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사회의 가장 높은 계급을 향한 거지들의 신랄한 풍자!
1990년 10월부터 1991년 10월까지 KBS 2TV '유머1번지'에서 방영된 '꽃피는 봄이 오면'의 포인트는 풍자의 주체와 대상이 누구냐에 있다. 서울 청계천 수표교 아래 움막에 모여 살던 거지들이 정부, 국회의원, 검찰, 군인, 재벌 등 사회 권력 핵심층의 행태를 꼬집는 구성은 단순히 정치인을 패러디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코너는 매회 거지들의 움막 안에서 펼쳐졌다. 당시 정부의 무능한 방역 대책, 예체능계 입시부정 사건, 자동차 10부제 운행, 골프장 주부 도박단, 국회의원들의 뇌물외유사건, 수서사건 등 가장 뜨거운 정치·사회 이슈를 거지들의 행태에 비유하며 수준 높은 풍자를 선보였다.
1990년을 전후로 외제차 수입이 허용되자 당시 대다수 국민의 반감 여론을 반영해 "이제 코미디언도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고 했고, 정부의 알맹이 없는 콜레라 방역 대책을 희화화하며 정부의 무능력함을 비판했다.
거지들의 행동과 대사 한 마디에도 의미를 담았다. 한 거지가 빵조각을 던져 다른 거지들의 관심을 돌리자, 왕초 거지는 "너는 고위층이 될 자격이 있다. 문제가 되니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게 할 줄도 알고"라고 말하며 이슈를 이슈로 덮는 정치인을 꼬집었다.
또 검찰의 권력 편향적 수사 태도를 향한 "우리보다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인데 믿어", "이번 한번 의혹을 샀지 검찰이 언제 또 그랬느냐"는 반어법 대사는 권력층의 미성숙한 의식을 코미디로 비추면서 시청자에게 웃음과 통쾌함을 동시에 선사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은 우리나라 예능사에서 정치풍자 코미디의 대표 개그맨으로 꼽히는 故 김형곤의 3대 풍자 코너의 마지막이다. 故 김형곤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에 이어 선보인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거지 왕초 역을 맡아 당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권력가에 일침을 놨다.
거지 왕초 故 김형곤이 옳은 말을 할 때마다 똘마니 거지로 출연한 곽재문, 서원섭, 조문식, 서인석, 이상운, 김민석, 박경호 등은 모두 함께 뒤로 넘어가며 동의를 표했다. 한국 코미디계의 큰별이자 '비실이' 개그맨 故 배삼룡은 왕초 거지의 삼촌 거지로 출연해 특유의 바보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와 같은 '꽃피는 봄이 오면'이 최근 네티즌 사이에서 재조명받는 일이 있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 선주로 주목받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때문. 무려 24년 전, 故 김형곤은 '꽃피는 봄이 오면'을 통해 당시 세모그룹 회장이자 구원파 교주였던 유병언을 풍자한 바 있다.
이 회차에서 한 똘마니 거지는 구걸로 얻어 온 두부를 자랑한다. 이때 왕초가 "얼마나 얻어 왔냐?"고 묻자, 똘마니 거지는 "세모요"라고 답하고 왕초와 다른 거지들은 "세모? 엎드려!" 하며 바닥에 엎드린다.
"아 그 세모가 아니야?"로 다시 연기를 이어가는 故 김형곤은 "문제의 회사 이름을 세모라고 지은 이유가 있을까요?"라는 똘마니 거지의 질문에 "좋은 질문이다. 한 해의 끄트머리를 세모라고 하는데 세모 하면 생각나는 게 자선냄비다. 자선냄비에 우리가 돈을 넣는다. 그래서 세모에다가 돈을 넣으라는 뜻으로 세모라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한다.
또 "구원파는 그럼 왜 구원파입니까"라는 물음에는 1991년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오대양 사건을 언급한다. 故 김형곤은 "오(5)대양에서 사(4)채를 끌어썼다. 그럼 합이 뭐냐. 구다. 그래서 구원파"라는 대사로 구원파와 오대양 사건을 연관지어 풍자했다.
2017년 현재 방송되어도 전혀 손색없을 당시 故 김형곤의 개그는 네티즌들에 의해 여전히 회자되며 "이런 게 진짜 풍자다", "지금보다도 훨씬 수준 높은 정치 코미디다", "김형곤의 코미디가 그립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YTN Star 김아연 기자 (withaykim@ytnplus.co.kr)
[사진출처 = KBS 2TV '유머1번지']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