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윤봉길 종손이 읽은 '심훈 옥중편지' 원문, 어떤 내용 담겼을까

[와이파일] 윤봉길 종손이 읽은 '심훈 옥중편지' 원문, 어떤 내용 담겼을까

2019.03.01. 오후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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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윤봉길 종손이 읽은 '심훈 옥중편지' 원문, 어떤 내용 담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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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봉길 의사 종손, 배우 윤주빈 (YTN 화면 캡처)

오늘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눈길을 끈 사람은 바로 윤봉길 의사의 종손인 배우 윤주빈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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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와 많이 닮은 모습의 윤주빈 씨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첼리스트 이정란의 연주에 맞춰 '심훈 선생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를 낭독해 감동을 줬습니다.

오늘 기념식에서는 요약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남아있는 심훈 선생의 편지 원본 사진과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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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원본 사진 (사진 제공 : 심훈기념관)

이 편지는 '감옥에서 어머니께 올린 글월'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심훈 선생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선생은 학생 신분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3월 5일에 덕수궁 앞 해명여관에서 체포됐습니다.

심훈 선생은 1932년, 이 편지를 시집에 담아 발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검열로 출판은 불발됐습니다. 붉은색 표시는 그때 남은 검열의 흔적입니다. 원고 곳곳에 삭제(削除)라는 한자가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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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오늘 아침에 고의 적삼 차입해주신 것을 받고서야 제가 이곳에 와있는 것을 집에서도 아신 줄 알았습니다. 잠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던 막내둥이의 생사를 한 달 동안이나 아득히 아실 길 없으셨으니, 그동안에 오죽이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 심훈 선생은 3월부터 11월까지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는 1919년 8월 29일에 작성됐습니다. 즉, 감옥에 갇힌 뒤 다섯 달이나 지나서야 어머니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와 '막내둥이'라는 말에서 아직 10대였던 막내아들 심훈 선생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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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오나 저는 이곳까지 굴러오는 동안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고생을 겪었지만 그래도 몸 성히 배포 유하게 큰 집에 와서 지냅니다. 고랑을 차고 용수를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순사를 앉히고 거들먹거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 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나 들어가는 듯 하였습니다"

→ 머리에 용수(죄수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씌우는 도구)를 쓰고 고랑을 차고 서대문형무소에 끌려온 심훈 선생. 하지만 '난생 처음 자동차에 보호순사를 앉히고' 와서 '큰 집'에서 지낸다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당당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선문은 서대문형무소 옆에 있는 독립문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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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제가 들어 있는 방은 28호실인데 성명 삼자도 떼어버리려 2007호로만 행세합니다. 두 간도 못되는 방 속에 열아홉 명이나 비웃두름 엮이듯 했는데 그 중에는 목사님도 있고 시골서 온 상투장이도 있구요. 우리 할아버지처럼 수염 잘난 천도교 도사도 계십니다. 그 밖에는 그날 함께 날뛰던 저의 동무들인데 제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귀염을 받는답니다."

→ 좁은 감방에 열아홉 명이 갇혔던 비좁은 수감생활을 생선을 엮은 듯한 '비웃두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시골에서 상투장이, 천도교 도사, 그리고 고등학생들까지. 성별, 직업,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참여한 3·1운동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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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날이 몹시도 더워서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쪼이고 주홍빛의 벽돌 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짓무른 살을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그려!"

→ 서대문형무소의 끔찍한 수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고 눈들이 샛별처럼 빛났다는 부분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앞장선 선조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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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은 어머니가 몇천 분이요 몇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 심훈 선생의 편지 중 가장 잘 알려진 구절입니다. '조선에는 어머님 같은 어머니가 몇천 분, 몇만 분이나 계시다'면서 자신은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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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밥을 먹는다고 끼니 때마다 눈물겨워하지도 마십시오. 어머님이 마당에서 절구에 메주를 찧으실 때면 그 곁에서 한 주먹씩 주워먹고 배탈이 나던 그렇게도 삶은 콩을 좋아하던 제가 아닙니까? 한 알만 마루 위에 떨어지면 흘금흘금 쳐다보고 다른 사람이 먹을세라 주워먹기 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 자신은 삶은 콩을 좋아하니 '콩밥을 먹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위로하려는 심훈 선생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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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선생의 편지는 이어 감방에서 순국한 천도교 도사(천도교 경성대교구장 장기렴)의 죽음과 날이 밝도록 숨진 그의 곁을 지킨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편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창대같이 쏟아지는 비에 더위가 씻겨 내리고 높은 담 안에 시원한 바람이 휘돕니다. 병든 누에같이 늘어졌던 감방 속의 여러 사람도 하나 둘 생기가 나서 목침돌림 이야기에 꽃이 핍니다.

어머님! 며칠 동안이나 비밀히 적은 이 글월을 들키지 않고 내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에 비는 어느덧 멈추고 날은 오늘도 저물어갑니다. 구름 걷힌 하늘을 우러러 어머니의 건강을 비올 때, 비 뒤의 신록은 담 밖에 더욱 아름다운 듯 먼 촌의 개구리 소리만 철창에 들리나이다"

- 1919년 8월 29일

( * 충남 당진 심훈기념관 장승률 학예사님이 도움 말씀 주셨습니다.)

이지은 [j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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