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32] 앗! 도쿄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

[해보니 시리즈 32] 앗! 도쿄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

2018.05.30.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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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32] 앗! 도쿄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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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가방... 역무원 "직접 찾아보라"

외국인 상대 상담번호 '먹통'... 가까운 분실물 센터나 경찰서 찾아야

도난당했을 경우 여행자 보험으로 변액 가능하지만 분실은 불가

분실 뒤 적어도 하루~이틀 지나야
분실물 센터 도착... 여유 갖고 기다려야


지난 4월, 결혼 1주년을 맞아 남편과 일본 도쿄로 여행을 떠났다. 렌트를 고민했지만 우리나라와 운전석도, 통행로도 반대인 나라에서 운전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결국 72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도쿄 메트로 패스를 구입해 지하철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해보니 시리즈 32] 앗! 도쿄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

광고판이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은 '백팩을 조심하라'는 안내문뿐이었다. (일본어를 읽진 못하지만 그림이 그랬다.) 지하철 백팩족으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건 어디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듯 본 안내문이 우리를 비극에 빠뜨릴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여행 셋째날, 도쿄 대표적인 관광지 아사쿠사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남편은 백팩을 매고 있었고 지하철은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사람이 많아지자 괜스레 눈치가 보였던 나는 남편에게 백팩을 벗고 올려놓으라고 말했다. 남편은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여기서도 백팩족을 혐오한다"는 나의 주장에 결국 가방을 벗어 선반에 올려 두었다.

역에 도착한 뒤 우리는 가방의 존재를 잊은 채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출구를 향해 걸었다. 한참을 걷던 우리는 휴대폰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씩 알 수 없는 예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포켓 와이파이는 지하철에 두고 내린 가방 안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곧바로 역무원을 찾아가 손짓, 발짓, 영어를 동원해 짐을 잃어버렸다고 신고했다. 역무원은 긴말 대신 외국인을 위한 'LOST&FOUND 안내문'을 우리에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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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내문에 쓰여 있는 글은 '오늘 잃어버린 짐이라면 가까운 직원을 찾고, 하루 이상 지났으면 분실물 센터를 찾아가라는 내용뿐이었다. 또 다른 정보라면 가까운 역무원을 찾으라고 쓰여 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재차 물었더니 안내문 아래 번호로 전화를 하라고 말했지만 서비스 센터는 전화번호는 수십 통을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역무원은 우리를 상대하기 버거운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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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시간 만에 겨우 연결이 됐지만 연결된 직원은 영어도 매우 서툴렀고 통화마저 계속 끊겼다. 직원은 "분실물은 없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안내문대로라면, 분실물은 적어도 하루가 지나야 분실물 센터로 가게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아사쿠사 역무원은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그 지하철이 노선을 순회해서 다시 이 역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직접 가방을 찾아보라는 의미였다. 우리는 그때부터 약 한 시간 반 동안 아사쿠사역으로 들어오는 모든 지하철을 수색했다.

다행히 아사쿠사 역은 종점이자 출발역이었기에 역에서 5분 이상 정차했다. 열차를 점검할 시간은 충분했다. 남편과 나는 각자 구역을 나눠 열차 번호를 일일이 기록해가며 뛰어다녔지만, 모든 열차를 다 수색해도 가방은 없었다. 누군가가 짐을 가져간 게 분명했다.

[해보니 시리즈 32] 앗! 도쿄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들은 '여행자 보험'으로 분실물품액을 보상받을 순 없을까? 답은 '그럴 수 없다'이다. 단순 분실의 경우 보상을 받기 힘들다. 반면, 도난을 당했다면 가까운 경찰서를 찾아 도난 확인서를 받아온 뒤 보험사에 제출하면 한도 내에서 일부 금액을 받을 수 있다.

관광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 일정을 시작하기 전 이다바시 분실물 센터를 찾아가 한 번 더 가방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가방 속에 여권이나 지갑 등은 없었지만 포켓와이파이 분실로 20만 원을 물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

분실물센터 직원은 긴자 라인 다른 역에서 검은 백팩 한 개를 습득해 보관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그 물건은 내일 이다바시 분실물 센터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방 안에 신분을 확인할 만한 물건이 없으며, 우리 것인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가방이 있는 역으로 찾아가서 물어보라는 얘기를 반복했다.

발견된 가방이 우리 가방이라는 사실이 확실했다면 달려갔겠지만, 그 안에서 '여성용품'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우리 가방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결국 가방을 포기하고 계획된 야간 관광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역무원에게 가방이 이 곳으로 돌아오면 다음에 연락 달라며 연락처와 메일 주소를 남기려고 했지만, 따로 연락은 줄 수는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의사소통의 어려움 탓에 답답했지만 애초에 잃어버린 사람이 잘못이지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가방을 잃어버린 채 눈물의 귀국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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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가방에 여권이 없었지만, 만약 여권까지 통째로 잃어버린 경우에는 귀국 스케줄을 분실일로부터 하루 이후 정도로 조정하고 경찰에 분실 신고를 한 뒤 대한민국 영사관과 연락하면 된다. 주말에는 영사관이 연락을 받지 않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귀국 뒤 가방을 포기한 나와 달리 남편은 일본 메트로에 고객센터(customer@tokyometro-center.jp)에 메일 문의를 이어갔다. 메트로 측은 우리가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명과 거의 비슷한 가방이 들어왔다며 몇 번의 확인 작업을 더 거쳤다. 결국 우리의 가방임이 확인되자 사흘 뒤까지 직접 분실물센터로 찾아와 가방을 가져가라고 밝혔다.

[해보니 시리즈 32] 앗! 도쿄 지하철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

직접 찾아갈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도쿄에 사는 지인을 통해 대리 수령이 가능했다. 그리고 거의 10일이 지난 뒤 가방은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포켓와이파이 분실로 물어줬던 금액(약 20만 원)도 연체금을 제하고 70% 정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택배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포켓와이파이를 반납했는데, 다행히 보낸 날짜를 반납일로 쳐 줘서 12일(약 6만 원)의 연체료를 제외한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만약 일본에 지인이 없을 경우 일본 관련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 등을 통해 소정의 사례금을 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가방 안에 귀중품이나 여권이 들어있지 않았고, 도쿄에 사는 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일부 금액 손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현물(가방)과 와이파이 분실배상금 등 약 20만 원어치를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관광지에서의 마음고생과 하루의 시간 낭비, 그리고 지인의 수고로움이 2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부터 잃어버리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아주 중요한 물건이 아닌 경우 물건을 포기하고 관광을 선택하는 게 오히려 더 현명할 수도 있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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