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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엽의 세상읽기] '국가부도의 날' 바로 보기
Posted : 2018-12-13 18:20
[송태엽의 세상읽기] '국가부도의 날' 바로 보기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제작진도 영화의 내용이 허구임을 모두에 밝힌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취재했던 기자 입장에서 '국가부도의 날'은 좀 화가 나는 영화다. 당시 언론보도를 직접 인용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구성하면서, 사실을 왜곡하는 일종의 '악마의 편집'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경원은 IMF로 가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막아보려고 했지만 막지 못한 거다. IMF로 가야한다고 주장한 쪽은 오히려 한국은행이었다.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은 위기 상황을 빨리 보고하지 않아 IMF행을 지연시킨 혐의(직무유기)로 나중에 감옥에 갔다. (대법원 무죄) 당시 외화자금과 김 모 사무관이 작성한 일지가 근거가 됐다. 막판에 윤진식 경제비서관이 김영삼 대통령을 독대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고 설득한 걸로 알려져 있다.

외환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정치의 책임을 가장 크게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OECD 가입으로 개방경제가 됐는데도 권력은 과거의 악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금융권을 압박해 한보 같은 부실기업에 돈을 빌려주게 했다. 기업도 혁신을 게을리하며 겁없이 돈을 빌려 과잉투자를 했다. 폴 크루그먼이 지적한 대로 '요소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됐다. 이런 판인데도 구멍가게급의 종금사들이 단기외채를 빌려 돈놀이를 하기도 했다.

결국, 시장의 신뢰를 잃었고, 잔치는 끝났다. 강 건너 불이었던 바트화 위기가 우리 문제가 됐다. 정부가 위기를 좀 더 빨리 알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는 대통령 선거 국면이었다. 여당 후보에게 치명타가 될 경제 파탄 위기를 재경원이나 한국은행은 적기에 국민에게 알리지 않았다. 다시 정치의 문제다.

말레이시아처럼 산유국이었다면 '지불중지'를 선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외환거래가 정지돼 기름을 사 오지 못하면 한국에선 나라가 멈춘다. 그것이 경제주권을 포기하고 IMF의 지원을 받게 된 이유다.

미 재무부 차관 립튼이 한국에 왔었다. 30대 젊은이로 기억하는데 당시 환갑이 훨씬 넘었던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 휴버트 나이스가 영접을 나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것이 미국과 IMF의 관계다. 미국내에서 한국에 대한 지원을 최종 결정한 곳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 (NS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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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2월 립튼 미국 재무부 차관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만나 취임후 IMF 협정 준수 계획 등을 점검했다. (사진=YTN 뉴스)

한국의 외환위기로 미국 투자은행들이 큰 돈을 벌었다는 점에서 '음모론'이 나올 수 있는데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아는 바는 없다. 다만 당시 국내 기업대출 1위였던 제일은행이 뉴브릿지라는 작은 미국 펀드에 넘어가던 날을 기억한다. 류시열 행장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뉴브릿지 아시아 본부장이 계약서에 서명한 직후 뉴브릿지의 젊은 직원들이 낄낄대면서 인증샷을 찍던 장면은 뼈아팠다.

외환위기의 결과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대부분 맞다. 온정적이었지만 포근했던 한국사회는 합리적이지만 비정한 사회로 변했다. 직장과 집과 가족, 셋중에 둘만 지켜도 성공이었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안전망 마저 없어졌다. 물론 있는 집 얘기는 아니다. 직업안전성도 현저히 저하됐고, 상승 사다리가 없어졌다. 비정규직 문제다.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인식은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동아일보의 오보가 격렬한 반탁운동을 부르고 남북분단을 초래했으며, 남쪽의 친일파 득세,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현대사가 가장 비극적인 예다. 저널리즘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요즘 영화가 뉴스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

송태엽 해설위원실장 [taysong@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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