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차지할 별들은?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아카데미 차지할 별들은?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2009.02.12. 오후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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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전세계 영화팬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는 22일에 열립니다.

때를 맞춰 국내 극장가에도 주요 후보작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리 몇 작품 만나보겠습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질문]

예전만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 받은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이 꽤 잘됐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요즘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답변]

최근 몇 년 동안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그다지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해왔던 게 사실입니다.

지난해 작품상 수상작이었던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경우에도 소규모로 개봉해서 아주 적은 관객수를 동원하는 데 그쳤습니다.

몇가지 이유가 있을텐데, 일단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외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가 예전만 못하게 된 것도 작용하는 것 같고, 최근 아카데미의 시상 경향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브레이브 하트'나 '타이타닉' '글래디에이터'같은 어느 정도 흥행성을 갖춘 대작 영화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규모에 상관 없이 영화의 작품성과 실험성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흥행면에서도 아카데미 특수라는 말이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

그래도 아카데미 수상작, 또는 후보작이라고 하면 왠지 한번 더 눈길을 보내게 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관심을 끌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답변]

국내 개봉작 위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이번주에 두 편의 아카데미 후보작이 한꺼번에 간판을 내겁니다.

한편은 작품상 후보에 이름을 올려 놓았고, 한 편은 남녀조연상 후보작입니다.

먼저 만나볼 영화는 데이비드 핀쳐 감독이 연출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작품으로 올해 오스카의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데이비드 핀쳐 감독이 '세븐'이라는 작품에서 함께 했던 브래드 피드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영화로, '위대한 게츠비'로 잘 알려진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온 작품입니다.

시간을 거꾸로 사는 한 남자라는 설정만 빌어 왔을 뿐, 시대 배경이나 세부적인 상황 등은 모두 새로 창작했기 때문에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원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벤자민 버튼은 일반 사람들과 정반대로 할아버지의 외형을 가지고 태어나서 점점 젊어지다가 아기의 모습으로 종말을 맞게 되는, 말하자면 시간을 거꾸로 사는 인물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젊어지는 와중에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여인은 늙어가는데 남자는 더 젊어지는 상황 속에서 이들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역으로 바꿔 놓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곱씹게 만들어주는 영화입니다.

주연을 맡은 브래드 피트는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습니다.

그의 아내인 안젤리나 졸 리가 '체인질링'이라는 작품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기 때문에 최근에 쌍둥이를 얻은 이들 부부가 오스카고 쌍둥이로 입양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 영화와 함께 이번주에 개봉하는 또 한편의 아카데미 후보작은 '다우트'라는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교장 수녀 역으로 출연한 메릴 스트립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고, 신부 역을 맡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 밖에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비올라 데이비스와 에이미 아담스도 각각 여우조연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는데, 영화의 주요 출연진이 모두 연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이 영화 '다우트'는 명배우들의 걸출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쾌감을 안겨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는 1960년대의 브롱크스의 한 천주교 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을 엄격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믿는 완고한 성격의 교장 수녀와 활기 넘치고 진보적인 성향의 신부의 대립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의심이라는 뜻인 영화 제목처럼, 알로이시스 교장 수녀와 그를 따르는 수녀들은 학교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오려는 플린 신부가 이 학교에 최초로 입학한 흑인 학생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의심하게 되고, 이것 때문에 학교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됩니다.

엄격한 관습과 종교적 위엄이 남아 있는 학교를 배경으로, 신구 세대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상황이나 맹목적인 신념이 내포할 수 있는 위험성 등을 탄탄한 심리극의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같은 제목의 연극을 원작자인 존 패트릭 샌리가 그대로 영화로 다시 재현했습니다.

원작 연극이 김혜자 씨 주연으로 국내에서도 공연된 바 있는데, 연극을 보신 분들은 연극적 상황이 어떻게 영화로 각색됐는지 비교하면서 감상하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질문]

소개해주신 두 편의 영화 모두 꽤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밖에 또 어떤 작품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나요?

[답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등 모두 세 개 부문 후보에 오른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작품도 다음주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타이타닉'에서 명 연기를 선보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10년만에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 바 있는 영국 출신의 샘 멘데스 감독의 신작입니다.

이 영화 역시 원작이 있는데, 1961년에 발표된 리처드 예츠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 한 매력적인 부부가 겪게 되는 현실적인 갈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공허함에 빠져든 두 부부는 직장을 그만 두고 파리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남편의 승진이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그 과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부부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집니다.

'아메리칸 뷰티'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기를 극적으로 드러내 보였던 샘 멘데스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일상의 굴레에 갇혀 진정한 욕망을 유보한 채 살아가는 부부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특히 결혼을 한 기혼자들이 보시면 꽤 묵직한 느낌을 얻으실 것 같습니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만큼 결혼 생활과 행복의 함수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을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이 밖에 '빌리 엘리어트'로 잘 알려진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신작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닉슨 대통령과 토크쇼 진행자인 포르스트의 대결을 다룬 론 하워드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 하비 밀크의 이야기를 다룬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밀크',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이 작품상 후보작으로 올라 있는데 모두 다음달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거나 유명 원작을 영화화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화들의 원작 소설은 모두 국내에 번역 출간돼 있으니까 미리 구해서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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