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오늘 '독도의날'...우리가 기억할 이름 김성도

[와이파일] 오늘 '독도의날'...우리가 기억할 이름 김성도

2018.10.25. 오전 10:2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와이파일] 오늘 '독도의날'...우리가 기억할 이름 김성도
AD
아침부터 비가 흩뿌려 스산한 날이었다. 지난 23일은 독도지킴이로 반백 년을 살다 간 故 김성도 씨의 발인 날이었다. 1960년대부터 부인과 함께 독도에서 살았다고 한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주민등록상 독도 주민은 부인인 김신열 씨, 단 한 명만 남게 됐다. '이러다 독도 주민이 모두 없어지면 어쩌지?' 조금 걱정이 됐다.

대전현충원 안장은 오후 2시. 고인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무공화랑훈장까지 받은 국가유공자였다. 다행히 오후 되면서 해가 났다. 훌륭한 일을 하다 가신 분을 위해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을 했다. 현충원에는가을이 내려앉았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장식하는 듯 벅차게 아름다웠다.

[와이파일] 오늘 '독도의날'...우리가 기억할 이름 김성도

현충원에 도착해 찾은 곳은 현충관이었다. 현충원에 안장되는 국가유공자들은 보통 현충관에서 합동으로 안장식을 열고, 묘소에 가서는 간단히 유해를 땅에 묻는 의식만 치른다.

안장식이 열리기 전 미리 전화로 약속한 고인의 둘째 사위를 만났다. 김경철 씨는 평생을 독도지킴이로 산 장인어른의 뒤를 잇겠다며 부인과 함께 독도에 들어가 살겠단다. 관련 기관이 받아들여 주면 주민등록도 독도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공무원인데, 독도 생활을 위해 퇴직할 생각이라고 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훌륭하십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라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현충관에 들어가기 전 고인의 둘째 딸인 김진희 씨도 만날 수 있었다. 부모님 병시중을 위해 봄부터 독도에 들어가 생활했다고 한다. 고3인 아들 김 환 군도 독도를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니 독도 전문가가 다 됐다고. 벌써 두 권째 독도 관련 책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최근 발간한 책 제목은 '독도 7시 26분'이다. 찾아보니 올해 독도 첫 일출 시각이었다.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에 맞서 영토 수호의 나날을 기록한 책의 제목다웠다.

[와이파일] 오늘 '독도의날'...우리가 기억할 이름 김성도

오후 2시가 조금 안 된 시각, 합동 안장식이 시작됐다. 이날 대전현충원에 묻힌 분들은 모두 8명. 3번째로 고인의 이름이 호명됐다. 종교의식과 헌화 등이 이어졌고 현충원장이 특별히 고인의 업적을 소개했다. 이를 끝으로 고인의 유해는 다른 7명과 함께 영혼의 안식처가 될 '제7묘역'으로 옮겨졌다.

[와이파일] 오늘 '독도의날'...우리가 기억할 이름 김성도

묘역에서는 이미 안장 준비가 끝나 있었다. 곧 고인의 환하게 웃는 영정사진을 앞세우고 유족이 도착했다. 독도 책을 펴냈다는 고인의 외손자가 영정을 들었다. 나무로 만든 임시 묘비에는 '육군 병장 김성도의 묘'라고 쓰여 있다. 나무 묘비는 얼마 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돌 묘비로 교체될 것이다. 유족들이, 미리 파 놓은 땅에 고인의 유해를 모시고 그 위에 조금씩 흙을 뿌렸다. 2018년 10월 23일, 그렇게 고인은 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살아 있었다면 제일 바빴을 '독도의날'을 이틀 앞둔 오후였다.

고 김성도 씨는 독도지킴이로 살면서 독도를 홍보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독도에서 투표도 했고, 기념품을 팔아 국세인 부가가치세를 냈다. 이는 우리가 국제법상 독도 영유권을 수호하는데 근거로 남았다. 독도를 사랑하고 독도를 지키기 위해 그 안에서의 삶을 택한 故 김성도 씨.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고마움과 존경을 표하고 싶다. 더불어 그런 분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스러웠다.




이문석 기자 (mslee2@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