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올해는 멧돼지 10,000마리"...ASF 방역은 사냥이 답?

[와이파일] "올해는 멧돼지 10,000마리"...ASF 방역은 사냥이 답?

2021.10.17. 오전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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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올해는 멧돼지 10,000마리"...ASF 방역은 사냥이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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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이 다가오면서 강원도에서 또다시 대대적인 멧돼지 포획작전이 진행 중입니다.
기간은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전국의 엽사를 불러모아 멧돼지 만 마리를 잡겠다는 계획입니다.
백신도 없고 치사율 100%에 가까운, 돼지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인 ASF(African Swine Fever),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박멸하기 위해서입니다.


[와이파일] "올해는 멧돼지 10,000마리"...ASF 방역은 사냥이 답?



▶백신 없는 아프리카돼지열병, 강원지역 기승…돼지 9천 마리 매몰처분

강원도 홍천부터 화천과 인제, 영월까지 곳곳의 돼지 농장으로 달려가길 반복했습니다.
돼지 농장에 ASF 바이러스가 퍼졌기 때문입니다. 농장 주변으로 철제 울타리를 겹겹이 치고, 소독약을 연신 뿌려대도 막지 못했습니다. ASF 감염이 확인된 농장에 있는 돼지는 모두 매몰 처분됐습니다. 혹시나 다른 농장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건강한 돼지까지 모두 땅에 묻었습니다. 그렇게 올해 강원도에서만 9천 마리가 넘는 돼지가 영문도 모른 채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강원도, 대대적 멧돼지 소탕 작전… "10,000마리 잡겠다."

방역 당국은 ASF의 전국적인 확산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감염 매개가 되는 멧돼지를 잡아 없애기로 했습니다. 멧돼지를 없애는 것만큼 확실한 방역은 현재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역시 반박하지 않습니다. 단, 한번에 모든 멧돼지를 잡아 없앨 수 있다면요.

강원도는 지난겨울 벌였던 대대적인 포획작전으로 멧돼지 수를 크게 줄였다며, 효과를 자신하고 있습니다. 넉 달 만에 모두 3,100여 마리의 멧돼지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강원도에 퍼진 ASF 바이러스가 인접한 경북과 충청지역으로 퍼지는 것을 막는 데 일조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냥으로 멧돼지 박멸은 불가능…이동만 부채질"

강원도에 서식하는 멧돼지가 모두 잡힌 걸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또다시 대대적인 포획 작전을 벌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멧돼지는 번식력이 강합니다. 한 번에 열 마리 이상 출산하고 사냥으로 개체 수가 줄면 일 년에 번식을 두 번까지 해 종족을 늘립니다. 야생 동물의 생존 DNA는 참 대단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냥을 통해 멧돼지 개체 수를 효과적으로 줄였다는 성공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냥으로는 멧돼지를 모두 없앨 수 없고, 멧돼지들의 평균 나이만 낮춰 놓을 뿐입니다.


멧돼지 생활반경은 약 10km 정도로 생각보다는 넓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냥을 하면, 수십km를 이동합니다. 지난겨울 사냥꾼들은 모든 멧돼지를 잡지 못했습니다. 총소리에 놀라 멀리 도망간 멧돼지도 분명 적지 않습니다. 끝까지 따라가 포획한다면야 문제없겠지만, 강원도의 지형적 특성이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산세가 험한 건 기본이고 위로는 민간인 출입이 불가능한 DMZ(비무장지대)가 있고요. 총기사용이 금지된 설악산과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이렇게 네 곳의 국립공원이 존재합니다. 도망간 멧돼지가 숨기에는 더없이 좋은 안전지대입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인위적인 변수가 없다면 아주 천천히 퍼진다는 것은 ASF가 먼저 발생한 유럽에서 확인됐습니다. 사람이나 차량 등 인위적인 전파 요인이 없다면, 평지가 대부분인 유럽에서도 일 년에 수 km 정도 퍼지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원도 사정은 달랐습니다.
지난 2019년 10월 철원에서 발생한 뒤 정확히 1년 2개월 만에 100km 이상 떨어진 강원도 영월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습니다. 원인은 급격하게 이동 거리가 늘어난 멧돼지, 혹은 전국에서 모였다가 다시 돌아간 수렵인, 즉 사람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런데도 강원도는 지난 멧돼지 포획 작전이 성공적이었다고 믿습니다. 감염 매개가 되는 멧돼지를 3천 마리나 넘게 잡았다는 게 이유입니다.


▶포획 작업 시기도 문제…"번식 시작되는 10월 이전에 해야"

통화한 한 대학 수의학과 교수는 강원도의 멧돼지 포획 시기 역시 잘못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대적인 포획 작전을 하려면, 멧돼지의 교미 시기가 시작되는 10월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수컷 멧돼지 한 마리가 번식 철이 되면 암컷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평소 생활 반경을 벗어나게 됩니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개체 수를 줄이려면 멀리 이동하지 않는, 10월 번식 철 이전에 반드시 포획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번식 철을 지나면 사실상 바이러스가 멀리 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번식 철에 맞춰서 포획 작업을 해봤자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ASF도 결국 바이러스…멧돼지 이동과 접촉 막아야"

또 다른 전문가는 돼지가 아닌 바이러스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ASF도 결국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 19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는 이동과 모임을 자제합니다. 설과 추석은 물론 최근 개천절, 한글날 연휴에 정부는 전 국민에게 이동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감염 매개인 사람들의 이동을 줄이고 서로 접촉을 줄이는 게 확산을 막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냥을 통해 모든 멧돼지를 잡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고, 개체 수를 줄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신 대대적인 포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확산 우려는 큽니다. 그러니까 ASF 방역 역시 멧돼지 이동을 최소화시키는 게 답이라는 겁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몸살을 앓았던 유럽의 체코는 감염이 확인된 지역은 철저하게 격리하고, 사체만 안전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최단기간 방역에 성공했습니다. 굳이 사냥을 통해 멧돼지의 이동을 부채질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대적인 멧돼지 사냥, 왜?

그렇다면 왜 수년째 사냥을 강행하는 걸까요?
정부와 자치단체는 방역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멧돼지를 잡으면 숫자가 나옵니다. 지난겨울 3,100여 마리를 잡았고, 이번 겨울에는 10,000마리를 잡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냥꾼들은 멧돼지를 잡으면 마리당 37만 원의 포획포상금을 받습니다. 사냥도 하고, 돈도 벌고. 그러다 보니 포상금을 노린 허위신고도 잇따르지만 어쨌든 수렵인들로서는 일거양득입니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멧돼지를 대대적으로 잡는다는 소식에 농민 역시 반갑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3천 마리를 넘게 멧돼지를 죽여도 올해 강원 전역에서는 ASF가 발생했습니다. 여전히 확산, 진행 중입니다. 천억 원을 들여 강원과 경기지역에 수천km에 달하는 철제울타리를 설치해도 바이러스는 보란 듯 퍼져나갔습니다.

철망이 못마땅하고 불편한 지역 주민은 울타리를 일부러 훼손하고 때로는 천연기념물 산양 등 다른 야생동물들이 울타리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 19사태로 ASF에 대한 관심은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동물 전염병이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대대적인 사냥과 포획에도 ASF 바이러스는 점점 남하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직 강원도 내에 묶어놓고 있지만 전국 돼지 농장이 여전히 위협받는 이유입니다.

취재기자:홍성욱[hsw0504@ytn.co.kr]
촬영기자:홍도영·박진우
그래픽:기내경
도움:이병권·장동균

YTN 홍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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