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맑은 영혼의 강인함...재즈를 넘어선 보컬리스트 나윤선

[와이파일] 맑은 영혼의 강인함...재즈를 넘어선 보컬리스트 나윤선

2019.12.29.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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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선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 빨간 벨벳 자켓과 흰색 트라우저를 입은 가수 나윤선이 등장했습니다. 첫 곡은 'Here Today' 지금, 여기의 사랑을 노래하며 담담하고 조용히 시작된 무대는 Rumi의 시에 나윤선이 곡을 붙인 'In My Heart'를 만나면서 신비로움으로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스페인 이사크 알베니스의 기타 연주곡을 해석해 가사가 없는 노래(보칼리제)로 재탄생시킨 'Asturias'가 이어지면 음역을 넘나드는 나윤선의 현란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이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나윤선은 2001년 앨범 'Reflect'와 2013년 'Lento'에서도 선보였던 ‘초우’를 불렀습니다. 반짝이는 성탄절 이면에 드리워진 고독과 그리움이 서글퍼지면, ‘The Little Drummer Boy’와 ‘White Christmas’로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울림이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다시 불러냅니다.

그리고 다시 나윤선의 음악 세계가 펼쳐집니다. 강인하고 강렬한 'Mystic River', 웅장함이 느껴지는 레오나드 코헨의 'Hallelujah'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나윤선은 고백합니다. “이 곡은 외삼촌을 위해 만든 노래인데요. 외삼촌이 많이 아프셨어요. 그리고 지금은 천하무적이 되셨어요. 아무도 아프게 할 수 없는 하늘나라에 계시니까요.” “Invincible”(아무도 꺾을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아픔, 사랑이 느껴지는 곡이었습니다.


"아름답고 강한 영혼의 목소리"

10번째 앨범 'Immersion'과 함께 보여준 이번 콘서트는 나윤선의 음악세계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앨범 제목처럼 자신의 노래에 가장 ‘몰두’한 결과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깊고 진지합니다. 나윤선 특유의 투명하고 맑은 목소리와, 특유의 발성법과 긴 호흡으로 만들어낸 환상적인 기교, 진심을 담은 깊은 울림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제게는 '맑은 영혼'이 만들어내는 강인함은 이런 것이구나, 왜 나윤선이 세계적인 아티스트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10년이 지나 다시 한 단계 높은 문화예술공로훈장인 오피시에장을 다시 나윤선에게 수여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한 그루 나무처럼"

2007년 팝 프로젝트 앨범 'Memory Lane'이후 음악이 난해해진다고 느껴지기도 했던 의심과 의문의 실타래가 풀렸습니다. 그녀가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유럽무대를 평정한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의 음악은 이제 장르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나윤선의 음악'세계가 시작된 겁니다. 무대위에서 나윤선은 단단하게 서 있는 큰 플라타너스 나무처럼 보였습니다. 재즈라는 깊은 뿌리위에 서서 곧게 뻗은 가지들과 푸른 잎들을 통해 제각기 다른 모양의 음악을 탄생시키고 있었습니다. 투명하게 맑은 목소리는 어느새 바람처럼, 폭풍우처럼, 파도처럼 몰아치다 햇살처럼 밝게 무대를 환히 비췄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자신 있고 당당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열 번째 앨범 에 수록된 13곡 가운데 6곡의 자작곡 역시 팝과 일렉트로닉, 월드 뮤직을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로 만들었습니다. 각국의 민속음악부터 우리의 가요까지. 이미 나윤선의 음악은 재즈를 넘어서 있었습니다.


"뮤지션, 관객과의 교감이 중요해요"

무대 위 연주 방식도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습니다. 나윤선은 온 몸으로 노래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슴으로, 머리로, 손 끝에서 목소리를 이끌어내는 듯 했습니다. . 'In My Heart'에서는 나윤선의 목소리가 반주가 됐고, ‘The Little Drummer Boy’를 노래할 때는 가슴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는데요. 소년의 북소리가 슬프게 울려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윤선과 동행한 뮤지션들과의 교감도 돋보였습니다. 월드투어 멤버인 토멕 미에르나우스키와 레미 비뇰로는 각각 미국과 프랑스 출신의 뮤지션인데요. 토멕은 기타와 피아노, 신디사이저를, 레미는 드럼과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베이스를 연주하는데 어떤 악기든 수준급의 실력이었습니다. 음악과 악기의 경계를 넘어선 세 사람이 보여주는 합과 에너지에 관객들의 감탄과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늘 떨리고 부족하죠"

공연이 끝나고 많은 관객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포토존 앞에 길게 줄을 섭니다. 오래지 않아 나윤선이 등장해 관객들을 만나 싸인을 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나윤선의 맑은 성품에 대해서는 그녀를 만난 사람들이나 오랜 팬들은 대부분 동의할 만한 사실일 겁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가슴 깊이 새겨진 사람이라고 할까요? 누구에게나 정성을 다하고,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예의를 갖춥니다. 깊게 패인 보조개만큼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25년 가까이 노래를 해온,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여자 가수’라는 미디어의 찬사를 받으면서도 자신은 ‘아직 많이 부족하고 잘하는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겸손도 이 정도 되면 가식이라고 할 만도 한데, 나윤선에게선 가식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떨려서 내일 비가 와서 공연이 취소되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는 나윤선은 정작 무대에 서면 자신감 넘치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줍니다.

다시 길 위에 서다

1994년 ‘지하철 1호선’ 데뷔 이후 3년만 재즈를 배워야겠다고 찾은 프랑스에서 25년 이상 머무르며 뿌리를 내린 나윤선은 재즈의 경계를 넘어 지금까지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음악인만큼, 그의 음악이 모든 사람에게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소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무대를 접해보면 ‘아, 이런 음악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나윤선은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한 해 100차례 이상 무대에 오릅니다. 1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다 12월이면 고국을 찾아 가족과 한국 관객들을 만납니다. 1년의 2/3이상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노래를 하며 보내는 것이 이제는 ‘운명’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연을 하면 할수록 더 호기심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다시 월드투어가 시작됩니다. 다시 ‘길' 위에서 펼쳐질 나윤선의 노래가 내년 이맘때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홍상희[sa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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