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2017.08.02.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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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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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좋아했던 동화 중에 「학교에 간 사자」(『프뢰벨 세계 명작동화』 빌헬름 하우프 지음)이라는 동화가 있었다. 주인공 소녀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가는 사자가 학교까지 따라간다는 내용이었다. 소녀가 공부할 때 옆에서 얌전히 앉아있다가 꾸벅꾸벅 졸던 사자는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크게 소리를 질러서 수업하던 선생님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학교에 사자와 함께 가면 가기 싫은 학교라도 조금은 견딜만하지 않을까? 황금색 갈기를 가진 수사자와 나란히 등교하던 의기양양한 소녀의 모습을 그린 삽화를 보면서 나도 친구로 삼을 든든한 '털 친구'를 데리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학교보다 더 가기 싫은 직장에 '털북숭이 친구'를 데리고 오는 날이 왔다. 사자처럼 황금색 털을 가진 나의 귀여운 강아지 또리(5살, 코카스파니엘)와 함께.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위에 보고해야 하니까 개 신상 좀 말해줘"

먼저 강아지를 YTN에 데려오려면 절차를 밟아야 했다. 개의 종류, 중성화 여부, 짖거나 무는지, 성격은 어떤지, 몸무게, 크기, 배변의 크기까지 보고해야 했다. 배변 크기를 가장 고심했지만 정작 또리는 크기와 상관없이 설사를 주룩주룩 해대서(주인을 닮아 장이 약하다) 예외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절차를 거쳐 또리를 데리고 로비에 들어선 순간, 나는 피켓이라도 들고 외쳐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에 시달렸다. "이 개는 허락을 받고 온 겁니다!"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직원들의 수군거림을 애써 무시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한 여성에 개 데리고 출근한 이유" "개 데리고 출근한 여성 알고보니..." "'무개념 인증한 기자(사진 有) 같은 바이럴 제목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행인 건 사무실에 도착하자 모두 "또리 반가워!" "귀여워!"를 외쳤고, 또리의 귀여움에 무장해제된 사람들은 내가 지각을 했다는 사실도 잊었다는 거다.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물론 개를 모두 다 좋아하지 않는다.

A 부장은 "너 돼지구나? 살이 좀 쪘다."고 말했고 (근육입니다)
H 본부장은 "어이구 얼굴이 늙었네? 노견인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이~ 난 또리쓰 다섯살인디...)

물론 개에 대한 마땅치 않은 시선도 존재했다. 하지만 인간 외에 살아있는 존재는 축하 리본을 단 화분이나 책상 위의 작은 선인장 정도였던 회사에 갑자기 귀엽고 활발하고 업무 스트레스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가 들어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모두에게 작은 기쁨이 되어주고 있었다.

회사에서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누지 않고 인사만 하던 직원들이 강아지에게 살갑게 굴며 말을 거는 모습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그런데 분위기를 만들어준 이 귀여운 개 사원은 월급도 받지 않고 그저 의자 위에서 쿨쿨 자고 간식만 먹으면 그만이다.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꿈은 없고요, 놀고 싶습니다"

또리는 1시간에 한 번씩 "누나 나가자!"며 나를 졸랐다. 기사를 발제했고 기사 관련 문의 전화도 받았지만 내 시선은 모두 또리에게 있었다. 집과 다른 환경에 온 탓에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럽고 화장실도 자주 가고 싶은 또리는 6층에 있는 휴게 공간에 가자고 졸랐다.

간절한 눈빛을 무시하는 게 힘들어 두시간에 한 번씩 나갔는데, 처음에는 눈치를 보다가 나중에는 당당해졌다. "다른 분들은 담배 피우러들 나가시는데요 뭘."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기사거리를 찾다가 눈을 돌리면 나만의 '사자'가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지만 또리는 사방이 뚫린 사무실에서 불안했는지 불편한 자세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사무실에 들리는 사람들은 모두 또리에게 손을 내밀어보라는 말을 했고 또리는 발을 5조 5억번을 내민 후에야 겨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후 3시가 되자 또리는 밖에 나가자고 조르는 대신 배가 꼬르륵거리며 자리에서 무른 변을 보았다. 아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회사는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해로운 곳이니까.

개들을 데리고 올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라도 적절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개에게는 주인과 함께하는 편안함보다는 불안과 괴로움이 먼저다. 결국,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양해를 구하고 일찍 회사를 나온 뒤에야 강아지는 안정을 찾고 설사도 멈췄다.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학교에 간 사자의 결말 부분은 이제 희미하게만 생각나지만, 동화 속 사자는 뼈를 잘못 삼켰던가, 발바닥에 유리 조각이 찔렸던가 아파서 더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어딘지 아련하고 슬픈 이야기로 끝났다. 내 강아지도 다시는 회사에 함께 출근하지 않을 것이다.

또리가 회사에 왔다 간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꼬리를 지나치게 붕붕 흔드는 사자 꼬리 강아지가 회사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 잊었다.

[해보니 시리즈 ①] 회사에 간 강아지

아침 9시부터 전 사원이 모여서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날이 다시 올까? 다시 개가 없던 일상으로 돌아왔고 옆자리에서 간식을 달라고 조르고 조용히 코를 골던 강아지가 없는 게 곧 익숙해졌지만 다시금 퇴근을 기다리는 소소한 기쁨을 깨닫게 되기도 했다.

집에 가면 강아지가 있다. 매일 행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존재가. 매번 사랑만 받고 응석받이에 고집쟁이지만 사람이 아니므로 귀엽고 무해한 존재. 그런 개가 반겨주는 퇴근은 회사에 데려와서 함께 있는 기쁨 못지않은 가치가 있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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