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금기’의 대면 : 달걀의 일, 남북의 일

[와이파일] ‘금기’의 대면 : 달걀의 일, 남북의 일

2021.01.15. 오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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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쪽샘유원지 마을의 ‘금기’
[와이파일] ‘금기’의 대면 : 달걀의 일, 남북의 일
사진 ⓒ 유경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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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은 한 여자가 맨손으로 고분을 파헤치는 데서 시작한다. 무덤에 얽힌 신라시대 ’새요괴 전설’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달걀의 일> (안정민 작/연출)은 은밀히 숨겨진 금기를 대면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패기 넘치는 30대 여성 고고학자 민채(정새별 배우)는 어린 시절 머리맡에서 들어온 전설의 진위를 캐기 위해 고향 경주를 찾는다. 동네 주민을 한 명 한 명 만나 무덤 발굴 동의서를 받던 중 오랜 망각의 늪에서 쓰라린 유년의 기억을 힘겹게 건져낸다. 할머니도, 동창도 그때 그 사건을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마을의 금기다.


8차 당 대회 김정은 사업 총화 보고에서 빠진 ‘하노이’

[와이파일] ‘금기’의 대면 : 달걀의 일, 남북의 일


국내외 관심을 모은 북한 8차 당 대회가 지난 12일 막을 내렸다. 기대했던 대화 재개의 온기보다 북극 한파가 더 감돌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업 총화 보고에서 ‘핵’이라는 단어를 36번, ‘핵 무력’은 11번이나 언급했다. 노골적인 핵무기 개발 의지와 함께 미국에 대북 적대 정책 폐기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아슬아슬 선을 넘지 않는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회담 결렬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다. 미국 측에 책임 추궁조차 하지 않았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김정은 위원장 보고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하노이 회담을 얘기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미국 탓도 하지 않는다. 트럼프 때 불만이나 야속함조차 덮고 앞으로 바이든 행정부 하는 것을 일단 두고 보겠다는 식”이라고 지적한다.


남북 양측의 금기어 '하노이 노딜'

[와이파일] ‘금기’의 대면 : 달걀의 일, 남북의 일

‘하노이 회담 결렬’은 사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금기어처럼 여겨진다. 우리 정부가 잔뜩 공을 들였지만 외교력의 한계를 드러낸 현장이다. 트럼프의 변덕, 볼턴 등 강경파의 ‘빅딜’ 고집 탓만 할수록 문재인 정부의 주도적인 ‘중재자 역할’, ‘한반도 운전자론’이 무색해질 뿐이다. 결국 북미 간 견해차, ‘빅딜’과 ‘스몰딜’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고, 한미 공조의 엇박자를 노출시켰다. 그런데도 지난 2년 가까이 냉철한 자기 성찰을 찾아보기 힘들다.

금기의 대면은 새 이야기를 쓰는 출발선

연극 <달걀의 일>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통쾌하다. “민채야, 잊어라, 삼켜라. 다 낫는다. 시간이 약 아닌가.” 망각과 침묵만을 강요하는 문화와 관습 앞에서 ’피해 여성‘ 민채는 분연히 궐기한다. 자신을 가둔 알을 깨고 나와 ‘서러운 진실’과 대면한다. 남성 중심의 낡은 서사에서 벗어나 여성의 새로운 서사를 쓰는 순간이다.

희곡을 쓴 안정민 작가는 낮지만 또렷한 어조로 말한다. “금기를 대면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독립이다. 금기를 대면하는 일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직조하는 힘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다.”

오는 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어차피 새 이야기를 써야 할 원고지가 펼쳐진다. 그 시작은 불편한 금기, 뼈아픈 ‘하노이 노딜’을 남북이 냉철하게 대면하는 일이다.

이교준 기자 (kyojo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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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달걀의 일> 공연 정보

[와이파일] ‘금기’의 대면 : 달걀의 일, 남북의 일

- 작 / 연출 : 안정민
- 배우 : 이정미, 유성진, 정새별, 임준식, 문승배, 노준영, 오채령, 마수연, 양믿음, 오현종, 고성관, 허상진, 이승연, 노혜성
- 제작 : 창작집단 푸른 수염
-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일시 : 2021.1.9(토)~1.17(일)


■ 키워드 :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진 두 번째 정상회담이다. 2018년 6월 12일 1차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지 8개월여 만에 성사됐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제재 해제를 담은 '톱 다운'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일괄 타결과 단계적 조치 등을 둘러싼 양측의 견해차로 결렬됐다. 같은 해 10월 스톡홀름에서 북미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다. 그 뒤 북미, 남북 대화의 시계는 계속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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