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피플] “이야기가 있는 국토, 목판화에 담다” 목판화가 김억

[피플앤피플] “이야기가 있는 국토, 목판화에 담다” 목판화가 김억

2018.01.17. 오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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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앤피플] “이야기가 있는 국토, 목판화에 담다” 목판화가 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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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 YTN 뉴스퀘어 1층 로비 한쪽 벽면에는 멀리서 언뜻 수묵화인가 싶은 길쭉한 작품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7송정(현 송면리 송정부락)에 있는 함평 이씨댁을 찾아갔다가 산과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절묘한 경치에 반해 아홉 달을 돌아다니며 9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던 충북 괴산의 ‘선유구곡’을 담아낸 목판화다.

전시된 다른 작품도 안면도, 주왕산 등 잘 알려진 곳이 담겨있다.


[피플앤피플] “이야기가 있는 국토, 목판화에 담다” 목판화가 김억

특히 청송 주왕산 작품은 은행나무 단면을 잘라내 길쭉하고 구불구불한 테두리가 그대로 드러나 테두리가 네모반듯한 것보다 운치가 느껴진다.

무술년 새해 첫 YTN아트스퀘어 전시 주자로 나선 김억 화백은 산과 들, 강과 바다 등을 누비며 우리나라 팔도강산을 목판에 담아내는 ‘국토 인문주의’ 목판화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 시점과 주요 장소를 깨알 같이 그려 ‘그림지도’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풍 덕분에 그는 ‘이 시대의 김정호’라 불리기도 한다.

김 화백은 “작품에 어떤 장소나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기보다는 그 장소가 가지는 상징성이나 이야기를 강조해서 담아내고자 한다”며 “예를 들어 성리학에 대한 논의가 오갔을 구곡이나 옛 선조들이 연회를 베풀었을 법한 정자 등을 중심으로 장소성을 강조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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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중요한 곳은 직접 스케치를 해두거나 한 것을 작업실에서 종합한다. 이때 내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더한다는 게 포인트다. 감상할 때도 상상력이 가미되면 좋다. 그림 속에 잠시 들어가 냇가에서 물놀이를 한다거나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는 등의 상상을 해보면서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김 화백은 ”작품 곳곳에 내가 숨겨놓은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김억 목판화전은 서울 상암동 YTN 아트스퀘어에서 다음 달 28일까지 열린다.

다음은 김억 화백과의 일문일답.

[피플앤피플] “이야기가 있는 국토, 목판화에 담다” 목판화가 김억

Q. 우리나라 땅을 주제로 다루는 이유는?

나는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의 풍경화는 같은 풍경을 그려내더라도 풍경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부터가 다르다. 서양화는 마치 카메라 앵글에 보이는 것처럼 사물 그대로를 그림에 담지만 동양화는 그 풍경이 가지는 의미나 그 풍경 속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주목해 이를 담아낸다. 즉, 동양의 산수화는 ‘장소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도연명이 이곳에서 술을 마셨고 저기서는 두보가 시를 썼다는 등의 사실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렇듯 장소에 숨겨진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을 더한 것이 동양화의 기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해서 작품 주제를 정하고 나면, 거의 면 단위까지 찾아간다.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보면 각 지역마다, 특정한 장소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거나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Q. 장소성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

과거에는 ‘산수인물양육론’이라고 해서 산수가 사람을 길러낸다는 얘기가 있다. 즉, 어떠한 장소(땅)가 사람의 심성을 길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인데, 이중환의 ‘택리지’를 비롯한 동양의 많은 지리 서적에 이러한 시각이 나타나있다. 그런데 산업사회로 건너온 지금은 땅이 가지는 의미가 많이 변했다. 어떤 장소에 어떤 공장을 세우거나 아파트를 올리면 얼마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땅의 가치를 자본주의의 잣대로 값을 매기게 된 거다. 이런 데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산업 사회의 ‘풍경’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통 사회의 ‘풍경’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그림을 통해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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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양화를 전공했는데, 목판화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대학교 때 판화 수업을 듣게 되면서부터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동양화와 목판화를 같이 작업하다가 9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목판화에만 집중해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사실 목판화는 파낸 부분은 하얗고 아닌 부분은 까맣고, 원리만 보면 단순하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시도해볼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민주화 시대에 사람들에게 나눠줄 인쇄물을 만들기 위해서 판화를 제작했던 때만 해도 흑백판화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표현 기법들이 수용되기 시작해 흑백의 딱딱함보다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표현 기법이 많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흑백이 주는 강렬함에 매료돼 계속해서 흑백 목판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동양화에서 먹이 ‘오색’을 표현하지 않나. 그런 점이 매력적이다.


Q. 그렇다면 관객들이 어떤 데 포인트를 두고 작품을 감상하면 좋은가?

장소마다 갖고 있는 특징을 살리려고 하는데, 대부분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면서도 구체적인 장소들이다. 곳곳에 내가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추리해보는 것도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림을 ‘본다'기 보다는 ‘읽는다’고 하는 게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이쪽 계곡에서는 누가 물놀이를 하고 있네’, ‘저쪽 정자는 예전에 누가 다녀갔던 걸로 유명한 곳이라지?’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천천히 살펴보면 재미있을 거다. 그러면서 가봤던 곳이나 아는 곳을 발견했을 때 반가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작품을 멀리서 한 눈에 보는 것보다는 가까이서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찬찬히 훑어보면서 감상하길 추천한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다음 전시 주제로는 ‘코리아 판타지’를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은 담양의 소쇄원이라든지 우리나라 원림이나 성리학을 기반으로 유명해진 구곡들을 다녀보기도 했고, 또 성곽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한 적도 있다. 올해 열고자 하는 전시에는 기존의 장소성에 약간의 판타지 요소를 더해보려고 한다. 구체적인 장소보다는 장소를 재미있게 구성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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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화가 김억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4회의 한국화 개인전과 <2016 김억의 국토-‘남도풍색’전(나무화랑/서울)> 등 10여 회에 걸친 목판화 개인전을 비롯해 '한.중 판화 교류전', '국제 판화 교류전'과 경기도 미술관 특별기획전 '경기 팔경과 구곡' 등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

[YTN PLUS] 취재 강승민 기자, 사진 최재용 YTN INSIDE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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