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포인트] 광교산, 하늘의 빛의 따라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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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3. 오후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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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포인트] 광교산, 하늘의 빛의 따라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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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교산 정상석

◇ 아픔을 간직한 산, 모락산
우리는 역사적으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전쟁은 침략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전쟁으로 많은 교훈도 얻었고 아픔도 겪었지만 70년 전에는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도 했다. 당시 6·25전쟁으로 우리의 모든 산하는 전쟁터였다. 전쟁이 터지고 계절이 바뀐 1951년 1월에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탈환하기 위하여 경기도 수원, 안양을 연결하는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치열한 교전 끝에 국군과 유엔군은 모락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국군 70여 명이 전사했고, 2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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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쟁 유해발굴 기념공원

추운 겨울날 수도 서울을 수복하기 위한 전투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넋이 아직도 이 산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그저 무심하게 산을 오르고 있다. 70년 전 이 땅에서 살고 있었던 백성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지만 지금의 전후 세대는 그런 아픔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니 굳이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간 일이라고 치부했다.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마음 편하게 오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잘남 때문이 아니다. 그날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런 호사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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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락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청계산, 이수봉, 백운산이 보인다

◇ 역사의 비극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산을 오르다 보면 사인암(舍人巖)에 도착한다. 시야가 확 트인다. 안양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좌우로 수리산과 관악산도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이렇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니 피아(彼我)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려고 싸웠는가 보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지만 시대에 따라서는 그 역할을 달리한다. 550여 년 전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은 계유정난에서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자 이곳 광주 의곡(현재 경기 의왕 내손)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는 계유정난에서 세조 편에 가담했다. 그런 연유로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큰 풍파 없이 노후를 이곳에서 보낼 수 있었다. 그런 그도 혈육 간의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보면서 사직의 평안을 기원했다. 그가 기원하던 곳이 사인암이다. 여기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면 관악산이 보이고 그 너머에 경복궁이 있다. 그의 후손들은 임영대군이 한양을 사모하던 산이라 하여 모락산(慕洛山)이라 불렀다. 그리고 훗날 임영대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인암 바로 아래에 경일암(擎日庵)이라는 작은 암자를 지었다. 역사는 늘 그러하듯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전쟁보다 더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자행된다. 거기에는 윤리 도덕이라는 글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정했다. 세종의 아들인 세조가 특히 그러했다. 형제는 물론이고 결국에는 조카인 단종의 목숨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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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인암. 임영대군이 한양을 바라보았다고 전해지는 바위

◇ 사회적 거리 두기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좁은 등산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가급적 멀리 떨어지려고 비켜서서 지나가길 기다린다. 옛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세태에서는 가당치나 않은 말이 되었다. 정상에서도 사진만 찍고 일찌감치 자리를 뜬다. 전 같으면 전망대에서 한참을 서서 먼 산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아름다운 미래를 머리에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건강 안전이 최고인 세상이 되었다. 시원한 나무 밑에 앉아서도 서로 멀리 떨어져 앉는다. 전처럼 옆 사람과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도대체 남녀 구분조차 안된다. 이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우리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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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산 정상

◇ 백운산 가는 길
다시 발길을 돌린다. 멀리 백운산 통신탑이 눈에 들어온다. 선명한 하늘이다. 철구조물이 햇빛에 반짝인다. 내리막길이라서 그런지 걷기에 수월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올라오는 산객에게 길을 양보하고 있는데 낮 익은 얼굴이다. 지역산악회에서 자주 보던 회원이다. 지난번에는 관악산에서 조우(遭遇)하였는데, 오늘은 모락산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회원은 세월이 하수상하여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평소에는 한적한 산길이라 등산객들이 적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많다고 한다. 안전한 산행을 하라고 인사를 나누고 다시 걷는다. 한참을 걷는데 앞서 걷는 등산객의 뒷모습이 눈에 많이 익은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 산객도 역시 산악회에서 자주 보았던 얼굴이다. 이 회원도 사람들을 피해서 걷는다고 한다. 오늘 행선지를 물으니 같은 방향이다. 평상시 같으면 산악회 버스에서 만나야 하는데 이런 산길에서 만나게 되는 현실이 반가우면서도 서글프다. 하루빨리 이런 현상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그동안 다녔던 등산 이야기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나무 그늘 길을 걷다 보면 잠시 시야가 탁 트인 길이 나온다. 누구나 한번은 태어난 순서 없이 가야 하는 곳이다. 의왕시립 공원묘원이다. 이곳에서 영면하는 모든 이들의 사연은 백인백색일 것이다. 이 중에는 나그네처럼 산이 좋아서 등산을 좋아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죽음은 필연적으로 오는 것이다. 그것도 정한 날이 없이 가게 된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을 걱정하게 된다. 한국인의 평균 생존 연령은 77세라고 한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사는 그날까지 얼마나 건강한지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걸으라고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매일 30분씩 빨리 걷고 근육을 단련하면 암이나 심혈관 질환 위험을 40%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건강 중에서도 걸을 수 있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그네는 오늘도 걷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유산소운동이 되는 산길을 걷는다. 산행 동료와 한동안 말없이 걷는다. 오르막길의 힘든 과정도 있겠지만 공원묘원을 지나면서 나그네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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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가장 힘든 계단

백운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경사도는 급해진다. 그래서인지 철제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등산객들은 이곳 철제계단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10여 분 이상을 올라야 계단이 끝난다. 다음에 오게 되면 반드시 계단 수를 헤아려 볼 것이다. 굵은 땀방울을 쏟고 나면 정상이다. 시원한 바람도 분다.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시원한 바람과 탁 트인 조망으로 조금 전의 고통은 금방 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모(産母)가 진통을 잊고 다시 출산하듯 매번 산을 오르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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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산에서 광교산으로 평이한 산길이 이어진다

◇ 하늘의 빛을 따라 걷는 길
한참을 쉬고 배낭을 가벼이 한 다음 다시 광교산으로 발길을 옮긴다. 여기서 부터는 평이한 길이다.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산을 오르는 것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고난과 행복이 늘 교차하는 것이리라. 이 길 역시 나무 그늘 아래로 걷는다. 광교산과 백운산은 거리가 2km 남짓 되다보니 연계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이 많다. 다시 입을 꼭 막고 걷게 된다. 스치는 것이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슬픈 현실이다. 역사는 늘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발전해 왔다. 그래서 ‘그 또한 지나가리라’라고들 이야기 한다.
광교산(光敎山)이라는 이름은 후삼국 말기에서 고려 초에 지어졌다고 한다. 하늘에서 빛이 솟아올랐다고 하여 본디 광악산(光嶽山)인데 그렇게 부르고 있다. 꽝교산이 수원의 진산(鎭山)이다 보니 수원과 성남 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광교산 정상은 유달리 산객들이 많다. 이곳에 서면 아스라이 북한산이 보이고 청계산이 보인다. 청계산과 광교산은 한줄기로 연결되어 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종주거리 25km 정도 되는 거리인 청광종주 또는 광청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그네도 오래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을지를 확인하기 위해 청광종주를 걸었던 생각이 난다. 광교산은 최치원과도 인연이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통일신라 말 정치개혁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 광교산에서 후학들을 양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시대가 옥석(玉石)을 구분할 줄 아는 현군(賢君)이 없으니 기둥이 썩어가는 것도 모르는 것이다.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고 하지만 가진 가자 자신의 손안 움켜쥔 부귀영화만 생각하다보니 모든 걸 잃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까막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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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광교 야생화밭의 가을꽃

오늘 산행마감을 하고 하산하기로 한다. 원래 계획은 형제봉을 거쳐서 광교저수지 반딧불이 화장실로 하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토끼재에서 우측으로 내려오는 440계단으로 하산한다. 조금 덜 걸으면 나중에 걸어도 되리라.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조바심이 난다. 이 또한 욕심을 내려놓으니 몸이 편하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김두환)
www.mountain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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