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맨헌트', 고전과 진부함 사이

[Y리뷰] '맨헌트', 고전과 진부함 사이

2017.10.20. 오전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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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흰 비둘기가 날아간다. 이때 선글라스에 성냥개비를 물고 있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바바리코트가 휘날리자 어느 순간 양손에 쌍권총이 잡혀 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적들은 우왕좌왕한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손에 총을 갖다 대지도 못하고 있을 때 그 남자는 거뜬하게 적을 소탕한다. 이때 그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포인트다.

이는 어느덧 고전이 돼버린 오우삼(우위썬) 감독이 그려낸 '독보적' 장면이다. '영웅본색'(1987)부터 '첩혈쌍웅'(1989) '페이스 오프'(1997) '미션 임파서블2'(2000) 등 홍콩 누와르의 전설로 불리는 그는 '액션도 낭만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액션 장르의 거장이자 아직까지 영화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오우삼 감독의 신작 '맨헌트'가 제 22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시사회를 진행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맨헌트'는 고전과 진부함 사이에서 갈길을 잃은 듯 보였다. 한국 중국 홍콩 대만 일본 배우와 제작진이 뭉친 다국적 프로젝트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삐거덕거린다.

'맨헌트'는 일본의 국민배우였던 다카쿠라 켄에게 바치는 헌사의 의미로 오우삼 감독이 그의 대표작이었던 '그대여, 분노의 강을 건너라'(1976)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영화는 거대 제약회사의 존경받는 변호사에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전락한 주인공 두추(장한위)와 그를 추적하는 베테랑 형사 야무라(마사하루 후쿠야마)가 결국 힘을 합쳐 배후 세력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한중일을 대표하는 하지원과 쿠니무라 준, 후쿠야마 마사하루, 장한위의 출연은 기대를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원작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대인 만큼, 일부분은 현시대에 맞게 일부 각색했다. 하지원과 안젤리스 우가 맡은 킬러 역할이 추가된 부분으로 오우삼 감독은 자신의 작품 사상 처음으로 여자 킬러 캐릭터를 창조했다.

베일을 벗은 '맨헌트'는 오우삼 감독의 액션 스타일을 즐기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오토바이, 총, 칼, 제트보트 등 다양한 소재로 박진감을 안긴다. 흰 비둘기, 쌍권총, 슬로 모션 등 트레이드마크도 곳곳에 등장한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올드'한 감성은 '맨헌트'의 독이 될 듯 보인다. 반전 없는 평면적인 서사 구조와 능력 있는 변호사와 사연 가득한 형사, 남주인공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킬러, 어리바리하지만 웃는 건 예쁜 신참 경찰 등 캐릭터가 너무나도 예측 가능하다.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오우삼 스타일'을 집대성한 영화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원작인 1970년대 감성과 함께 '옛날 영화'의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으나 현대적 재해석의 부족으로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영화는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가 뒤섞여 정신이 없다. 이를 소화하는 배우들은 어딘가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언론시사회에서는 진지한 상황에서도 쉴 새 없이 실소가 터져 나왔다. 다국적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이야기의 힘이 부족하다. 격렬한 액션 신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

"영화를 찍을 때 젊은 관객들의 반응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며 "좋은 영화는 시대와 연령에 상관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던 오우삼 감독. 과연 오래된 유산처럼 느껴지는 그의 연출을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 들일까.

부산=YTN Star 조현주 기자 (jhjdhe@ytnplus.co.kr)
[사진출처 =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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