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와이파일]문화재로 지정된 민영휘 묘막(墓幕)…끝내 친일파라 못 적은 춘천시

실시간 주요뉴스

[와이파일]문화재로 지정된 민영휘 묘막(墓幕)…끝내 친일파라 못 적은 춘천시
닭갈비와 막국수로 유명한 강원도 춘천.
춘천 동쪽 마을 풍광 좋은 곳에 잘 알려지진 않은 커다란 무덤이 있습니다. 일본강점기 국권침탈, 경술국치의 주역이자 친일파의 대표적인 인물 민영휘의 무덤입니다.

[와이파일]문화재로 지정된 민영휘 묘막(墓幕)…끝내 친일파라 못 적은 춘천시


무덤은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명당으로 보이는 곳에 서 있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 이름깨나 떨쳤던 양반가의 묘라고 생각할 정도로 크고, 지금까지도 아주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 바로 앞에는 한옥 한 채가 있습니다. 무덤을 관리하기 위한 집인데, 이름도 있습니다. '민성기 가옥'입니다.

1920년대 지어진 민성기 가옥은 건축 가치가 인정돼 1985년 강원도 문화재 66호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친일파 민영휘의 무덤을 관리하기 위한 가옥이라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아예 민영휘라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지난 2017년 이런 사실을 처음 확인해 기사를 썼습니다. 첫 보도가 나가자 당장 문화재 지정을 취소하라는 항일독립운동가 단체의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개인 소유인 해당 가옥은, 소유자의 문화재 해지 신청이 있거나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잃거나 훼손될 때 문화재 지정 취소가 가능합니다. 80년대 문화재로 지정된 민성기 가옥은 현재 자치단체에서 세금을 들여 매년 유지 보수하고 있습니다. 훼손될 일이 없습니다. 소유자가 해지 신청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문화재 지정 취소는 어렵습니다.

대안이 뭘까요?
문화재로 지정해 세금을 투입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재 안내판에 친일 관련 역사를 함께 기록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 이유입니다.

2017년 6월 취재를 시작해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사 링크 제목 클릭)
# '친일파' 민영휘 무덤 관리 가옥이 지방문화재로….(2017년 06월)
# "친일 행적 함께 기록합시다." (2017년 06월)

춘천 민성기 가옥 외에도 비슷한 상황의 다른 문화재를 찾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 문화재로 둔갑한 친일파의 집…세금 들여 보존 (2019년 01월)

지난해 3월에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민성기 가옥 보수에 지금까지 혈세 4억4천만 원이 넘게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 '흥청망청' 친일파 무덤 관리…가옥 보수에 혈세 4억여 원(2021년 03월)


[민성기 가옥 보수 비용]
1992년 - 40,557,000원 안채와 사랑채(행랑채 부분) 긴급 구제보수
1996년 - 60,600,000원 안채와 사랑채를 연목 이상 해체하고 부식재 교체 등 보수하고 지붕 보수
1999년 - 92,180,000원 안채 기단 및 벽체 미장, 창호 보수, 협문 및 한식 토담, 석축 등 주변 정비
2003년 - 65,960,000원 화장실 개축 및 기존 석축과 토담 보수, 안채의 기단과 마루, 지붕 일부 보수
2013년 - 125,919,580원 안채와 사랑채의 연목 이상을 해체하고 부식재 등 교체 및 지붕 보수
2020년 - 55,482,000원 단면 손실이 발생한 담장 해체보수

하지만 이후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공허한 메아리였지만 오기가 생겼습니다.
다시 기사를 썼습니다.
# 문화재로 지정된 친일파 무덤 관리 가옥…친일 관련 기록은 언제쯤? (2021년 08월)

자치단체가 마침내 답했습니다.

[와이파일]문화재로 지정된 민영휘 묘막(墓幕)…끝내 친일파라 못 적은 춘천시


다시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담당 부서에 연락해도 준비 중이라는 답변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전화 통화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와 대선 등 굵직한 이슈에서 빠져나올 때쯤 다시 연락했습니다. 안내판이 새로 설치됐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지난해 12월 20일, 이미 한참 전에 문구를 수정해 안내판을 새로 설치했다는 겁니다. 안내판이 새로 설치되고 3개월이나 지나서 알게 됐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처음 취재를 시작하고 4년 반 만에 이뤄진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출근하자마자, 후배 촬영기자와 함께 민영휘 무덤 앞 민성기 가옥으로 달려갔습니다.
안내판이 새로 설치됐습니다. 깔끔하고 튼튼합니다. 문구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춘천 민성기 가옥은 '조선 후기 관료이자 정치인인 민영휘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세워진 묘막(墓幕)이다.>

맞습니다.
민영휘는 조선 후기 관료도 맞고, 당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일본강점기 친일에 앞장선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까지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로 설치된 문화재 안내판에 이런 사실은 단 한 글자도 적히지 않았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민영휘 무덤 관리 가옥은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민영휘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떨까요? 무덤 관리 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면, 아마도 무덤에 묻힌 사람은 꽤 훌륭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요?
새로 설치한 안내판에도 세금 430만 원이 쓰였습니다.

춘천시는 사유지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문화재지만, 민영휘 자손들이 소유한 땅이라, 안내판 설치도 그들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취재 당시 해당 가옥에 거주하는 관리인을 만났는데, 춘천시와의 협의 과정에서 민 씨 일가가 회의를 진행했고, 친일 관련 문구가 들어간 안내판 설치를 반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문화재 지정을 후손들이 바란 것도 아닌데, 이제 와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 "너무 늦었지"…바로 잡기 늦었다는 춘천시

춘천시가 지난해 12월 안내판을 슬그머니 새로 설치하고 아무런 알림이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담당자를 찾아갔습니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안내판에 없던 민영휘라는 이름 세 글자를 기록한 것만 해도 대단한 노력의 성과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친일파의 단죄는 꼭 이뤄져야 하지만, 이미 때늦은 노력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자신들은 할 만큼 했고,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겁니다.


[와이파일]문화재로 지정된 민영휘 묘막(墓幕)…끝내 친일파라 못 적은 춘천시


[와이파일]문화재로 지정된 민영휘 묘막(墓幕)…끝내 친일파라 못 적은 춘천시



다만 안내판에는 문화재청 민성기 가옥 설명 홈페이지로 연동되는 QR 코드를 만들었다며 나름의 성과를 내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홈페이지 역시 어디에도 친일 관련 역사는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춘천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협의해 홈페이지 내용이라도 수정하는 방법을 찾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언제쯤 가능할지를 묻는 말에는 확실하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전북 전주에는 명성황후 암살을 주도한 친일파 이두황 묘가 있습니다. 물론 문화재로 지정된 무덤 관리 가옥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두황의 친일 행적을 기록한 단죄비입니다. 무덤과는 300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무덤 일대가 후손들의 땅이라, 무덤 바로 옆에 설치하지는 못했습니다. 친일파 이두황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치단체가 아무 움직임이 없자, 민족문제연구소가 나선 겁니다.


▶친일파 자손들이 바라는건 '조용히 잊히는 것'

친일파와 반민족 행위자들의 자손이 바라는 건 아마 조용히 잊히는 것일 겁니다.
어두운 과거가 더는 입에 오르는 걸 싫어합니다.
친일 행적이 모두 잊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춘천시의 안내판 교체 작업은 이들의 바람대로 이뤄졌습니다.
춘천시 관계자와 대화를 마칠 때쯤 들었던 질문이 떠오릅니다.

"안내판을 교체했으니, 이게 마지막 기사인가요?"

아닙니다. 다시 시작입니다.
친일파를 친일파로 부를 때까지 말입니다.

# 관련기사
'친일파' 민영휘 무덤 관리 가옥이 지방문화재로….(2017년 06월)
https://www.ytn.co.kr/_ln/0115_201706072238252181
"친일 행적 함께 기록합시다." (2017년 06월)
https://www.ytn.co.kr/_ln/0115_201706070500537104
문화재로 둔갑한 친일파의 집…세금 들여 보존 (2019년 01월)
https://www.ytn.co.kr/_ln/0103_201901050535242604
'흥청망청' 친일파 무덤 관리…가옥 보수에 혈세 4억여 원(2021년 03월)
https://www.ytn.co.kr/_ln/0134_202103070800015509
문화재로 지정된 친일파 무덤 관리 가옥…친일 관련 기록은 언제쯤? (2021년 08월)
https://www.ytn.co.kr/_ln/0115_202108310636527131
친일파라 부르지도 못하고...슬그머니 교체한 안내판(2022년 3월)
https://www.ytn.co.kr/_ln/0115_202203312319273017








##취재기자:홍성욱
##촬영기자:박진우
##도움:장동균 김영진


YTN 홍성욱 (hsw0504@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