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19] '집 값 지옥 교통 지옥' 주말 부부의 현실

[해보니 시리즈 19] '집 값 지옥 교통 지옥' 주말 부부의 현실

2017.12.06.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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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19] '집 값 지옥 교통 지옥' 주말 부부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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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도 안 다니는 시간에 출근하는 남편은 동탄, 아내는 상암... 중간인 강남은 신혼부부에게는 너무 비싸

직장이 멀 때는 '한 명에게 몰아주자'며 집 값 싼 강서구에 겨우 집을 얻었지만, 시작된 고생길

'주말 부부'라는 대안을 선택했지만,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


"결혼하면 집은 어디에 얻어?" 우리 부부가 결혼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언론사를 다니는 아내는 상암에, 남편은 경기도 동탄에 직장이 있어 우리 둘은 신혼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상암-동탄'은 너무나 멀고, 서울을 벗어나 보는 생활은 생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 알아본 곳은 사당, 고속버스 터미널, 신논현역 근처였지만 집값을 알게 되자마자 포기를 선언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3억이 넘는 전셋값에도 불구하고 녹물이 나오는 낡은 아파트를 얻어야 하거나 방보다 베란다가 더 큰 이상한 구조의 2억 5천짜리 빌라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마저도 모두 은행의 대출을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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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가진 자본금은 최대한 끌어모아 1억. 남편의 '피땀 눈물'이 들어간 1억이었지만, 이 돈으로는 쾌적한 아파트나 빌라에도 들어갈 수 없는 돈이라는 건 뒤 늦게 깨달았다.

당시 신논현 근처 빌라를 소개한 부동산 중개인의 인상적인 말이 떠오른다.

"여기가 예전에 재개발된다고 해서 급히 올린 빌라라 구조가 좀 그렇지? 그래도 베란다 넓으니 여름엔 여기서 고기도 구워 먹어. 참, 여기 사다리차 못 들어오니 냉장고는 큰 거 말고 미니 냉장고 사~"

호들갑스럽게 "그래도 애 없는 부부 살긴 좋다"는 18평 빌라는 베란다가 적어도 8평은 되어 보이는 구조였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을 둘러보며 이 빌라의 주인이라는 대학교수는 이런 집에 살지 않겠지…. 라는 말만 되삼켰다.

결국, 한 명의 출근길이라도 가까워야 한다는 모두의 조언 아래 우리는 9호선 역세권이면서 상암에 가까운 강서구 모처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는 친정과 가까워 심리적인 안정(?)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세물건이 없어 반전세로 1억 2천에 월세 40짜리 집에 들어갔다. 우리는 월세 40이면 둘의 수입으로 충분히 갚고 저축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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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에 집을 얻으면서 상암으로 출퇴근하는 나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40분 정도면 회사에 도착했지만,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아침 6시 50분까지 회사를 가기 위해서 4시 40분에 일어나야 했고 5시에 출발해서 여섯시 정도에 회사 앞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 사무실에서 40분 정도 눈을 붙인 뒤에 출근, 야근이 잦은 직업이지만 칼퇴근을 하고 집에 와도 퇴근길 교통 체증으로 9시가 다 되어야 집에 돌아왔다.

그는 점점 녹초가 되어 집에 오면 픽 쓰러졌고 주말에도 잠만 자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결국, 우리는 주말부부를 선택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주말 부부는 사실 3대가 물려줄 재력이 없어 내 집 마련을 하지 못 하는 신혼부부의 선택으로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닐까.

서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서 경기도로 밀려난 사람들의 평균 출퇴근 거리는 4시간. 비현실적으로 길다. 우리는 그 거리를 감내하며 피폐해지는 대신 주말 부부라는 선택을 했다.

그러나 주말 부부는 '돈'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기름값만 30만 원, 금요일 경부고속도로를 탈 자신 없어 토요일 저녁 늦게 출발, 부부가 보내는 시간은 일요일 하루.

주말 부부를 선택하면서 우리는 월세 40만 원, 관리비 10만 원, 전기세 3만 원 10만 원, 자동차 기름값 30만 원, 거기다 주중에 각자 식비 10만 원(이마트에서 한번 장 보는 기준), 외식비 10만 원 등이 각각 들게 되었다.

남편은 기숙사 생활을 해서 상대적으로 생활비가 덜 들었지만, 처음 생각과는 달리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돈'이 100만 원이 넘었다.

거기다 주말부부라고 해서 출퇴근의 '지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남편은 토요일까지 일하기도 부지기수여서 토요일 저녁에 서울로 왔다. 5시에 퇴근하고 서울에 오면 교통 체증으로 기본 3시간은 길에서 보내곤 해서 "강원도에 도착하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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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편은 교통체증을 피해 저녁 9시에 출발해 집에 오기 시작했다. 일요일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는 남편은 일요일 밤늦게 동탄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새벽 경부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졸음운전이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려고 해도 남편의 퇴근 시간에는 대중교통이 잘 다니지 않았고, 콩나물시루처럼 끼어있는 대중교통도 또 다른 '지옥'이었다.
오죽하면 출퇴근 시간 2시간을 노린 모바일 콘텐츠들과 스트리밍 이벤트가 있을까.

매번 "수도권 환승이 빨라진다"는 뉴스를 희망에 차서 클릭해도 강남, 양재, 합정은 모두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지역의 이야기라 곧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주말 부부라도 결국 돈과 시간을 길에 버리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남편은 2년 만에 완전히 지쳐버렸고, 삶의 질도 현저히 낮아졌다.

남편은 번아웃 상태로 집안일도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주말에도 집안일을 또 혼자 해야 하는 사실이 화가 나서 싸우기 시작했다.

실제로 통근 거리와 행복도는 반비례한다. 2014년 발간한 '대중교통 서비스 개선을 위한 서울시 출근통행의 질 평가' 보고서는 출근 거리가 5km 미만인 경우, 대중교통 행복지수는 73.9점, 5~25km에서는 71.6점으로 25km 이상의 경우에는 70.1점까지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내 남편의 출근 거리는 50km. 행복보다는 불행을 재는 편이 나을 거리였다.

'주말 부부'가 좋다는 건, 집에 와서 '밥 줘'라고 말하며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아저씨들에게 해먹일 밥에서 해방된 엄마의 이야기거나, 그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아내로부터 해방된 아저씨에게만 해당되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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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민들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제가 서울로 갈게요"라고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경기도에 사는 사람이 서울로 가겠다는 결심보다 더 달콤한 사랑 고백은 없다는 거다. 이제 그 말이 확실히 와닿는다.

결국, 우리는 내년에 무리해서 집을 사기로 했다. 동탄과 상암이라는 정반대의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부부인 우리가 최적의 장소로 여기던 곳, 노들역 주변이나 사당역 주변을 알아보고 있다.

여기에 살면 상암으로 가는 나의 출퇴근 거리는 조금 길어지겠지만, '남편의 번아웃과 피로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이제는 평생 아파트를 깔고 앉아 빼도 박도 못하고 빚을 갚아야 하는 막막함을 함께 갖고.

그러나 집을 알아보는 지금,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힘을 쓰질 못한다는 걸 피부로 체감한다. 집값을 잡기는커녕 집을 집값은 점점 오르기만 한다. 이렇게 무리해서 집을 샀다가 '호구'되는 건 아닐까. 월세로 뿌린 돈과 길바닥에 버린 시간과 돈을 아껴보겠다고 하다가 '하우스 푸어'가 되는 과정인 건 아닐까.

의심과 두려움이 앞서지만, 남편은 출퇴근 지옥만큼은 벗어나야겠다는 의지가 앞선다. 경기도와 서울에서 주말부부를 하며 돈을 모으겠다는 부부의 실험은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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