보 지지,
동-서가 확연히 갈리는 상황인데요.

언어 역시 비슷한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어 모국어 사용 비중이
90% 훌쩍 넘기는 서부,
반면 동부 일부는 30% 미만으로 떨어집니다.
심지어 크림반도는 10%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같은 국가, 다른 문화,
우크라이나 내 동-서 갈등,
역사에서 그 원인 찾을 수 있는데요.

17세기 이래로 일찌감치 러시아
영향권에 놓였던 동부,
또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직접 빼앗아 동화정책 편 남부,
여기에 폴란드 지배 거쳤지만,
18세기 후반 러시아 손에 들어간 중부까지.

반면 서부의 경우 2차대전 발발 전에는
러시아, 소련과 큰 접점이 없었습니다.
서부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또 반러-친서방 세력의
중심이 된 이유입니다.
실제 현 우크라이나 지도자
젤렌스키의 주 지지기반이기도 합니다.

이런 우크라이나를 향해
"러시아의 안보 보장을 원한다"는
푸틴의 요구 조건,

바꿔말하면 서방과 손 떼라는 의미.
'휴전 명분' 측면에서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지도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인데요.

여기에 또 다른 휴전의 걸림돌 '영토',
크림반도를 둘러싼 갈등입니다.

면적 약 2만7천 제곱킬로미터,
우리 수도권과 강원도 합친 정도.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
부동항 확보할 수 있고
또 지중해 거쳐 먼바다 나가려면
필수적이라는 지정학적 측면까지,
크지 않은 면적에도
종종 전쟁의 무대로 선택됐던 배경입니다.

이런 크림반도에
갈등의 씨앗이 심어진 건 1954년,
당시 소련 최고지도자
흐루쇼프에 의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넘어간 건데요.

내세웠던 이유는 크게 3가지였습니다.
첫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민족 화합,
두 민족 통합의 첫걸음을 뗀
1654년 페레야슬라프 조약
30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

둘째, 행정상 편의, 크림반도가
러시아보다는 우크라이나와 가깝고
땅도 맞닿아 있다는 점.

셋째, 연방제 국가라는 특수성,
당시는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어차피 소련 땅이니
행정구역 변경 정도로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4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무너진 소련,
연방 내 행정구역은 국경이 돼 버렸고,
크림반도 인구 다수는 러시아계였습니다.
반러 정권 들어선 우크라이나에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 카드로
맞받아친 배경 중 하나인데요.

특히 푸틴이 점령한 땅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유,
섣부른 협상의 역풍을
역사가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 도중
탄생한 신생국가 소비에트 러시아,
그 지도자 레닌,

하지만 이어진 반혁명 세력과의 적백내전,
내부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독일과 전쟁을 멈추는
단독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그것이죠.

문제는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는 겁니다.
핀란드와 발트 3국,
폴란드, 우크라이나, 캅카스 일부까지
러시아가 수백 년에 걸쳐
야금야금 유럽 쪽으로 손을 뻗었던
영토 대부분을 포기하고 만 거죠.

그 결과는? 레닌에 대한 암살 시도!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 속
6년 만에 54살 나이로 숨졌고
권력의 공백기를 파고든 건
바로 스탈린이었습니다.
역사의 흐름에 또 한 번의
변곡점이 찍힌 순간이었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전,
낡은 나무에 불을 붙이는
불꽃이 될 수 있다"

전쟁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푸틴 체제는 물론 '국가 붕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기도 하죠.

물론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시간은 우크라이나의 편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 단결에
금이 가 지원이 끊길 가능성,
특히 내년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이 가까워진다는 점 역시
주요 변수라는 건데요.

결국, 러시아 국내 내부 상황과
서방국가의 피로감.

두 고무줄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끊어지느냐의
싸움이라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없이는
러시아 제국도 없다는 푸틴.

반면 러시아와의 전쟁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상황,

서로 이질적이었던 동부와 서부가
러시아라는 외부 변수로
오히려 한데 묶이는 효과를
내심 기대하는 젤렌스키.

"전쟁,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멈추는 건 더 어렵다"라는 말처럼

전쟁을 멈출 명분을
아직은 채우지 못한
두 지도자의 긴 눈치싸움,
한동안 지속될 거란 전망이
우세한 상황입니다.


기획 : 박광렬(parkkr0824@ytn.co.kr)
촬영 : 안용준(dragonjun@ytn.co.kr)
손민성(smis93@ytn.co.kr)
편집 : 손민성(smis9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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