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에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를 돌아보다

진주성에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를 돌아보다

2019.10.02. 오후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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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에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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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는 수도권에서는 꽤 거리가 멀어 큰맘을 먹고 가야하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독특한 음식문화와 볼거리가 제법 있는 편이어서 관광지로서도 매력이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 진주성은 국내의 많은 역사 유적 가운데 손꼽힐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진주 시내 중심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진주성은 지리적 환경이나 기능 면에서 여타의 성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국내의 성 대부분은 군사적 요충지에 세워진 산성의 형태나 행정중심이자 주민보호의 기능을 하는 읍성의 형태로 분리돼 발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진주성의 경우 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지닌 듯 한 면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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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성 산지에 위치했으며 바로 앞에 흘러 해자 역할을 하는 남강의 입지 조건은 마치 판타지 게임에서나 볼 법한 공성전의 주요무대를 연상케 한다. 이런 천혜의 조건은 실제로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주요 무대로 명성을 갖게 했다. 게다가 조선시대에는 성내에 민가가 많았다고 하니 영남에서 호남으로 가는 연결고리 기능을 하는 주요도시로서 읍성의 기능으로도 손색이 없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진주성에서는 지금까지도 생생한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임진왜란과 관련한 각종 유적과 유물들은 임진왜란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소위 ‘밀덕(밀리터리 마니아)’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만한 것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진주성에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를 돌아보다

성내에 자리한 국립진주역사박물관에서는 그런 특징이 더욱 돋보인다. 임진왜란 당시의 각종 무기와 갑옷, 각종 전쟁물품을 전시하고 있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이같은 임진왜란의 생생한 유물을 간직한 진주성은 요즘 들어 그 의미가 더해지는 느낌이다.

진주성에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를 돌아보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관계의 악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하며 그 어느 때보다 극일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으로 서있는 김시민 장군의 동상과 성내 곳곳에 진주대첩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진주성을 관람하면 극일을 향한 의지는 한층 더해진다.

진주대첩의 승리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진주성 구성원들의 단결은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관군과 의병, 민간이 힘을 한데 모아 혼연일치가 돼 전투를 펼친 덕분에 병력이 10배에 이르는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반면 처참한 패배를 당했던 2차 진주성 전투는 관군 중심이었던 것이 주요 패인이기도 했다.

진주성에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를 돌아보다

이는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교훈을 전한다. 한일분쟁과 일본 불매운동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주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부와 국민이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관광을 할 수 있는 진주성이지만, 왠지 마음이 뜨거워지는 기분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김윤겸 gemi@hot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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