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42] 취객부터 몰카까지, 지하철 보안관과 함께한 20072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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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1. 오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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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42] 취객부터 몰카까지, 지하철 보안관과 함께한 20072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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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798만 3000명(2017년)이 이용하는 서울지하철. 복잡하고 바쁜 지하철 안에 시민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사람들, 지하철 보안관들이 있다. 지하철 보안관은 서울교통공사 소속 공무원으로 8월 기준 294명이 서울 시내 지하철에서 질서유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

이들의 하루는 어떨까? 오후 4시부터 새벽 1시까지, 서울지하철 2호선 합정역과 을지로4가 사이 10개 구간을 지키는 이들의 9시간을 뒤쫓아 보았다.

"아 꺼져 알았으니까 꺼져 꺼지라고"
얼굴을 향한 삿대질과 갈수록 커지는 고성은 거침이 없었다. 오후 10시 45분, 2호선 신촌역을 지나는 2608 열차 속 적막이 깨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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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뭔데! 나한테 불만 있어요? 본인이 뭔데? 먼저 시비 걸잖아! 가만히 있는데" 노약자석에서 3칸을 모두 차지하고 누워있던 60대 남성이 지하철 보안관을 향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리를 내려달라는 부탁은 손찌검으로 돌아왔다.

손으로 턱을 치고 상의를 잡아끌며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지켜보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2분여의 실랑이는 다행히 더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지만 긴장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경찰도 도둑만 잡는 게 아닌 것처럼"
"방금처럼 실랑이하는 경우는 흔하죠. 순찰 중 피를 토하며 쓰러지신 어르신을 병원까지 이송한 적도 있어요. 경찰도 도둑만 잡는 게 아니고, 소방관도 불만 끄는 게 아닌 것처럼 저희도 범죄 단속과 순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이날 동행한 홍재훈(39) 보안관은 지하철 보안관의 최우선 과제는 '승객 안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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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처럼 지하철 보안관들은 쉴 틈 없이 바빴다. 취객, 노숙자, 이동상인, 구걸자, 종교 전도자, 몰래카메라 등 성범죄자 단속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질서유지와 교통약자를 돕는 일까지 이들의 몫이 아닌 것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일이잖아요"
퇴거 조치에도 다시 돌아오는 노숙자들, 의사소통조차 안 되는 인사불성의 취객들, 이동하는 열차를 타고 도망 다니는 상인들. 민원 유형에 따라 정해진 매뉴얼이나 노하우가 있냐는 질문에 석다윗(33) 보안관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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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처음부터 강하게 얘기하면 상대방도 잘못한 걸 알면서 화를 내죠. 무엇보다 그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좋은 방식으로 얘기해야 해요"

"범인 잡는 게 가장 큰 애로사항"
근무 중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현재 지하철 보안관들은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폭력사건이나 성범죄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섣불리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위급 상황을 대비해 알루미늄 삼단봉과 가스분사기도 소지하고 있지만, 실제 사용은 어려워 승객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했다. 경비업체 등 보안업계 관련 경력자가 많아 지하철 보안관 중 다수가 무술유단자이지만 이들에게는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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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지하철 내 5대 강력범죄(절도, 폭력, 성범죄, 강도, 살인) 발생 건수만 3,949건. 이중 성범죄는 5년 전에 비해 2배가 넘게 증가했다.

범죄가 늘어나며 지하철 보안관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보안관 피해 건수는 9건이며 올해만 3건의 피해가 발생했다. 범죄 예방과 보안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들에게 사법권이 필요한 이유다.

"한 아주머니가 이유도 없이 제 얼굴에 침을 뱉은 적도 있어요. 출퇴근길에 승객들끼리 시비가 붙어 싸우는 걸 말리다가 맞는 경우도 있죠. 맞는 모습이 최대한 CCTV에 찍히도록 맞을 때도 카메라 위치를 확인합니다" 배훈민(29) 보안관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건·사고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최고"
합정에서 을지로 4가 구간에 신고되는 일일 민원은 약 4~5건. 특히 이 구간에 포함된 홍대입구역은 지하철역 중 몰카범죄 신고가 가장 많은 곳이라 여름철이면 관련 민원도 더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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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가 이루어진 월요일은 사건·사고가 적은 편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대학교 방학에 휴가도 겹쳐서 민원이 감소한 편이에요. 대게는 수요일부터 민원이 점차 늘다가 목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해요"

"성범죄 신고는 현장 적발과 디테일이 중요"
이날은 다행히 몰카 촬영 등 성범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 보안관인 이신혜(29) 보안관은 "여름철이라 성범죄가 확연히 늘어난 편"이라며 성범죄의 피해를 겪거나 목격한 경우, 현장에서 즉시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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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고 시에는 인상착의를 최대한 자세히 묘사해야 검거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50대 검은색 티셔츠라고 말씀하시면 검거가 어려워요. 상·하의 색상부터 안경 착용 여부와 눈에 띄는 특징을 꼭 설명해주세요"

"내 생에 지하철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던가"
10개 역과 함께 열차 내를 끊임없이 순찰하는 이들이 하루에 걷는 평균 걸음은 20,000~30,000보. 계단 이동도 많아 이동 거리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보통 2개 역마다 내려 역사를 순찰하고 열차 내에서도 이동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다리의 피로도가 상당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흔들거리는 지하철에서 휘청거리는 다리의 중심을 잃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평지에서 걷는 것보다 훨씬 에너지 소모도 심했다. 이날 약 60번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동안 빈자리에 앉아 이대로 퇴근하고 싶다는 유혹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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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 시간에는 빈자리도 많은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봐야 해요. 떨어진 스마트폰이나 분실물을 줍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6일 오후 4시 근무를 시작해 9시간만인 7일 오전 1시경 홍대입구역에서 마지막 열차를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짧은 동행 뒤 이별을 앞두고 지하철 보안관들에게 지하철이란 어떤 공간인지 물었다.

"승객들의 안전을 지켜내야 하는 전쟁터죠"(배훈민 보안관)
"가족의 품처럼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는 공간이죠.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곳"(석다윗 보안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빈자리를 채워가며 승객들에게 도움을 드려야 하는 공간"(홍재훈 보안관)
"시민들이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안전 할 수 있도록 힘쓰는 나의 일터"(이신혜 보안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교통수단인 지하철이 이들에게는 전쟁터이자 일터 겸 집이었다. 올 7월까지 서울 지하철에 접수된 민원만 37,561건. 지하철 보안관들은 오늘도 밤낮없이 묵묵하게 시민의 뒤를 지키고 있다.

취재 :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촬영 : 김재서 PD (jaeseoblue@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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