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2018.08.13. 오후 2:07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AD
이제는 정말 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뉴스에서는 국제정치와 무역 그리고 유가와 북핵을 말하며 여전히 국력의 기준을 경제에 포커스를 두지만, 유튜브 등에서 확인 가능한 K-POP 과 한국 드라마 등의 인기는 우리가 실제로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새삼 실감케 한다.

문화의 지배력은 총칼보다 무섭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가정 환경과도 같아서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감수성에 스며든다.

김구 선생이 자주 독립과 더불어 그렇게 바라던 조국의 모습이 문화 대국 아니었던가.

서양에선 여전히 중국과 일본이 동양의 인상을 결정짓는 두 개의 큰 축이겠으나, 아시아 내부에서는 이제 한국 문화가 중심이 되어 젊은이들의 감성을 이끌어 간다고 해도 크게 과장은 아닐 것이다.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지금 중장년층 세대에겐 홍콩 영화가 그랬다.

20세기 후반 홍콩반환과 세기말이 겹쳐진 당시의 불안감과 혼돈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 상품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퍼져 나갔고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홍콩 영화는 시들해져갔고, 의식 속에서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 기억 속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어떤 이에게 여행을 이끌어 내는 동력은 스토리다. 쉽게 말하면 가고 싶은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

최근 한 후배는 일본 도쿄를 가고 싶어 했다. 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그로선 뜻밖의 얘기였는데, 알고 보니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영화의 배경이 도쿄에서 가까운 바닷가라고 한다.

하지만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영화 같은 건 떠올려지지 않았다. 홍콩의 중심지인 센트럴 역으로 가면서도 딱히 어디를 가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니언 스퀘어를 가야 한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었듯이 홍콩에서도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여행의 정보는 최소한으로, 나머지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그래서 그때 미드레벨을 떠올린 건 정말 묘한 일이었다. 미드 레벨이라는 이름을 몰라서 찾아봐야 할 정도였다.

그곳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도 당연히 몰랐는데, 물어보니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이곳이 한국 관광객들에게 유명해진 건 영화 ‘중경삼림’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영화가 나온 지는 20년이 훌쩍 넘었다.

영화의 내용조차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스틸 사진처럼 몇몇의 이미지만 간신히 기억에 걸려 있을 정도.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그리고 거기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중간쯤에서 커피 한잔 마셨다.

화장실 가는 길이 구불구불 묘하지만, 커피숍 자체의 분위기는 지금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더 이상 갈수 없는데 까지 올라가서 그때부터 방향과 상관없이 아무 곳이나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지치면 그냥 숙소까지 택시를 타자, 그런 생각이었다.

◆ 그리고 홍콩의 기억을 지배하는 ‘화양연화’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홍콩을 다녀와서도 영화에 대한 연결고리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을 때 우연히 ‘화양연화’의 극 중 테마곡 'Yumeji's theme'을 다시 들었다. 그 한 순간에 홍콩 여행의 모든 기억이 소환되면서, 문자 그대로 ‘한방’에 넉 다운 되는 기분이었다.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홍콩에서 왜 그렇게 골목을 걸어 보고 싶어 했는지, 관광지보다는 일상의 사람들이 사는 곳을 보고 싶어 했는지.

물론 2000년에 나온 이 영화의 극중 배경은 60년대 홍콩이다. 쉽진 않겠지만, 찾기로 마음먹는다면야 그런 곳이 왜 없겠는가.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옆 동네 마카오에서도 화려한 카지노 호텔의 뒤안길에는 어김없이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중경삼림’에 비해 ‘화양연화’의 기억은 조금 다르다.

마찬가지로 줄거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배우들의 미세한 떨림과 고독이 낙인처럼 간직되어 있다. 택시 안에서 머리를 기댄 장면이 기억나지 않는가?

극 중 장만옥과 양조위가 서로에게 더 이상 가까이 갈수 없는 이유가 정말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이런 상념들마저 기억의 비탈길을 달려 내려간다.

[홍콩, 마카오上] 영화가 던져놓은 기억의 비탈길

그곳에 있는 동안은 한번도 떠올려 보지 않은 영화가 여행의 기억을 지배하다니...

이 엉뚱함에 진이 빠진다.

홍콩에 가기 전에 ‘화양연화’가 떠올랐다면 코즈웨이베이에 있다는 영화 촬영지인 '골드핀치 레스토랑' 을 가보지 않았을까.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