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어요"

[와이파일]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어요"

2019.08.18.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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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아이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이 마구 맞았습니다. 맞고, 시퍼런 멍이 없어질 때쯤 또 맞고, 다 나을 때쯤 또 맞고.. 70년이 지나도 굽어버린 어깨와 손가락은 펴지지 않습니다. 때리기만 했을까요. "빠가야로 조센징!". 고운 말만 들을 아이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욕입니다. 가해자는 일제강점기 일본 사람들, 피해자는 강제동원된 우리 선조들입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아동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YTN이 찾아 나선 이유입니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이름과 본적지뿐이었습니다. 취재진은 피해자의 본적지에 있는 면사무소와 주민센터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어르신이 지금 살아 계신지, 살고 계신 곳은 어딘지 물었습니다. "개인정보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답이 도돌이표처럼 돌아왔습니다. '생존 여부만이라도 알려주세요', '이장님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통사정하고 본적지 주소로 직접 찾아가기를 수차례, YTN은 지금까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피해자 여섯 분을 만나 처음으로 방송에 공개했습니다. 왜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사셨냐는 취재진의 철없는 질문에, 한 어르신은 "지금까지 아무도 찾아주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90 전후의 나이,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르신들의 기억을 낱낱이 기록해, 일본이 우리 조선의 아이들에게 저질렀던 파렴치한 역사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YTN은 피해자분들과의 인터뷰 풀영상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 이옥순 할머니
1931년생으로 10살에 강제동원됐습니다. 영등포 가네가후치 공장과 일본 목화 공장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했습니다. 음식도 제대로 배급받지 못해 일본인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로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기사 맨 위에 있는 영상입니다)


▲ 황부영 할머니
1933년생으로 8살쯤 강제동원됐습니다. 오빠의 징용을 막기 위해 중국 만주로 가족 모두 떠났습니다. 추운 날씨에 마실 물조차 없어 소 똥물을 먹기도 했습니다.

▲ 김성님 할머니
황부영 할머니의 동서로, 황 할머니보다 1살 많습니다. 황부영 할머니와 같이 만주로 갔습니다.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끝내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황부영 할머니 영상 후반에 있습니다)


▲ 최점덕 할머니
1934년생으로 11살에 강제동원됐습니다. 광주광역시 가네가후치 공장으로 끌려가 잡일을 했습니다. 당시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공장에서 부르던 노래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 한순임 할머니
1935년생으로 10살에 강제동원됐습니다. 친구와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광주광역시 세이보(?) 공장에 끌려갔습니다. 일본인들이 막대기로 상습적으로 폭행했습니다.


▲ 선오순 할머니
1933년생으로 12살에 강제동원됐습니다. 아버지의 징용을 막기 위해 광주광역시 방적 공장에 끌려갔습니다. 강제동원 탓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취재기자: 고한석, 이정미, 홍성욱, 한동오
촬영기자: 김태형, 김경록, 시철우
영상편집: 이자은
그래픽: 강민수 우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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