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58] 누군가를 살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해보니 시리즈 58] 누군가를 살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2018.12.01.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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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58] 누군가를 살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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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

유전자 일치 확률 희박... 일치자 나타나도 45%는 기증 의사 철회해

'아프다, 위험하다'는 잘못된 인식 탓에 기증 난항 겪어

헌혈과 같은 방식으로 쉽게 조혈모세포 체취 가능

직장에 '유급 휴가' 부여...사회적으로도 독려하는 분위기 돼야


"병원에서는 몇 번이나 숨이 넘어가는 고비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숨을 못 쉬어 얼굴이 파랗게 질려가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찢어졌습니다.

하지만 기증자님의 조혈모세포가 한 방울 한 방울 이식되고 잘 적응했다는 검사 결과를 듣는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병원 로비에서 간호사 선생님을 붙잡고 엉엉 울었답니다.

지금 우리 정윤(가명)이는 기증해주신 조혈모세포의 힘으로 다시 예쁜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어요. 기증자님! 기증자님은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제 맘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게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위는 2018년 조혈모세포은행협회 소식지에 실린 정윤이 어머니의 글이다. 정윤이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조혈모세포를 기증받아 생명을 구했다.

정윤이 어머니는 아이에게 목숨을 내주고라도 아이를 구하고 싶었으나 검사 결과 아이와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졌을 게 분명하다. 정윤이를 구한 건 얼굴도 모르는 증여자로부터 받은 조혈모세포 기증이었다.

[해보니 시리즈 58] 누군가를 살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조혈모세포 이식은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암 4기에 해당)를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지만, 부모 자식 사이에도 유전자가 일치할 확률은 5%에 불과하다. 형제자매 사이 유전자가 일치할 확률은 25%로 가장 높으나 최근 한 자녀 가정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유전자가 일치하는 증여자가 나타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환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유전자가 일치할 확률은 2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기증 의사를 밝히더라도 유전자를 일치하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기증자의 혈액 표본이 있어야 조혈모세포가 필요한 환자와 일치하는 유전자를 찾아낼 확률이 높아지므로 기증자를 많이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증을 결심한 건 사소한 계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조혈모세포(골수)기증 수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본인을 평범한 20대 여대생이라고 소개한 기증자는 조혈모세포를 '그냥 자연스럽게' 기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특별히 숭고한 뜻을 지닌 위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행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후기를 읽으며 가장 보통의 사람인 나도 할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고, 곧바로 조혈모기증협회에 전화를 걸어 다음 주중 협회를 방문하기로 했다.

[해보니 시리즈 58] 누군가를 살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26일 오전,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협회를 찾았다. 협회 관계자는 "간혹 따로 강연을 나가지 않아도 일주일에 2~3명 정도 직접 찾아오는 기증자가 있다"며 "이번 사례를 회지에 싣겠다"고 반색했다. 협회 관계자와 본인 사이에 서로를 인터뷰하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매번 인터뷰를 진행만 하다가 역으로 당해보니 새로운 기분이었다. 기증 서약을 하고 혈액 표본을 채취한 뒤 기증 계기, 평소 봉사에 대한 관심도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해보니 시리즈 58] 누군가를 살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특히 "실제로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연락이 온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냐"는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나는 "너무나 벅차고 기쁠 것 같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기증 서약을 하고서도 이 단계에서 기증 철회 의사를 보이는 사람이 무려 전체의 45%나 된다.

[해보니 시리즈 58] 누군가를 살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건강 문제나 주변의 만류, 직장 등 기증 철회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물론 각자에게 개인의 사정이 있으니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약 전 기증 절차와 방식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보고 고민한 뒤 결심이 섰을 때 기증 서약을 신청하는 게 더욱 바람직하겠다.

[해보니 시리즈 58] 누군가를 살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법

일단,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 널리 알려진 오해를 줄여야만 한다. 일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혈액암 환자가 고통스럽게 골수 검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증자에게도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잘못된 인식이 심어졌다. 하지만 이와 달리 조혈모세포 기증자는 헌혈을 할 때 정도의 가벼운 통증만 느끼며, 채취 과정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팔 혈관으로 이루어진다.

3일 정도 입원 및 검사 기간이 필요하지만 퇴원 뒤 곧바로 학교나 직장 등 일상생활 복귀도 가능하다. 조혈모세포는 기증 뒤 약 2~4주 내에 정상 수치로 회복되며 기증자가 장기 후유증에 시달린 사례도 없다.

이식을 위해선 최소 1일에서 3일까지 휴가를 받아야 하기에 직장인의 경우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2013년 7월, 장기 등을 기증하는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주도록 하는 법률이 시행됐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지켜지기 힘들다. 기증자에게 눈치를 주기보다는 존경과 이해를 보여줄 수 있는 보다 열린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실제로 나와 유전자가 일치하는 환자가 있을지, 언제쯤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기증을 진행해 누군가에게 새 삶을 주고, 그 과정 역시 기사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

※ 조혈모세포기증 Q&A

Q. 조혈모세포 기증, 아프지 않나요?


A. 근래의 조혈모세포 기증은 성분헌혈과 같은 방식인 말초혈 조혈모세포 채취로 진행됩니다. 헌혈 정도 통증을 참을 수 있으면 기증이 가능합니다.

Q. 조혈모세포 기증 후, 언제부터 학교나 직장에 복귀할 수 있나요?



A. 조혈모세포 기증 후 통증이나 불쾌감 등의 자각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다음 날부터 학교나 직장 등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채취 후 일주일 정도는 채취 부위를 청결히 유지하고 과격한 운동은 삼가주시는 게 좋습니다.

Q. 나의 조혈모세포 기증자, 나의 조혈모세포 수혜자를 만날 수 있나요?


A.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공정한 업무 처리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환자와 기증자 간의 만남이나 실명, 연락처 교환을 금지합니다. 이는 선의의 기증이 아닌 금전 거래 등에 악용될 소지를 줄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수혜자는 감사 편지와 소정의 선물 등을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를 통해 전달할 수 있습니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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