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54] 돌아온 감귤의 계절...제주에서 직접 따봤다

[해보니 시리즈 54] 돌아온 감귤의 계절...제주에서 직접 따봤다

2018.11.03.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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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54] 돌아온 감귤의 계절...제주에서 직접 따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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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제주에서 보냈다.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종종 할머니와 시외버스를 타고 귤밭으로 가 밭일을 돕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도왔다기보단 말동무에 가까웠다.

귤을 따기 시작하는 11월쯤이면 온 가족이 밭에 모여 종일 귤을 따기도 했었다. 오래전 할머니의 귤밭은 팔렸고 나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찬 바람이 코를 스치면 할머니도, 귤밭도 그리워진다.

귤밭을 판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더는 관리할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컸다. 젊은 세대가 도시에서 일하면서 우리 집뿐 아니라 제주 농가 전반적으로 오랫동안 인력난과 고령화에 시달려왔다.

그래서 지난해 감귤 수확기를 맞아 처음 시행된 '국민 수확단'은 신선했다. 숙박비, 항공료, 교통비, 상해 보험료 등을 제주와 농협 측이 일부 지원하고 감귤 수확 일손을 받는 것이다. 올해도 본격적인 대량 수확이 시작되는 오는 10일부터 국민 수확단의 업무가 시작된다. 제주 감귤 농번기인 12월 20일까지 일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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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열흘 정도 앞선 지난달 29일 제주 감귤밭을 찾았다. 하루만이라도 귤 따기 노동을 해보기로 했다. 농가의 일손 부족 문제는 제주만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해서, 요즘 농가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제주 농가에는 팀을 이뤄 여러 밭에 귤을 따러 다니는 모임이 있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그중 한 팀에 하루만 합류하기로 했다.

일 시작 시각은 아침 7시. 서귀포시 동홍동의 한 귤밭으로 가야 했다. 평소 출근 시간보다 두 시간 이른 시간이어서 전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잠들었다. 귤을 따는 시간은 보통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밭이 있었기 때문에 6시쯤 시간에 맞춰 출근했다.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땐 머쓱하게도 이미 6명의 팀원이 마치 '어벤져스'처럼 귤을 따고 있었다.

팀의 최연소자가 65세였지만, 노래를 흥얼대면서, 수다를 떨면서도 손은 쉬지 않는 에너지가 있었다. 밭은 약 5000㎡(1,500평) 정도였다. 국제 규격 축구장 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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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착해서 내가 맡은 일은 이모님(편의상, 현장에서 이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 6명이 바구니에 따놓은 귤을 노란 콘테나(상자를 현장에서는 콘테나로 부름)로 옮기는 것이었다.

원래 귤을 나르는 일을 하는 분은 따로 있는데, 그분이 출근 전이어서 한 시간 정도 내가 그 일을 했다. 일 시작 전 준비해 간 모자와 마스크, 장갑을 착용했다.

단순하지만 활동량이 많아서인지 30분 만에 온몸에 땀이 맺혔다. '어벤져스' 팀의 귤 따는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빠르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운동과 담쌓았던 지난 세월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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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린 것도 잠시, 오전 8시 새참 겸 아침 식사 시간이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나오시기 때문에 이모님들은 밭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신다. 이날의 메뉴는 컵라면. 땀 흘린 뒤 밭에서 먹는 컵라면 맛을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짧은 새참 시간을 마치고 나도 본격적인 귤 따기에 돌입했다. 이모님들은 귤을 딸 때는 꼭지를 납작하게 잘라야 하고, 꼭지 옆을 둘러싼 별 모양이 훼손되지 않아야 상품이 된다고 당부하셨다. 아직 초록빛이 도는 것이나 훼손이 많이 된 귤은 따지 말고 남겨두라고도 하셨다.

반장 이모는 수시로 "퍼렁헌 건 따지 말라~"라고 외치셨다. 푸르스름한 귤은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따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초록빛이 돌지 않고, 상처가 없는 노란 귤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이 밭에서 올해 들어 처음 따는 조생 귤이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탓이다.

반장 이모는 본인 귤 농사를 40년 넘게 지으시면서 5년 전부터는 팀을 꾸려 다른 밭에도 귤을 따러 다니신다. 그는 "처음 귤 따러 온 사람들에게는 '돈 주고 사 먹을 만한 귤을 따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와닿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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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인 데다가 상품으로 나가는 귤에 민폐가 되지 않으려 최대한 잘 익은 귤을 찾다 보니 내 속도는 이모님들보다 세 배는 느린 것 같았다. 이모님들이 '똑똑똑' 귤을 세 개쯤 딸 때 내 가위는 '또오옥' 느리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베테랑인 이모님들은 1년 중 열 달을 귤 따러 다니신다고 했다. 이모님들은 밭과 하우스 등에서 귤을 사는 상인에게 고용되어 11, 12월 수확 철이 아닐 때도 하우스 감귤을 도맡으신다.

각자 본인 농사도 지으면서 다른 밭에 귤을 따러 다니는 이유를 묻자 반장 이모는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밭을 돕지 않으면 제주 감귤 농사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여기 계신 이모님들도 다 각자의 귤 농사를 짓는다"라고 털어놓으셨다. 실제로 몸이 건강하다면 80대까지도 귤을 딸 정도로 농촌 인구가 노령화됐다.

베테랑들 사이에서 4시간 정도 귤을 따다 보니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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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함께 일한 사람은 이모님들 말고 또 있었다. 내가 오자마자 했던, 귤을 나르는 일을 하는 분이다.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통 남성들이 이 일을 한다. 이모님들이 바구니에 딴 귤을 노란 상자로 빠르게 옮겨 담고, 이 상자를 손수레에 싣고 트럭으로 옮긴다.

이날은 셔로라는 이름의 27세 중국인 청년이 귤 나르기 작업을 하러 왔다. 최근 중국, 네팔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귤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셔로 씨는 한국말을 거의 알아듣지도, 하지도 못해서 많은 대화를 할 순 없었다. 나이와 이름을 묻는 것도 번역기를 이용했다. 그는 아직 초보인지 이모님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도 힘든 기색을 하지 않았다.

한 이모님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귤 나르는 힘 좋고 젊은 사람이 부족해 귤 농사를 하기 힘들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농촌의 인력난을 또 한 번 실감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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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일이 끝나고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이었다. 이모님들은 각자 싸 온 도시락을 꺼내 드셨고, 미처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근처에서 순댓국을 먹고 밭으로 돌아왔다.

이후 오후 5시까지 귤 따기 작업이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받는 일당은 7만 5천 원. 도시락을 싸 오지 않는 경우 식대를 빼고 7만 원을 받는다. 지난해까지는 6만 5천 원이었는데, 최저시급이 오르면서 이모님들의 일당도 올랐다.

팀의 일당 지급을 맡은 반장 이모는 동행 취재하는 나에게도 일당을 주시겠다고 하셔서 거절하느라 혼이 났다. 그 대신 수고비로 귤을 조금 챙겨주셨다. 시골 인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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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농사가 그렇겠지만, 노동으로서의 귤 따기는 그저 재미 삼아 체험해 볼 일이 아니었다. 일이 끝나니 몸에서 땀 냄새가 비릿하게 풍겼고, 돌아가는 길 차에서 나도 모르게 헤드뱅잉을 하면서 잠들었다. 종일 서서 일하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려니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다리 근육통이 심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저릿했다.

이모님들은 몇 년 동안이나 이 일을 하고 계신다. 반장 이모는 "11~12월에는 비가 안 오면 연속 20일 동안 일하기도 한다"고 했다. 주말이 없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게 질문이냐는 듯 하하하 웃으셨다. 제주 감귤 농민 모두가 동원돼도 농번기에는 감귤을 모두 수확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반장 이모는 "우린 주말이 따로 어서('없어'의 제주 방언)"라고 하시면서도 "농사를 하면서 제일 힘든 건 내 힘으로 안 되는 일들"이라고 말씀하신다. "농약을 잘못 썼거나, 감귤이 예쁘지 않아서 상품성이 떨어질 때 그것 때문에 힘들지" 일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서울에서는 별 생각없이 인터넷으로 주문해 먹었던 귤이지만 직접 따보니 귤을 싸게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했다.

서울로 돌아와 수고비로 받은 귤을 까먹으면서 반장 이모님께 안부 연락을 드렸다. 통화 끝에 반장 이모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일도 일하러 가야지, 우리는 매일 해서 힘든 줄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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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해 처음 국민 수확단을 모집했을 때 일각에서는 '귤 따기 체험', '귤 따기 아르바이트와 제주 여행'으로 홍보가 되는 바람에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국민 수확단을 농업인 위주로 모집한다.

올해 달라진 감귤 국민 수확단과 관련해 모집을 담당한 농협 제주지역본부 제주농업인 인력지원센터 관계자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지난해 감귤 국민 수확단을 운영했을 때 미흡했던 점을 보완했다고?

A. 지난해 국민 수확단 모집 때 텃밭이나 주말농장, 여행처럼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수확량이 생각처럼 많지 않았고 농가에서 저희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지난해에는 국민 수확단 일정에는 도내 관광 하루 일정도 있었기 때문에 오해를 산 부분도 있다.

Q.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지난해와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A. 올해부터는 영농 경험이 있는 70세 미만의 농업인 조합원만을 국민 수확단으로 모집하고 있다. 20일 이상 제주에서 감귤 수확일을 할 수 있는 체력과 경험이 있는 이들 위주로 모집해 제주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려 한다. 실제 제주도 외에서 오는 분들의 경우 20일 이상 머물러야만 항공료가 지급된다.

Q. 개인이 아닌 단체 단위로만 지원할 수 있다고 하는데?

A. 우선 농가에서 4~5명 단위의 팀을 원한다. 숙소도 4인 1실을 사용하기 때문에 함께 사용하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서도 단체로 모집하고 있다.

Q. 감귤 국민 수확단이 하게 되는 일은?

A. 감귤을 따는 인력과 유통 센터에서 감귤을 선별하고 포장하는 업무를 맡을 인력으로 나뉜다. 일당은 최저시급과 업무 능력을 고려해 농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게 돼 있다.

Q. 앞으로도 국민 수확단을 계속 운영할 계획인지?

A. 그렇다. 농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매년 보완점을 찾아서 앞으로도 계속 운영할 예정이다. 감귤 말고도 마늘 등 다른 농작물에 대한 수확단도 있으니 관심 부탁드린다.

국민 수확단 지원과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농협 제주지역본부 제주농업인력지원센터(☎064-720-1223∼1225)를 통해 할 수 있다.


YTN PLUS 문지영 기자
(moon@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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