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윤중천 모르진 않아" ...전직 검사의 수사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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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오후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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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윤중천 모르진 않아" ...전직 검사의 수사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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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윤중천 모르진 않아" ...전직 검사의 수사 대처법

■"윤중천 모르는 것은 아니다"

김학의 전 차관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고 나서, 김 전 차관의 변호사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답변 가운데 윤중천 씨와 관련된 부분을 뽑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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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차관이 윤중천 씨를 모른다고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진술을 바꾼 것은 아니다, 전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을 뿐이고, 지금은 윤중천 씨와 관련해 나오는 내용을 들어보니 누군지 알 것도 같고, 만났을 수는 있겠다" 정도의 설명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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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차관의 변호인, 김정세 변호사 인터뷰

■'일도, 이부, 삼빽'…검찰 수사 대응의 정석?

검찰 수사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일도, 이부, 삼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단은 도망가고, 붙잡히면 부인하라는 겁니다. 부인해도 안 되면 세 번째는 빽을 쓰라는 게 삼빽입니다. 김학의 전 차관의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한 진술은 전직 검사가 검찰 수사에 대처하는 정석을 보여주는 느낌입니다.

2013년 처음 별장 동영상이 등장해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벌일 당시, 김학의 전 차관은 윤중천 씨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김 전 차관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이번 검찰 수사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한 발 물러섰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들어가서는 윤중천 씨를 모른다고 부인하지는 않으면서 더 물러섰습니다. 김학의 전 차관 진술의 진화, 정리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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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면 의외로 간단합니다. 6년 전 "모른다"에서 지금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명확하게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질까봐 진술 변화는 아니라며 말장난을 하고 있지만 단순화해 보면 완전 발뺌하다 발뺌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 최소한으로 인정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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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YTN의 윤중천 씨 단독 인터뷰

■윤중천 진술에 따라 바뀌는 김학의 진술

김학의 전 차관의 진술 변화, 당연히 본인에게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해서겠죠. 윤중천 씨의 진술을 들여다볼까요? 과거 YTN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윤중천 씨가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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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윤중천 씨는 이미 YTN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학의 전 차관을 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두 달도 안 돼 경찰 조사에 임할 무렵이 되자, 발뺌을 합니다. 그러자 이후에 출석한 김 전 차관도 윤중천 씨와 마찬가지로 윤 씨를 모른다고 합니다.

혹시 당시 두 사람이 서로 말을 맞췄던 건 아닐까요? 이 무렵 김학의, 윤중천 두 사람과 모두 통화를 했던 이철규 당시 경찰 치안정감(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YTN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학의 전 차관과 윤중천 두 사람이 별장 동영상 때문에 서로 통화를 한 것 같았고, 사실상 동영상에 대해 수소문하려했던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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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당시 김학의, 윤중천과 통화했던 이철규 현 국회의원

이제 와 윤중천 씨는 2013년과 달리 다시 김학의 전 차관과의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학의형'이라고 부르며 지낼 정도의 관계였다는 사실을 너무 많이 말하고 다녔고, 검찰이 이걸 눈감아주려는 상황이 아닌 걸 파악한 이상 부인할 수가 없게 된 것이겠죠.

아예 모른다고 발뺌하던 김학의 전 차관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을 겁니다. 과거에는 말을 맞췄든 안 맞췄든 윤중천 씨가 모른다고 해주니, 굳이 인정할 이유가 없었고, 지금은 윤 씨도 인정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증거까지 들이미니, 부인할 수가 없게 된 겁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안다고 시인하는 순간, 규명해야 할 것들은 훨씬 많아집니다. 얼마나 만났는지, 통화나 주고받은 돈은 있었는지, 청탁이 있었는지 등입니다. 안다고만 하고 싶은데 더 말하다 보면 이른바 '별건'에서 추가 처벌까지 받을까 걱정되니 아예 발뺌하다가, 이제 와서 최소한을 인정한 두 사람. 더 많은 것이 드러나면 수사 대처법 정석의 3단계 '빽'도 쓰게 될까요? 궁금합니다.


■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감정에 호소

"6년을 창살 없는 감옥에 살았다." 김학의 전 차관의 이 말에 잠시 측은지심이 발동하기도 했습니다. 내 가족이었다면, 가까운 사람이었다면 '권력의 핵심에 있던 사람인데, 치부가 드러나고 차관에서도 물러나야 했던 당시 상황이 안타깝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냉철하게 생각하면 감정에 호소하는 것 역시 법원에 대처하는 정석을 따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피해 봤을 사람들, 힘 없고 빽 없고 아는 게 없으면 법의 보호조차 받을 수 없다고 낙담했던 사람들의 감정이 김 전 차관의 감정보다 더 우선해야 하지 않나 마음을 다시 추스리게 되는 겁니다.

무게와 상관 없이 누구나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건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권력의 핵심에 있던 김학의 전 차관, 자신의 아픔이 그만큼 크다면 지금이라도 사건 관계인들에게는 더 큰 고난이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입장 바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YTN 취재진도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의 혐의를 입증할 거라고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공소시효가 거의 지난 데다, 윤중천 씨와 여성들의 진술도 계속 바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검찰이 이번 재수사를 통해 김학의 전 차관을 구속하고 혐의를 입증해내고 있는 과정을 의지의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설령 재수사의 시작이 정치적이었다 해도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지금까지의 중간 결과는 바람직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수사가 과거에는 왜 이런 적극적인 수사를 못 했는지, 검찰 안의 구조적 문제까지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정미[smiling3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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