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고래, 그리고 검사...해명에 가려진 진실은?

[와이파일] 고래, 그리고 검사...해명에 가려진 진실은?

2019.12.25.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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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고래, 그리고 검사...해명에 가려진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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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압수한 30억어치 고래고기, 검찰이 업자에 돌려주며 갈등 폭발'. 이달 초 한 언론 보도였습니다. 검찰이 바로 해명 자료를 냈습니다. '1) 30억 아니라 4억이다 2) 고래연구센터의 고래 DNA 확보율이 63%밖에 안 돼, 불법 단정 못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YTN 취재진이 검찰 해명 자료를 검증했습니다. 취재 결과 '1) 30억은 시가고 4억은 도매가니까 가격 논쟁 의미 없다 2) 고래연구센터 데이터 확보율 낮은 것 맞지만, 지금까지 계속 법적 증거+수사 기법으로 쓰여 왔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검찰이 또 해명 자료를 냈습니다. YTN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는 겁니다. 취재진이 또 해명 자료를 검증했습니다.

▲ '불법포획 단정 못 한다'던 DNA 검사, '보강증거로는 쓴다'?

[와이파일] 고래, 그리고 검사...해명에 가려진 진실은?

YTN 기사 원문입니다.

"해양수산부 산하 고래연구센터는 합법적으로 유통 가능한 고래고기의 DNA 정보를 수집합니다.
검찰은 센터가 확보한 고래고기 DNA가 전체의 63%에 불과해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DNA 정보는 피의자의 진술, 사건 정황 등과 함께, 고래고기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핵심 증거입니다.
최근 10년 동안 고래 불법 포획 주요 판결을 분석했더니, 여러 재판에서 DNA 분석 자료는 증거로 제출됐습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징역이나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2016년 4월 울산 고래고기 사건 이후 고래연구센터에 의뢰된 DNA 검사를 전수조사했습니다.
해마다 적게는 6건에서 많게는 20건 넘게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이 중엔 고래연구센터 DNA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한 울산지검의 지휘를 받는 울산해경의 의뢰도 매년 포함돼 있습니다.
믿을 수 없다던 DNA 검사를 수사기법으로 계속 썼다면, 자가당착입니다."

검찰 해명 자료 원문입니다.

"검찰은 일관되게 DNA DB 운영의 현실적 한계로 인해 형사법의 대원칙상 피의자가 불법 포획사실을 다투는 상황에서 DNA검사결과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할 수 없다고 하는 증거법상 한계를 설명드렸던 것으로, 유통업자가 고래고기 불법유통을 자백하는 경우에는 DNA 검사결과가 이에 대한 보강증거로는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전에 배포한 1차 해명 자료는 이렇습니다.

"고래연구센터의 DNA DB 확보율은 적법하게 유통된 고래고기의 63.2%에 불과하여, DNA DB와 대조결과가 일치하는 경우 적법하게 유통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수는 있으나 반대로 DNA DB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여 불법포획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DNA 검사를 두고, '불법포획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에서 '보강증거로는 사용될 수 있다'로 결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보강 증거'로 쓸 수 있는 DNA 검사를 검찰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배척했습니다. 울산 사건의 DNA 검사 결과는 2016년 12월에 나왔는데, 검찰은 이미 5월에 고래고기를 돌려준 거죠. 압수 한 달 만입니다. DNA 검사 결과, 압수한 고래고기는 불법 포획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샘플 40여 개 중 30여 개는 합법 유통 DNA와 불일치, 10여 개는 판정 불능이었습니다.


▲ 경찰 수사 부실했다던 검찰…수사 지휘는 누가 했나

검찰 해명 자료 원문입니다.

"유통업자가 불법유통을 부인하는 이 사건에서는 당시 채취된 시료의 양도 극히 일부인데다가 시료가 채취된 압수물이 무엇인지 특정되지도 않는 등 DNA 검사결과만을 가지고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어 환부한 것으로서, 검찰이 DNA 검사결과를 믿을 수 없어 돌려주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릅니다."

'채취된 시료량이 극히 일부', '채취된 압수물이 특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사실상 경찰 수사의 부실함을 꼬집습니다. DNA 시료 채취가 제대로 안 됐다는 거죠. 그런데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건 검찰입니다. 애초에 검찰이 시료량을 늘리고, 압수물을 특정하도록 경찰을 지휘했으면 될 일입니다. 검찰이 갖고 있는 권한을 충분히 활용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거죠. 아직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사 지휘권을 포기한 걸까요? 제 발등 찍는 해명입니다.

압수한 고래고기를 돌려준 사례도 전례를 찾기 힘듭니다. 울산해경의 경우 지난 30년 동안 1건도 없었습니다.



▲ '불법 포획 혐의'는 사실 아니다?

YTN 기사 원문입니다.

"불법 포획 혐의가 짙은 고래고기를 업자에게 돌려준 검찰."

검찰 해명 자료 원문입니다.

" (위) 주장과 관련하여, 이 사건은 군산에서 울산까지 운반해온 불법포획 고래고기 94자루를 작업실에서 압수하면서 불법포획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그 옆 냉동창고 2곳의 고래고기 853상자까지 함께 압수한 것이고, 경찰 및 검찰 수사결과, 853상자 중 불법 포획사실이 확인된 150상자는 기소하고 불법성이 입증되지 않은 고래고기에 대하여만 환부 처분한 것이라는 점에서 위 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016년 4월 울산 경찰은 밍크고래를 불법으로 포획하고 유통한 업자들을 검거합니다. 작업장을 덮쳤더니 마침 업자들이 불법 포획한 밍크고래를 해체하는 중이었습니다. 냉동 창고에서는 고래고기 27톤이 발견됩니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고래를 유통하려면 유통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 고기들은 증명서가 없었습니다. 경찰은 모두 불법 포획 증거물로 압수합니다. 한 달 뒤 검찰은 6톤은 불법이 맞는데 21톤은 불법 증거가 없다며 돌려줍니다. 법원의 유죄 판단은 6톤에 대해서만 이뤄졌습니다.

'불법 포획 혐의가 짙은', 돌려준 고래고기 21톤은 기소조차 안 됐습니다. 검찰이 애초에 뺐기 때문이죠. 그래서 법원 판단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불법의 가능성'까지 없었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고래 유통 증명서도 없고, 불법 고래 해체 현장에서 발견된 고래고기인데, 충분히 불법의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던 거죠. 경찰 역시 이런 정황을 근거로 증거물로 압수했습니다.



▲ 30억이냐 4억이냐…무의미한 가격 논쟁

경찰은 돌려준 고래고기 21톤이 시가 30억 원가량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인용한 보도가 이어지자, 검찰은 해명 자료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검찰이 되돌려준 고래고기 21톤의 가액에 대하여 '시가로 치면 30억원 어치로 추산됐다'고 보도되었으나, 당시 유통업자에 대한 1심 판결 당시 추징금 산정기준(2016. 6. 8. 울산수협협동조합에서 위탁판매된 고래고기 가격 1kg 당 22,706원 기준)에 따르면 약 4억 7,600만원입니다."

검찰 해명에는 '도매가'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 검찰이 산정한 기준은 도매가, 경찰은 시가입니다. 시가는 고래고기 식당에서 소비자들에게 파는 가격입니다. 당연히 도매가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검찰은 해명자료에서 '시가로 치면 30억 원 어치로 추산됐다고 보도되었으나, ~~~ 4억이다' 이런 문장 구조를 썼습니다. '도매가'를 쏙 빼버리고 '(보도되었으)나'라는 어미를 쓰니까 마치 '시가가 30억 원이었으나 4억이다'라는 취지로 오해할 수 있는 거죠. 의도가 있었다면 악의적인 문장입니다.

취재진이 2016년 한 해 동안 울산수협에서 거래된 고래고기 중도매가격을 전수조사했습니다. 최저가는 검찰 말대로 1kg에 2만 원입니다. 최고가는 7만 원입니다. 최고가를 적용해, 유통 마진을 더한 시가로 계산하면 21톤에 30억 원이라는 가격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가격 논란을 일으킨 검찰은 2차 해명 자료에서 '참고적인 설명'일 뿐이었다고 발을 뺍니다.

"고래고기 가격 4억 7천여만원은 당시 해당 판결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된 추징금 산정기준상의 가액을 참고적으로 설명한 것일 뿐이고..."



▲ 전관예우 의혹은 단서가 없다?

YTN 기사 원문입니다.

"무엇보다 돌려준 고래고기 가격을 낮춰잡는다고 해서, 전관 변호사에 대한 특혜 의혹과 검찰의 자의적 법 적용이라는 사건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검찰 해명 자료 원문입니다.

"이 사건은 기소를 책임지고 있는 검찰의 입장에서 불법포획이 입증된 부분은 기소하고 입증되지 않은 부분은 법에 따라 환부한 사안으로, 검찰은 자의적으로 법적용을 한 바 없고, 전관 변호사에 대한 특혜의혹이 있었는지 의심할 만한 아무런 단서도 제시된 바 없다는 점을 알려 드립니다."

검찰 해명이 맞습니다. 전관 변호사의 특혜 의혹은 현재까지 아무 단서가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정말 실체 없는 의혹이었거나, 실체를 밝힐 수 없도록 누군가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일 겁니다. 경찰은 전관예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해당 변호사의 사무실과 통신, 금융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일부만 청구하고 나머지는 반려했습니다. '단서'를 찾을 수단을 좁힌 겁니다. 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검찰입니다. 검찰은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자의적인' 건 법 적용뿐이 아닙니다. 검찰이 내세운 통계 수치도 그렇습니다. 검찰은 고래연구센터의 DNA 확보율이 63%에 불과해, 센터의 DNA DB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불법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통상 합법적으로 고래를 혼획하면 그 고래의 DNA 정보를 고래연구센터로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안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63%라는 건, 100마리 합법 유통 고래가 있으면 고래연구센터가 갖고 있는 DNA 마릿수가 63마리라는 얘기입니다)

울산 고래고기 사건에서 문제가 된 건 밍크고래입니다. 밍크고래에 대한 DNA 확보율은 75%입니다. 전체 고래 수치 63%보다 10%p 넘게 신뢰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사건 대상인 밍크고래 수치가 아닌, 전체 고래 수치를 내세웠습니다. 굳이 딱 떨어지는 밍크고래 수치가 있는데도, 신뢰도가 더 낮은 전체고래 수치로 해명한 겁니다.
결론적으로 검찰 해명은 '사실' 자체가 틀린 건 별로 없습니다. '검찰 기준'에 맞는 사실을 내세웠을 뿐입니다.

[와이파일] 고래, 그리고 검사...해명에 가려진 진실은?

유명한 그림이죠. 작은 카메라로 보면 칼로 위협하는 모습입니다. 실제로는 칼이 아닌 신발을 신고 도망치는 모습입니다. 파편화된 '사실'의 일부만 보면 실체적 진실을 놓칠 수 있습니다. 검찰의 해명은 칼일까요, 신발일까요? (저의 기사도 칼일까요, 신발일까요?)



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인턴기자 김미화 3gracepe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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