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2019.08.22. 오전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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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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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을 여행하던 그날, 불현듯 들려온 정지용 시인의 ‘향수’는 목적지를 바꿔 놓았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그의 생가를 찾아가는 길은 그의 마지막을 떠오르게 한다.
6.25 당시 납북되던 중 폭격으로 사망한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확실한 증언을 해주지 못한다.

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그의 시 구절을 빌려오면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긴 것이다.
충북 옥천의 시골마을은 정지용이 살았던 동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초가집도, 얼룩배기 황소도 보이지 않지만 들판과 실개천 그리고 시인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파란 하늘은 여전해 보인다.

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여느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들이 그러하듯 특별히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없다.
다만 실물 크기 정지용의 생전 모습이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의 모습은 얼핏 다정해보이기까지 하는데 이건 그저 개인적인 느낌 일뿐, 아마도 그가 그 난리 통에 객사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와 살았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가곡으로도 유명한 '향수'는 그가 서울을 떠나 일본 유학을 준비하는 즈음에 쓴 것으로 보인다.
1902년생인 그는 옥천을 떠나 서울로 향했고,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
주권을 빼앗긴 그때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단순한 ‘향수’로 느껴지지 않는다.

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그가 등단을 추천했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도 같은 맥락이다.
1917년생인 윤동주와 연배 차는 있지만 같은 대학 출신인 이들의 일본 생활이 어떠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지금도 도시샤 대학에는 이들의 시비가 남아 있다.

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처음 정지용의 ‘향수’를 읽었을 때, 이 시 하나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시인들이 아니었다면 ‘나랏말싸미’ 이다지도 오묘하고 가슴을 적시는 언어임을 알 수 있었을까.
시간이 흘러흘러 다시 ‘향수’를 곱씹어 보니 그가 그리워한 것은 고향이 아니라, 고향에서 보낸 ‘그때 그 시절’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충북 옥천, 정지용의 ‘향수’는 ‘그 곳’ 이 아닌 ‘그 시간’

‘고향’이라는 그의 시를 보면 ‘향수’ 와는 사뭇 다른 정서가 읽힌다.
마치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서 주인공 노영달이 고향을 잃어버리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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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정지용에겐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도, 발 벗은 아내가 이삭 줍는 모습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모습일 것이다.
또한 함부로 쏜 화살을 찾지도 않을 것이며,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아버지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그리워한 것은 결국 ‘그 시간’ 이다.
그건 어느 누구에게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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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혁진 dwhhh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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