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우승하면 이강인도 군 면제?…'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역사

[와이파일]우승하면 이강인도 군 면제?…'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역사

2019.06.15. 오전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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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우승하면 이강인도 군 면제?…'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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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일 새벽입니다. 무려 U-20 월드컵 '결승전'입니다. 한국 남자축구가 FIFA 대회 결승에 오른 건 처음이고요. 우승하게 되면 그것도 처음입니다. 경기 자체도, 결과도 한국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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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이 대회 우승하면 이강인 선수를 비롯한 우리 대표팀 선수들, 군대 안 갈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갈 수도, 안 갈 수도 있습니다. 가면 가고 안 가면 안 가는 거지, 그게 무슨 아리송한 말이야!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병역법 시행령부터 보겠습니다.

제68조의11 (예술ㆍ체육요원의 추천 등) ①
4. 올림픽대회에서 3위 이상으로 입상한 사람 (단체경기종목의 경우에는 실제로 출전한 선수만 해당한다)
5. 아시아경기대회에서 1위로 입상한 사람 (단체경기종목의 경우에는 실제로 출전한 선수만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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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우승하면 이강인도 군 면제?…'합법적 병역 브로커(?)'의 역사

▲ U-20 대표팀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자는 청와대 국민 청원. 어제 새벽 기준 7천 명 넘는 참여 인원을 기록했다. 준결승 진출 이튿날 급하게 청원을 올렸는지 제목에 오타가 있다. 병역혜택를(X) -> 병역혜택을(O)

월드컵은 올림픽도, 아시아경기대회도 아닙니다. 군대와 아무 관련 없는 거죠. 그럼 U-20 월드컵 우승하든 말든 당연히 군대 가는 거지, 왜 '갈 수도, 안 갈 수도 있다' 말한 걸까요. 답은 저 법이 '병역법'이 아니라 '병역법 시행령'이라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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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령(시행령) 입법 과정

'법률'은 국회를 통과해야 합니다. '시행령'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에서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도, 없앨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책 주무부서에서 시행령을 올리고,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법제처 심사받고, 국무회의 심의 거쳐 대통령 재가까지 받아야 한다는 복잡한 절차가 있지만 모두 행정부의 판단입니다. 국회와 무관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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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역법 시행령은 국회 없이도 개정 가능하다

그래서 병역법 시행령은 정부가 바꿀 수 있습니다. U-20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 주고 싶으면 시행령 5번 밑에다가 살짝 하나만 더 끼워넣으면 됩니다. "6. 월드컵에서 1위로 입상한 사람" 이렇게 말입니다. 이 한 문장만 있으면 이강인 선수도, 다른 대표팀 선수들도 군대 안 갑니다. 월드컵 우승으로 인한 '국위 선양'이 '국방 의무'를 대체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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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

군대가 장난도 아니고, 저렇게 정부 마음대로 하겠어?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그런데 실제로 저런 적 있습니다. 10여 년 전 기억을 되짚어볼까요.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입니다. 우리 대표팀이 16강에 올랐을 때, 정부가 시행령을 새로 만들어 병역 혜택을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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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 vs 포르투갈

2002년 6월, 16강 진출을 결정하는 우리나라와 포르투갈전이었죠. 0 대 0으로 힘겹게 흘러가던 후반 70분, 크로스를 받은 박지성 선수가 골대 앞에서 가슴 트래핑을 툭 하고, 골키퍼 다리 사이로 뻥 찼습니다. 1:0.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이긴, 믿을 수 없는 상상이 현실이 됐습니다. 경기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선수들 라커룸에 찾아갔는데요. 대통령 면전에서 홍명보 주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 선수들 병역 문제가 걸려 있는데 대통령께서 특별히 신경 좀 써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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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맑게 웃으며 대통령께 병역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홍명보 주장. 참고로 홍명보 선수는 이전에 이미 상무로 군대를 다녀왔다. 오로지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대통령께 군 면제를 청탁(?)하는 모습

그날 이후 홍명보 선수에게는 '합법적 병역브로커(?) 1호'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어? 저렇게 말해도 되나?' 싶기도 하죠.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월드컵에서 16강의 위업을 달성한 자랑스러운 태극 전사였으니까요. 김대중 대통령이 "국방 당국하고 협의해서 여러분께 좋은 소식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했을 때, 라커룸은 환호로 가득 찼습니다. 함박웃음을 짓는 선수들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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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의 약속 직후 함박웃음 짓는 선수들. 표정만 봐도 진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황도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곤 합니다. 그후 다른 일부 선수들의 병역 혜택에 대해 곱지 못한 시선도 생겼는데요. '월드컵 16강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까지 대체할 일인가?'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결국 2008년 1월 1일, '월드컵 16강 이상' 병역 혜택이 폐지됐습니다. 2002년 추가된 시행령 조항이 5년 반 만에 삭제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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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월드컵 16강 병역 혜택 조항이 사라져 부칙만 남은 병역법 시행령

결국 국민 여론에 달렸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병역 혜택 줘야 한다'라고 하면 줄 수 있는 거고요. '주면 안 된다'라고 하면 안 주는 겁니다. 지난 12일 결승 진출이 확정됐을 때 기사 댓글을 봤는데, 아직은 좀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한국 스포츠 역사에 기록될 역사적 위업을 남겼으니 병역 혜택 줘야 한다' vs '국위 선양으로 군대 빼주는 시대는 지났다' 이렇게 말입니다. 참고로 지금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병역 혜택마저도 폐지 여부가 검토되고 있습니다. 하도 이걸 악용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아서 병무청이 TF를 만들어 다음 달 결과를 발표하거든요. 내일 새벽 우리 선수들이 우승한다면 TF 결과도 달라지는 나비효과가 일어날까요?


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촬영기자: 김태형
그래픽: 신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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