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 03

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 03

2020.02.29. 오후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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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를 말하다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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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세상 속 주거문화_ 아파트 단지의 폐쇄성과 획일성을 해결하려는 아파트 설계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아파트 디자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에서 공급하는 아파트에 대한 현상설계를 본격화했다. 도시 계획과 단지 계획을 연결하는 제도로서 지구단위계획을 도입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건축·도시 통합 설계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디자인 심의 제도가 작동하고 있으며, 각종 가이드라인이 설정되어 적용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노력 덕분에 아파트 디자인에는 외관으로나 성능으로나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아파트는 여전히 도시 공간과의 연결, 지역 커뮤니티와 단지 내 커뮤니티 활성화, 도시 경관·가로 경관의 형성, 다양한 선택 가능성 제공, 친환경적 생활환경의 조성 등 여러 가지 이루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으며, 이러한 과제들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소를 잃었다고 외양간을 고치지 않으면 다시는 소를 키울 수 없을지도 모르니 고칠 곳이 어딘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폐쇄성’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파트 외관이나 아파트가 만드는 도시 경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폐쇄성은 주거 공간을 도시 공간으로부터 분리하고, 거주민과 도시민을 구별한다. 주거 공간은 닫힌 공간으로서 안정감과 안전함을 느끼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외부와는 단절된 섬과 같은 공간이 되어서는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은 모여 사는 삶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파트단지는 대개 도로로 둘러싸인 일단의 대지를 말한다. 500세대 내지 1,000세대가 한 아파트에 거주하며, 이들은 하나 혹은 두 개의 출입구를 통해 도시 공간과 관계한다. 단지 안에는 놀이터부터 노인정까지 필요한 시설들을 갖추고, 적게는 몇 개 많게는 수십 개의 주거동이 서로 독립적으로 서 있다.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기도 하지만, 허용한다 하더라도 문으로 경계 지은 단지 안에 들어가기란 영 껄끄러운 것이 아니다. 거주민과 도시민이 분리되는 지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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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 담당에 의해 차단된 아파트 내부 공간과 도시 공간 © 최두호>
단지 안에 들어가면 어떨까? 주동과 주동이 잘 연결되어 서로를 긴밀하게 이어주고 있을까? 또 주동 안으로 들어가면 한 지붕 아래 사는 주민들은 서로 잘 알고 지낼까? 사실 서로 모르고 지낸다고 해서 크게 불편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내 아이를 잘 아는 이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전함을 느끼게 되고,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잘 아는 이웃 아주머니와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 아파트는 단지 안의 사람과 단지 밖의 사람을 연결하는 데에도 인색할 뿐만 아니라, 단지 내 주민들끼리의 소통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구조로 지어지고 있다.
다음은 ‘획일성’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획일성의 증거는 아파트를 구성하는 요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주거 형식, 진입 체계, 주동 형태, 단위세대 평면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배어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외관은 어디를 가든 비슷하다. 20~25층 정도의 탑상형 혹은 판상형 주동들이 규칙적으로 배치해 있다. 지어진 시기에 따라 층수가 조금 낮은 아파트 단지도 있지만, 단지 안에서는 또 비슷한 층수를 유지하고 있다. 발코니의 창문 자체가 입면 디자인이 되는 것도 비슷하고, 창문이 없는 측벽을 그래픽으로 장식하는 것도 비슷하다.
아파트 입면의 다양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효과는 크지 않다. 정부기관에서 공동주택 심의기준을 만들어 심의에 적용하기도 하고, 2009년에는 국토해양부에서 공동주택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주동의 외관이나 높이가 획일적이지 않고 주변 시설과 조화를 이루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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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에서 본 위례 신도시의 획일적인 아파트 형태 출처_구글지도 2019>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는 ‘한국의 아파트 연구’ 수행 과정에서 있었던 인터뷰 결과 중 일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사람은 많고 공간은 부족하니 고층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발레리 줄레조의 결론은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권위주의 산업화의 구조적 특성, 여기서 비롯된 계층적 차별 구조와 획일화된 문화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산물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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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에 지어진 고층아파트 © 최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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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변에 지어진 고층아파트 © 최두호>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고층=고밀’이라는 등식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고층을 넘어 초고층 개발이 정착되어 간다. 그렇지만 고밀을 얻으려면 반드시 높게 지어야 할까? 배치 형식에 따라서 중층으로도 고층에 못지않은 밀도를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 결과로 제시된 바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주민들이 고층만 고수하는 것은 도시 공공 공간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녹지와 개방적 옥외 공간에 대한 욕구를 아파트 단지에서 해소하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초고층화를 통해 더 많은 옥외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논거로 초고층 개발이 친환경 개발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단순한 논리가 공공연히 받아들여지는 것은 한국의 도시 공간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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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골프장 주변에 건설된 고층아파트 © 최두호>

아파트단지 내로의 진입 체계 역시 숱하게 제기되는 문제점이다.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다. 간혹 중문이나 속칭 개구멍이라 부르는 좁은 출입구가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500세대에서 1,000세대가 사는 넓은 주거단지에 출입구는 2~3개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단지 안으로 들어가면 오로지 숫자로만 구별되는 주동으로 진입한다.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동 1층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홀을 이용해 자기 집에 이르게 된다. 주동의 위치에 따라 지형에 따라 디자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디든, 어떤 경우든 예외가 없는 일률적 진입 체계를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단위세대 평면을 살펴보면, 84㎡, 59㎡, 49㎡, 큰 평형으로는 102㎡, 113㎡ 등 몇 가지 면적대가 있고, 각 면적대마다 평면 유형이 정해져 있다. 물론 약간의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80㎡, 90㎡와 같은 규모로 정해진 것일까? 이는 우리나라 주택 공급 제도에 의한 것이다.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아파트를 분양받고자 하는 사람은 입주자 저축에 가입해야 하고, 저축 금액에 따라 분양받을 수 있는 단위세대의 면적이 달라진다. 입주자는 자신의 저축 금액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면적의 세대를 분양받고자 하므로 자연스럽게 그 경계 규모로 단위세대 규모를 설정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제한된 규모 안에서 단위세대 평면 구성은 꾸준히 발전해왔고, 우리의 생활양식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정착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파트 단위세대 면적을 유형화하고 그 평면과 단면의 구성을 일률적으로 해 온 관행을 계속 유지한다면, 현대의 다양한 생활양식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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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화된 전용 84㎡(2호 계단실형) 단위평면도(4Bay) © 토문>

또한 우리만이 지니고 있는 발코니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주택 모습은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고,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과 건넌방이 일렬로 구성된 집채가 앉아있다. 각각의 방은 앞뒤가 트여 있어 겨울이면 햇빛이 고루 들어 따뜻하고, 여름이면 맞바람이 불어 시원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이러한 구조를 선호하고, 또 이런 주택은 환경적으로도 무척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런 구조의 주택이 도시 주거가 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도시가 요구하는 많은 것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아파트라는 도시 주거 형식에서 도시에 사는 즐거움을 얻는 대신 모든 방을 전면에 배치하려는 욕심을 조금 줄이면 어떨지 제안해본다. 단위세대의 폭을 줄이는 대신 아파트단지 내에 외부 공간을 잘 만들어 더운 여름날 저녁 이웃과 수박을 나누어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커뮤니티 공간을 적절히 배치하여 겨울에는 함께 모여 소일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냉난방비도 절약하고 이웃도 생기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이 아닐까?
어느 곳에 있든,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살든 우리나라 아파트에는 공통으로 설치한 시설이 있다. 그것의 필요성은 상관이 없다. 쓰이든 쓰이지 않든 ‘그냥’ 있는 것이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서 정하는 부대 복리 시설이 그것이다. 특히 복리 시설은 주민들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시설들로 어린이 놀이터, 근린생활시설, 유치원, 주민 운동 시설, 경로당 등이 그것이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이들 시설의 설치 및 면적을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이외의 시설은 설치가 불가능하다. 공동작업장‧지식산업센터‧사회복지관 등을 설치할 수도 있으나 주로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아파트 위주로 건립한 단지에 제한한다. 왜 모든 아파트단지에는 똑같은 용도의 시설들이 고만고만한 규모로 설치된 걸까? 왜 다른 시설들을 설치하면 안 되는 걸까? 공해를 유발하거나 위험한 시설이 아니라면, 아파트단지에 다양한 기능의 시설들이 함께 배치되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주거지역과 상업‧업무지역이 가까이 있다면, 여러 기능을 가진 시설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도시적 즐거움이 배가될 수 있고, 육아 부담으로 인한 여성의 출산율 감소 현상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직업이 필요하거나 재활이 필요한 사람, 재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이 집과 가까운 곳에서 손쉽게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단지에 필요한 시설들은 몇 가지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도시의 거의 모든 기능이며, 주거단지에서의 용도 혼합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물론 아파트단지에 모든 기능을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거단지에 배치된 ‘주거 이외의 기능’ 덕분에 그 아파트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 아파트에서는 주거 이외의 기능들이 매우 제한적이라서 생활의 불편함과 함께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파트 면적을 단순히 나누어 본다면, 이웃과 함께 쓸 수 있는 공용 공간과 나와 내 가족이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전용 공간의 합쳐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재산 가치로서의 집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내 집 값에는 단지 전체의 공용 공간이 일정 부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공용 공간에는 그토록 인색한 것일까? 자연의 바람을 들여놓고 이웃과 인사할 수 있는 발코니는 내부와 외부를 매개하는 중간적 공간이 아니라, 내부 공간으로서 전용 면적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웃과 담소를 나누거나 친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그나마 눈인사를 나눌 만한 복도도 거의 없다. 사람들은 편리함과 프라이버시를 극대화한다는 명목으로 관리비에 대한 부담이 더 있더라도 계단형 아파트를 선호한다.
아파트에 골목을 들여놓을 수 없을까? 더운 여름밤 돗자리를 깔아놓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곁들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아파트에 마련할 수는 없는 걸까? 하다못해 자신의 집 현관문 앞에 화분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 공간을 확보할 수는 없을까? 왜 이런 공간을 마련하면 할수록 자신과 가족들만의 내밀한 공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할까? 왜 꼭 주거공간은 내밀해야 할까? 물론 가족만의 공간도 필요하고 나만의 공간도 필요하다.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웃 안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아파트 디자인에 이러한 생각이 반영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인터뷰_ 최두호 ㈜토문건축사사무소 대표, 자료_ LH, TOMOON Architecture, 인터뷰어_ 안정원 에이앤뉴스 발행인 겸 대표이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최두호 필자는 1952년생으로 청주고등학교, 청주대학교 건축공학과, 한양대학교 도시대학원을졸업했다. 건축사와 도시학 박사로서 대한주택공사(현 LH공사)에 근무(1977~1990)했으며, 1990년 9월 15일 ㈜토문건축사사무소를 창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외 활동으로는 건설교통부 중앙건설 심의위원, 서울시공공건축가 총괄계획가,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한국주거학회 부회장, 한양대학교도시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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