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류승완 감독, 논란에 답하다…"탈출이 곧 독립"

[Y터뷰] 류승완 감독, 논란에 답하다…"탈출이 곧 독립"

2017.08.05.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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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군함도에 강제 징용됐던 조선인들에게 독립은 뭐였을까요. 무사히 살아서 집에 돌아가는 거 아니었을까요." (류승완 감독)

지난달 26일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개봉과 동시에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스크린 독과점 이슈는 차치하더라도 국뽕, 역사 왜곡, 조선인 비하, 식민사관 등 같은 내용을 두고 설전이 벌어지며 올여름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됐다.

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완 감독은 "역사 왜곡 논란은 부당하다.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한 적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이라고 한 적도 없기 때문"이라고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군함도'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다양한 의견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면서도 "한 영화 안에 어떻게 '국뽕'과 '친일'이 같이 있을 수 있겠나. 이런 현상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안타깝다"고 연출자로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전했다.

'군함도'는 블록버스터 탈출 영화다. 1945년 일제강점기, 군함도 강제 징용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조선인 전원 탈출이라는 류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제작비만 220억 원, 손익분기점은 무려 800만 명인 올여름 영화 시장의 대작이기도 하다.

영화 개봉 후, 연출자와 관객이 충돌한 지점은 여기다. 다수의 관객이 군함도에서 벌어진 우리 역사의 비극보다 조선인 전원 탈출에 초점을 맞춘 것에 실망을 느꼈다. 일각에서는 일본 탄광 기업 관리들에 부역한 조선인 캐릭터를 두고 조선인 비하 논란, 더 나아가 식민사관 논란까지 제기됐다.

이와 관련 류 감독은 "군함도의 역사를 전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탈출, 친일파 이야기를 모두 빼고 기록된 사실만으로 일본인의 만행을 보여주는 거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참혹했던 현실을 더 참혹하게 보여주는 게 훨씬 쉽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류 감독은 쉬운 길을 택하는 대신 군함도에 대한 부채감을 떠안고 '군함도'를 만들었다. 40년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며 군함도의 역사를 몰랐다는 수치심과 이제라도 대중에게 군함도를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류 감독을 움직였다.

"2013년 봄, 제가 처음 군함도 역사를 접하고 느낀 부끄러움이 있었어요. 나이 마흔이 넘어 이 역사를 알게 됐다는 것에 일단 아이들에게 창피했어요. 이후 군함도를 조사하면 할수록, 실제 강제 징용된 분들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분들에게 해방과 독립은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느끼기엔 살아서 집에 가는 거더라고요. 그냥 무사히 살아서 탈출하는 게 저에게는 독립이었어요."

류 감독은 "21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군함도의 역사를 우리 모두가 잘 알지 못한다. 관객들이 '군함도'라는 영화를 통해 군함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는 걸 저라고 왜 몰랐겠느냐"고 토로했다.

"하지만 저는 학설이나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을 증명해 진실에 도달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제 무기는 카메라예요. 역사를 바라보는 제 시선을 가지고 저의 방식으로 군함도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게 저에게는 탈출이었습니다."

조선인 탈출 시퀀스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전, 조선인들이 식당에 모여 촛불을 들고 난상토론을 하는 장면을 두고 불거진 '촛불 논란'에 대해서도 속 시원히 해명했다.

"촛불 장면은 이미 대본 쓸 때 진작에 있었어요. 군함도에 자체 전기 시설이 없었는데 폭격까지 받았으니 모든 게 끊겼죠. 그런 상황에서 조선인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후레쉬를 들 수는 없잖아요. 정치적인 메타포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설정이었어요."

촬영 현장에서는 류 감독과 제작진, 주연 배우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김수안을 비롯해 조연, 단역, 보조 출연자들까지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군함도'의 방향성이 확고했기에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책임감이 작동했다.

"영화를 보면 스크린 끝에 점처럼 보이는 인물들까지 연기를 하고 있어요. 반대로 소지섭은 단독샷을 10회차가 넘어서야 찍었어요. 그 전까지는 보조출연자들과 섞여서 걸어 다녔어요. 주연 배우들의 태도 자체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건 제작진의 역량을 넘어서서 '군함도'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제 마음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부채감 같은 거죠."

김민재, 김중희, 김인우, 윤경호, 백승철, 신승환 등 각자의 역할 속에서 최선을 다한 배우들에게는 존경심을 표했다. 특히 일본인보다 더 조선인을 괴롭히는 조선인 송종구 역을 연기한 김민재에게는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김민재 배우는 '부당거래' 때 처음 함께했어요. 언제나 어떤 배역을 맡겨도 자기 역할 이상을 하는 배우예요. 처음 민재에게 '군함도' 대본을 줄 때 송종구와 고충호 역할 중에 선택하라고 했어요. 악역 송종구보다는 선량한 희생자 고충재 역할로 이야기하다가 친일 부역자들의 악랄함을 표현하고 싶었나 봐요. 촬영에 들어가서는 송종구가 그렇게 악한 인물인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민재가 한 역할이 굉장히 큽니다."

'군함도'는 극 중 이강옥(황정민 분)의 딸 소희로 분한 아역 배우 김수안의 클로즈업으로 엔딩을 맞는다. 관객들은 원폭 섬광을 배경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희의 울먹이는 눈을 직접 마주치게 되는데, 이 엔딩 장면을 두고 류 감독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마지막에 살아남은 소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제가 소희의 눈을 응시하며 가진 마음을 같이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우리가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겪었던 혼란의 역사를 우리가 먼저 똑바로 응시해야 합니다. 그건 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해요. 제가 나중에 '군함도'를 보고 소희와 눈을 마주쳤을 때 나는 이 영화를 올바로 만들었는지, 이 세계를 다루는 데 정말 충실했는지 반성하게 되겠죠. 나중에 부끄러울 수도 있어요. 이 마음을 관객분들도 느끼시길 바랍니다."

YTN Star 김아연 기자 (withaykim@ytnplus.co.kr)
[사진 = YTN Star 김태욱 기자 (twk55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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