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가뭄 속 대박 행진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한국 영화, 가뭄 속 대박 행진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2009.01.15. 오후 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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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연말 연시 극장가에서 한국영화 두 편이 잇따라 대박 흥행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벌써 600만 명을 돌파한 '과속 스캔들'과 300만 명을 향해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쌍화점'인데요.

안 그래도 요즘 한국영화계가 어렵다 하는 말이 많은데 두 영화의 흥행 의미, 남다른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 봅니다.

[질문]

'과속 스캔들'이 벌써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던데요?

이렇게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될지 예상하셨습니까?

[답변]

전혀 예상 못했다.

대중 영화적으로 꽤 준수하게 빠진 만듦새 때문에 어느 정도 흥행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는데, 300만 명 이상의 관객 몰이에 성공하면서 저도 좀 놀랐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번 흥행 탄력이 붙으니까 계속 가속도가 붙으면서 지난 12월 초 개봉한 뒤 한달 보름이 다 돼 가도록 꾸준히 상위권에 머물며 관객 몰이를 이어가고 있습다.

지난 아직 공식적인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제자로 6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곧 있으면 설 연휴 시즌이 다가오는데다 올 설에는 한국영화 개봉 편수가 딱 한 편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흥행세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추세라면 700만 이상의 관객 동원도 내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

'과속 스캔들'이 이처럼 예상을 뛰어 넘는 흥행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배경이 궁금한데요.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답변]

일단 '과속 스캔들'이 오랜만에 나온 휴먼 코미디 영화라는 점에서 장르적인 특수를 누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색즉 시공'이라든가 '미녀는 괴로워' 등 연말 시즌 극장가에선 꾸준히 코미디가 인기를 누려 왔는데, 올해 연말에는 한국 영화 가운데 이렇다할 코미디가 없는 가운데, '과속 스캔들'이 거의 유일하게 관객 공략에 나섰다는 점이 일종의 비교 우위를 만들어줬다고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자체가 갖는 힘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적으로 대단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자 하는 관객들의 욕구에는 충분히 부응할 수 있을만큼의 대중영화적 만듦새가 강력한 입소문을 만들었고, 그 입소문이 또 다른 대규모 관객들을 견인하는, 일종의 흥행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할 수 있겠다.

차태현이라는 알려진 스타의 힘과, 박보영이라는 신선한 신인의 호연이 맞물린데다 아역 배우로 등장한 왕석현 군의 앙증맞은 연기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가족, 청춘, 그리고 음악이라는, 관객들이 선호하는 여러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렸다는 점에서 흥행 요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질문]

이 영화, 제작비가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벌써 600만 명이면 투자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 것 같은데요?

[답변]

30억 원 안팎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손익분기점이 140만 명 정도 되는데, 이미 4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해에도 '고사: 피의 중간 고사'나 '영화는 영화다' 등의 영화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져 꽤 괜찮은 흥행 기록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많아진다는 것은 안그래도 제작비 거품을 빼려고 노력하고 있는 한국영화계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저예산 대중영화에 대한 시도가 많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질문]

'과속 스캔들'에 이어서 유하 감독의 '쌍화점'도 흥행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답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개봉 2주차인 지난 주말까지 240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여전히 예매율 수위를 달리고 있어서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주말을 통과하면서

300만 고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야말로 '과속 스캔들'과 쌍끌이 흥행을 하고 있는 분위기다.

[질문]

배우들의 파격적인 노출 연기가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던데, 아무래도 흥행에 영향을 좀 주었겠죠?

[답변]

조인성과 주진모, 송지효 등 꽤 스타급 배우들이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였다는 점이 어느 정도 영화의 흥행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출이라는 요소 말고도 고려 말기를 배경으로 세 남녀의 비극적인 삼각 관계를 그려낸 영화의 소재 자체도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8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만큼 고려 시대 궁권을 재현한 비주얼이라는 측면에서도 상당히 화려한 색감의 미학을 선보이고 있는 점 역시 영화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질문]

그것도 그렇지만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 장면 가지고 만들이 많던데요, 조금 거부감을 느꼈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답변]

사실 그동안의 한국영화에서 동성애를 소재로 삼은 경우는 적지 않았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나 최근 개봉한 '앤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도 동성애 코드가 강하게 들어간 영화들이었다.

노골적인 동성애 장면 역시 김인식 감독의 '로드 무비'라든가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 같은 작품에서도 등장한 바가 있다.

하지만 '쌍화점'의 경우에 더 화제가 되는 건 이 영화가 대중영화로서 사실상 처음으로 상당한 수위의 동성애 장면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관객들의 정서적 거부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개인적으로는 표현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장면이라는 평가들도 적지 않다.

[질문]

노출신에 대해 반응들이 좀 엇갈리는 분위기던데요.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고, 또 노출신 빼면 볼 게 없다는 반응도 있는 것 같더군요.

[답변]

영화 제목 '쌍화점'이 대표적으로 남녀상열지사를 표현하는 고려가요에서 따왔듯, 이 영화는 남녀간의 육체적인 갈구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꽤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왕과 호위무사 홍림간의 사랑, 그리고 왕후와 홍림의 치명적인 사랑, 그 뒤에 이어지는 왕의 질투심과 복수, 이런 것들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바로 남녀상열지사, 즉 에로스라는 것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유하 감독은 여섯 차례에 걸친 정사신을 통해 그런 에로스적인 사랑의 과정을 묘사하려는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노골적인 베드신이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자극적인 눈요깃거리라고 몰아 붙이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을 관음증을 자극하는 포르노그래피와 동일시하는 시선이 아직도 팽배해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안 감독의 '색,계'처럼 베드신 자체에도 이야기가 있고 섬세한 감정 묘사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하려는 게 유하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연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국영화의 흥행 선전, 뿐만 아니라 여러 화제까지 만들어 내고 있으니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올 한해 이런 영화들이 많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봅니다.

최광희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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